오필민 칼럼리스트
글을 쓸 때는 첫 문장 이상으로 마지막 문장이 중요하다. 자신이 이 글을 왜 쓰느냐는 마지막 결말에서 드러난다. 반전이 일어나 혀를 내두르게 하거나 진한 감동으로 긴 여운을 전달하는 것은 마지막 문장의 몫이다. 아무리 멋진 이야기라도 결말이 흐지부지하다면 재미가 없다.
이 글을 왜 쓰는지, 이 글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알고 글을 써야 한다. 목적지 없이 여행을 떠나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다 뜻밖의 장소에서 뜻밖의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때 얻는 기쁨은 무척 크다. 그런데 목적지 없이 떠돌다 이런 성과를 거두는 일은 그야말로 ‘뜻밖’에만 존재할 뿐이다. 준비 없이 떠난 길은 고생만 하고 결국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할 수도 있다.
글쓰기 심사를 할 때, 나는 첫 문단과 마지막 문단을 먼저 읽는다. 처음과 마지막이 잘 어우러진 글은 글쓴이가 자신이 할 말을 제대로 얼개를 짜서 풀어간 경우가 많다. 영화나 연극도 그렇다. 첫 장면은 결말을 품고 있다. 글의 마지막을 품거나 암시하지 못한 첫 문장은 결국은 고쳐야 한다. 그래야 글이 완성된다. 마지막을 품지 않은 첫 문장은 글을 자꾸 산으로 이끌고, 빌빌 꼬이게 한다. 끝내는 글을 맺지 못하거나 엉성하게 마무리하고 만다.
기자이자 논픽션 작가인 브루스 드실바는 결말을 먼저 써보라고 권한다. “여러분의 이야기가 내러티브라면, 결말을 먼저 써보라. 결말이 여러분의 목적지임을 잊지 말라.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고 있다면 나머지를 쓰는 게 훨씬 쉬워진다.”
글을 쓸 때 무엇(소재, 글감)을 쓰고, 어떻게(방식)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하지만 ‘왜’라는 질문은 잊은 채 글쓰기를 시작한다. 자신이 이 글을 쓰는 이유와 목적이 또렷해야 글이 생명을 얻어 파닥파닥 살아나는데, 이를 놓친다.
내가 쓴 책의 맨 처음에는 공교롭게도 프롤로그 파트가 꼭 들어갔다. 긴 이야기의 서시에 해당한다. 프롤로그가 책의 한 쪽을 차지할 때도 있고 스무 쪽이 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여는 말에 해당하는 프롤로그를 맨 처음 쓰는 경우보다는 한 편의 서사(내러티브)를 마무리하고 쓸 때가 많다. 물론 프롤로그를 먼저 쓴 뒤 이야기를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내가 쓰려는 이야기의 결말이 분명할 때다. 글이 가야할 곳이 분명할 때는 첫 문장부터 술술 풀린다. 그래서 책을 구상할 때부터 결말(마지막 문장)을 머릿속에서 수없이 쓰다 지우고, 다듬기를 되풀이한다. 글쓰기의 시작은 마지막 문장일 수 있다. 마지막 문장이 튼튼히 서야 첫 문장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이다.
글을 쓸 때 대부분 첫 문장에 공을 들인다. 첫 문장이 맘에 들게 나오지 않을 때는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이를 많이 봤다. 첫 문장이 써지지 않을 때는 이곳에 커서를 멈추고 시간을 보내지 말고 과감히 결말부터 써보자. 결말이 분명할 때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하고, 그 이야기를 어떤 소재로 풀어갈 지가 또렷해진다.
글을 쓰기 전 발품을 많이 팔라는 이유도 결말을 찾기 위해서다. 자신이 쓰려는 글의 결말을 찾을 때까지 취재해야 한다. 참고자료를 찾고, 인터뷰를 하고, 장소를 찾아다니는 이유는 이야기의 줄거리를 만들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이 이야기의 결말을 어떻게 맺을까에 대한 확신을 갖기 위해서다. 결말까지 무사히 다다르기 위해서는 당연히 자신이 쓰려는 소재에 대해 전문가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 브루스 드실바의 말이다.
“복잡한 이야깃거리를 다룬다면, 소재에 절대적으로 숙달되어야 한다. 취재를 마무리할 즈음에는 작가도 인터뷰 대상자만큼 그 주제에 대해 알고 있다고 느낄 수준까지 올라가야 한다. 그 정도로 숙달되어야, 깨끗하고 강하며 읽기 쉬운 문장이 나온다. 이는 빙산효과이다. 이야기 속에서 8분의 1만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이다. 나머지 8분의 7은 독자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야기의 바탕을 이룬다. 취재를 믿어라. 그것을 여러분의 이야기 속에 끼워 넣어라.”
내 글의 마지막 문장을 찾을 때까지 열심히 이야기꺼리를 취재하라. 결말을 쓸 수 있을 만큼 내 글의 취재가 충분할 때 본격적인 글쓰기 시작하라. (이 글의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연결했을 때 말이 되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