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뉴스등록
포토뉴스
RSS
자사일정
주요행사
맨위로

인터뷰 속 침묵을 적어라

등록일 2018년04월23일 10시15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인터뷰 속 침묵을 적어라

 

내가 쓰는 글의 대부분은 타인의 삶이다. 타인의 목소리를 듣고 옮기는 작업이다. 늘 타인을 관찰하고, 주의 깊게 듣고, 들은 목소리를 되새기며 그 사람을 문자로 어떻게 그릴까를 고민한다.


난 인터뷰를 갈 때 질문지 내용을 내가 쓸 원고 분량만큼 짊어지고 간다. 하지만 인터뷰 도중에 내 질문은 서너 가지에 불과하다. 어떤 때는 달랑 질문 하나를 던지고 한 시간 넘게 듣고 있는 경우도 있다.

 


질문을 던지면 재치 있게 술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멈칫한다. 무엇을 말해야 할지 더듬거린다. 그래서 내 첫 질문은 인터뷰이가 내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찾아 묻는다. 그 첫 질문에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가 술술 풀려 더 이상 질문이 필요 없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하고픈 이야기 속에서 뭔가 더듬거리는 이야기가 있다. 이게 내 두 번째 질문이 될 거다. 이미 잔득 준비해 간 질문지는 필요 없다. 늘 다음 질문은 대답 속에 있는 법이다.


하고픈 말 속에 살짝 감춰둔 이야기를 물으면 대부분 멈칫한다. 기억에서 대답을 끄집어내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말해야 할지 말지 고민도 한다. 때론 용기가 필요할 수도 있다. 침묵이 흐른다.


침묵은 말을 건 사람이나 대답을 할 사람이나 힘든 시간이다. 질문을 받는 사람은 이 시간을 그런대로 잘 참는다. 그런데 질문을 하는 사람은 이 시간이 조급하다. 내가 질문을 어렵게 던졌나, 하지 말아야 할 질문을 했나, 이러면서 질문을 받은 사람보다 더 당황한다. 질문을 거둬들이기도 하고 다른 질문으로 바꾸기도 한다. 이 순간 소중한 이야기가 사라진다.


빨리 빨리 말을 거는 게 유능한 인터뷰어가 아니다. 침묵을 만들 줄 아는 인터뷰어가 될 필요가 있다. 시험 볼 때를 생각하라. 예상했던 문제가 나올 때는 금방 답을 쓴다. 인터뷰도 마찬가지다. 인터뷰이가 빠르고 쉽게 답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감출 것, 뺄 것, 보일 것을 미리 준비한 셈이다. 사실일 수는 있지만 진심은 가려져 있다. 취재는 보이지 않는 것을 찾는 일이다. 감추려고 했던 것, 빼려고 했던 것을 찾아내는 게 취재다. 침묵을 만드는 인터뷰를 두려워할 필요 없다. 조급증을 낼 이유도 없다. 침묵의 시간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 때 인터뷰이는 더듬거리며 가슴에 묻어둔 이야기를 꺼낸다.


숨기기 위해 침묵하는 게 아니다. 지우고 싶었던 이야기는 기억에서 지워지기도 한다. 애써 외면하고 싶은 사건은 자신의 몸 깊숙한 곳에 숨어 있기에 평상시에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인터뷰를 끝내고 문을 열고 나올 때야 비로소 진심을 꺼내는 경우가 많다. 인터뷰이는 다른 질문에 답을 하면서도 침묵으로 답했던 질문을 끊임없이 생각한 것이다. 녹음기가 꺼지고 취재수첩이 사라지면, 그리고 기자가 문을 열고 나갈 때, 그 침묵이 말이 되어 나온다. 


취재를 마치면 곧바로 짐 챙겨 돌아올 일이 아니다. 잠깐 길을 함께 걷든지, 다른 이야기를 나누든지 인터뷰이에게 여유를 줄 필요가 있다. 


침묵은 멈춤이 아니다. 대화의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집에 돌아와 녹음기를 들을 때 왜 이 순간에 말이 멈췄는지 침묵을 적어야 한다. 침묵을 적다보면 들리는 소리 가운데 있는 들리지 않는 진실의 목소리가 있다. 침묵은 대화다. 인터뷰의 가장 큰 취재는 침묵에 있다. 침묵을 들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기다림의 시간에 있다.


날카로운 질문과 뛰어난 대답이 있는 훌륭한 인터뷰보다는 침묵이 가득한 어눌한 인터뷰가 멋진 취재다.


요즘 용기를 내어 감춰둔 이야기를 꺼내는 이들의 목소리를 뉴스에서 만날 수 있다. 침묵과 침묵 사이로 나오는 목소리를 숱하게 되새기며 나를 돌아본다.

 

오필민 칼럼리스트

최종환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올려 0 내려 0
유료기사 결제하기 무통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가장 많이 본 뉴스

종합 인터뷰 이슈 산별 칼럼

토크쇼

포토뉴스

인터뷰

기부뉴스

여러분들의 후원금으로
행복한 세상을 만듭니다.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현재접속자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