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약
이 글에서는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3고의 민생위기에 대응하는 윤석열 정부의 주요 정책인 재벌·부자 감세, 규제완화, 공공서비스 축소와 semi-민영화 등 공공역할 축소라는 세 가지 정책이 민생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이에 기초하여 민생위기 극복을 위한 정부와 노동조합의 역할에 대해 살펴본다.
먼저, 윤석열 정부와 같은 재벌·부자 감세정책을 추진했던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은 목표한 투자와 고용의 확대는 달성하지 못하고, 대기업 사내유보금과 재정적자만 급등하여 실패로 귀결되었다. 결국, 박근혜 정부에서 근로소득세, 담배세, 주민세 등의 서민증세로 이를 메웠다. 대기업 사내유보금을 투자, 임금, 배당 등으로 견인하려는 기업소득 환류세제도 추진하였다. 윤석열 정부의 감세정책으로 벌써 민생예산을 대규모 감축하고 있는데, 과거처럼 투자와 고용은 확대하지 못한 채 민생에 필요한 재정만 축소되고 서민 증세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또한 대기업들의 규제완화 요구를 국정과제로 선정한 윤석열 정부의 규제완화 대상은 노동·환경, 생명과 안전, 경제적 약자 보호 등의 공익적 규제에 집중되고 있다. 반대로 플랫폼 독과점과 불공정에 대한 규제 등 합리적이고 필요한 규제는 외면하고 있고, 이는 노동자와 중소상공인, 소비자의 피해와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와 더불어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한 민간주도 공공개혁 정책, 공공부문 축소 정책은 공공영역을 이전받은 대기업에 대한 특혜시비만 남긴 채, 공공임대와 같이 국민이 향유해야 할 공공서비스만 축소되었다. 윤석열 정부가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이란 명목으로 추진하고 있는 공공서비스 축소와 민간과 경쟁하는 사업 정리도 결국 공공서비스의 축소와 공공요금 인상 등 민생의 고통으로 귀결될 수 있다.
이러한 민생위기의 시기에는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고, 다음과 같은 개혁과제들을 추진해야 한다. 원자재 가격 인상분을 납품단가에 연동하여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납품단가 연동제, 플랫폼 수수료 규제, 임대료 감액조정, 지역상품권 활성화 등의 중소상인 살리기 정책, 가계부채, 주거비, 통신비 등의 가계부담을 해소하기 위한 신속한 파산·회생 지원제도, 보편통신요금제, 공공임대와 주거보조비 지원 확대 정책 등의 필요성을 살펴본다.
또한 노동조합이 민생개혁을 주요 의제로 정책 및 실천 활동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보수정부는 노동조합을 노동·공공부문 개혁에 대해 자기 밥그릇만 지키려는 기득권 세력으로 공격하는 정치적 프레임을 사용한 바 있다. 이에 갇히지 않고 실질임금 확보, 공공서비스 축소 반대 등의 노동조합의 활동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민생개혁 운동과의 연대가 필요하다. 노동조합이 민생위기로 신빈곤층으로 전락하거나 생존위기에 놓인 중소기업과 종사 노동자 및 비정규직, 자영업자, 세입자, 청년 등의 경제적 약자 계층이나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려는 시민단체 등과 연대하여 불평등 해소와 합리적인 민생보호 규제를 위한 개혁입법 운동, 재벌·부자감세 저지 및 민생예산 확대운동 등에 나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
|
Ⅰ. 들어가며 :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의 민생위기
허리가 휜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서민과 중산층은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의 3중고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지난 9월 소비자물가는 전월 대비 5.6% 상승했는데, 특히 서민들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전기ㆍ가스ㆍ수도요금이 14.6%, 채소ㆍ과일 등 농산물가격이 8.7% 상승했다. 물가는 작년 10월 3%를 시작으로 올해 3월부터 6월까지 매월 1%씩 오르더니 급기야 7월에는 6.3%로 1998년 11월 6.8% 이래 23년 8개월 만에 최고치에 도달했다. 이러한 고물가로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그만큼 줄어들어 노동자들의 생계는 더 어려워지고 있다. 원‧달러 환율급등으로 자동차, 조선, 반도체 등 수출 대기업들은 환차익으로 추가 영업이익을 얻고 있는데 비해, 원료 수입의존도가 높은 항공‧식품‧정유‧화학업계는 직접 피해를 입고, 대다수 서민과 중산층은 수입 물가가 더 올라 고물가의 고통을 받고 있다.
특히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공급망이 무너지면서 급등한 원자재가격이 다소 진정세를 보이는가 싶더니, 환율이 1달러당 1,400원을 넘으면서 소재ㆍ부품ㆍ장비를 제조하여 납품하는 소위 ‘소부장’ 중소기업들의 영업이익이 급감하고 있다.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근로조건과 실질임금 수준이 더 하락할 우려가 커졌다.
한국은행은 사상 처음으로 4, 5, 7, 8월 네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10월에는 0.5%포인트 빅스텝을 통해 기준금리를 3%까지 인상하였다. 고물가를 잡고 미국과의 금리 격차로 외화가 빠져나가 환율이 급상승하는 것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이다. 이러한 기준금리 급등으로 은행의 일부 대출금리는 벌써 8%를 넘고 있는데, 미국 연준이 내년 상반기까지 기준금리를 4.5%까지 올릴 예정이어서 한국의 금리도 더 올라갈 전망이다. 부동산버블 시기에 큰 빚을 영끌하여 주택을 구입한 2030 세대 중에는 소득의 30~40% 이상을 원리금 상환에 쓰고 있어 가용소득 기준으로는 [그림 1]의 통계청 자료와 같이 사실상 빈곤층인 하우스푸어 계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소득 4분위 중산층의 연소득은 2017년 5,499만 원에서 2019년 5,740만 원, 2021년 6,029만 원으로 증가하였으나, 원리금 상환액을 제외하면 2017년 3,919만원, 2019년 3,907만원, 2021년 3,859만원으로 계속 감소하고 있다. 2021년 기준으로 연소득 대비 원리금 상한액을 제외한 가용소득은 64%에 불과하다. 빚으로 코로나19를 버텨 온 자영업자들은 신속한 채무조정이 없으면 파산으로 치달을 위험에 처하고 있다. 여러 금융기관에 다중채무를 지고 있거나 장기간 고금리 사채를 쓰고 있는 한계채무자1)는 당장 파산상태이다.
[그림 1] 중산층 빚 상환액 제외한 소득2)
그야말로 민생의 위기라 할 수 있는데, 윤석열 정부는 이러한 민생위기의 현실에 발을 딛지 않고, 작은정부와 규제완화, 민영화와 공공서비스 축소 등 보수정부가 으레 추진하는 이념적 정책에만 집착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 하에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로 인한 민생의 위기와 윤석열 정부의 정책을 재벌·부자 감세, 공익적 규제의 해체, 공공서비스 축소와 semi-민영화 등 공공역할의 축소라는 세 가지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민생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다. 이에 기초하여 민생위기 극복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 역할의 필요성과 개혁과제를 제시하고, 노동조합이 노동자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해 불평등 해소와 합리적인 민생보호 규제를 위한 개혁입법, 재벌·부자 감세 저지와 민생예산 확대 등의 민생개혁 운동에 나서야 할 필요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Ⅱ. 윤석열 정부의 주요 정책이 민생에 미치는 영향
1. 재벌·부자감세로 인한 재정적자와 민생예산 축소
민생의 위기 상황에서는 정부가 재정 확대를 통해 저소득층 복지를 강화하고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등 경제위기에 취약한 경제적 약자들을 지원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재벌 대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유도하고 재정건전성도 달성하겠다면서 민생예산의 대규모 축소를 추진하고 있다. 2023~2026년 사이 4년간 법인세 21.1조, 소득세 13.2조, 종합부동산세 6.4조 등 합계 47조, 2027년까지는 60.2조에 달하는 감세정책을 발표했다.
법인세의 경우 최고세율 구간 25%를 22%로 낮추는 것인데, 이에 해당하는 국내 기업은 연 3,000억 원 이상의 순이익을 내는 80여 개에 불과하다. 그중 삼성그룹 대기업이 1/3 정도를 차지한다. 그래서 재벌감세라는 지적이 나온다. 종합부동산세의 경우 기존 2주택 이하는 과세표준에 따라 종합부동산세 세율이 0.6~3.0%, 3주택 이상은 1.2~6.0%였던 것을 주택 수와 관계없이 과세표준에 따라 0.5~2.7%로 일원화 및 인하하는 것이어서 부자감세라고 비판받고 있다. 이러한 대규모 재벌·부자 감세정책은 해당 재벌 대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투자와 고용을 확대하여 경제성장을 이루어내면 그 낙수효과(trickle-down)로 임금노동자와 납품중소기업들도 혜택을 본다는 경제이론에 바탕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이명박 정부에서 시행된 바 있었지만, 대규모 재정적자만 남기고 목표로 한 재벌ㆍ대기업의 투자와 고용 효과는 거의 실현되지 못하여 대실패로 귀결된 바 있다. 2014년 국회예산정책처의 ‘MB정부 감세정책에 따른 세수효과 및 귀착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2년까지 4년간 기업들이 절감한 법인세는 총 26조7,000억 원에 달하는데3), 투자 규모를 보여주는 총고정자본형성(민간부문)은 같은 기간 23조 1,000억 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직전 4년(2005년~2008년)의 투자 증가 규모인 33조5,000억 원보다 오히려 10조 원 이상 떨어진 것이다.
그리고 고용률은 2009년 58.6%, 2010년 58.7%, 2011년 59.1%, 2012년 59.4%로, 직전 2007년 59.8%, 2008년 59.5%보다 낮아 고용효과도 거의 없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4) 반면 기업 사내 유보금(이익잉여금)의 전년 대비 증가액은 2009년 72조4,000억 원에서 2010년 94조4,000억 원, 2011년 165조3,000억 원으로 3년 연속 큰 폭으로 늘었다.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에 따른 세금 감면액이 그 혜택을 받은 재벌 대기업의 투자나 고용으로 이어지지 않고 그냥 해당 대기업의 사내에 유보되는데 그친 것이다.
<표 1> 28개 대기업의 사내유보금 현황(2013~2015년)5)
재벌·부자 감세정책의 가장 큰 부작용은 세수 부족으로 인한 재정적자로 나타났다. 이명박 정부 4년 차인 2012년 –2.8조 원, 2013년 –8.5조 원, 2014년 –10.9조 원의 재정적자가 났다. 박근혜 정부가 해결책으로 내놓은 대책이 근로소득세 증세와 담뱃세와 주민세 등의 서민증세였다.6) 근로소득세는 국민적인 조세저항을 불러, 당초 정부가 예정한 만큼 올리지 못했고, ‘국민건강'을 명분으로 담뱃세를 한 갑당 2,000원씩 인상하여, 담뱃세로만 인상 첫해 5조4,000억 원의 세금을 더 걷었다. 전 국민이 부담하는 주민세 규모 역시 4년 만에 4.5배가 늘었다.
대기업들이 투자와 고용에 나서지 않고 사내 유보금만 늘리자, 이를 투자와 임금, 배당 등으로 견인하기 위한 기업소득 환류세제를 도입하였다. 결국 재벌·부자 감세로 대기업과 부자들에게 줄여준 세금을, 서민 증세로 메꾼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재벌·부자 감세정책이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같이 민생예산 축소와 서민증세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데, 벌써 2023년 예산에서 대규모 민생예산 감축으로 실현되고 있다. 저소득층과 청년 중산층에서 주택가격 하락 국면에서 주거안정 수단으로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공공임대주택 예산 5조7천억 원(전년 대비 27%)을 삭감했고, 코로나19로 그 중요성이 확인된 지방의료원 등 지역거점병원 등 공공의료 예산을 11.6% 감액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지역경제와 자영업자 살리기에 큰 역할을 했던 지역화폐 예산도 전액 삭감되었고, 노인 일자리, 돌봄, 청년, 에너지바우처 등 복지예산도 줄줄이 삭감되었다.
2. 노동·환경, 중소상공인 보호 등 공익적‧합리적 규제의 해체
이명박 정부는 규제를 손톱 밑에 전봇대와 같다고 공격하였는데, 윤석열 정부도 기업들이 요구하는 규제의 혁파를 핵심 국정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시대가 변해 감에 따라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규제를 개혁하는 것은 진보·보수 정권을 떠나 기본적인 행정일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규제 혁파 등을 선동하는 정권에서 공격목표로 선정하는 규제들이 대부분 노동과 환경, 국민의 생명과 안전, 경제적 약자 보호에 필요한 공익적 규제들이라는 점이다. 고용보호 규제를 완화하여 비정규직 고용을 남용하도록 방치한 결과 불완전 고용, 저임금의 600만7)을 넘는 근로빈곤층8)을 양산하였다.
여객선이나 지하철 고객의 안전을 위한 규제들을 풀어준 결과 낡은 여객선을 개조하여 운영하여 세월호 침몰 사건이 발생하고, 지하철 추돌사고 등의 참상이 발생하였다. 화재의 예방과 확산을 방지하는 건축규제를 완화한 결과 의정부 도시형 생활주택 화재 등의 재난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이명박 정부는 큰 규제를 풀었다가 이에 대한 부작용이 일어나자 수많은 작은 규제로 대응하여 제일 많은 신규 규제를 만든 정부가 되었다. 윤석열 정부는 최저임금 규제를 완화하여 업종별 최저임금제 도입,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축소, 근로시간 주 52시간 상한 규제 완화 등 많은 고용과 노동보호 규제를 완화하는 정책 추진을 공약하고 있다. 여성이 다수인 유통근로자의 주말 휴식권과 건강권을 보호하고 중소상인들의 생존권 보호를 위해 제정된 일요일 의무휴업과 심야영업 제한도 풀겠다고 하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고 지금은 주춤한 상태이다.
코로나19로 비대면 경제, 플랫폼 경제가 발달하며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플랫폼에 대한 의존성과 종속성이 심화되고 있다. 2021년 중소벤처기업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온라인 플랫폼 이용사업자 중 플랫폼을 통한 매출이 전체 매출액의 50% 이상을 차지한 업체가 74.1%에 달한다.9) 반면, 플랫폼의 독과점과 불공정도 강화되어 그에 따른 폐해가 노동자(물류‧배송‧배달, 특수고용 등)를 비롯하여 판매자(중소상공인)와 소비자의 피해와 부담으로 전가됨에 따라 플랫폼 독점방지와 공정거래에 관한 합리적 규제의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오픈마켓 플랫폼에서 상품을 판매하는 중소기업이나 외식배달 플랫폼으로 배달 음식 판매를 하는 중소상인들은 판매대금의 20%가 넘는 중개수수료와 배송, 광고, 물류, 결제 수수료 등으로 매출액에서 플랫폼 수수료가 차지하는 액수가 너무 과도하여 수수료 상한제나 입점업체 단체의 집단교섭권 등의 규제를 요구하고 있다. 플랫폼이 네트워크 효과와 고객들을 묶어 두는 잠금효과(lock-in effect)10)에 힘입어 독과점화하면서 상품중개만이 아니라 배송, 물류, 핀테크 결제 등 다양한 서비스를 수직적으로 통합하여 입점업체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그 실효성이 의심되는 플랫폼 자율규제를 국정 목표로 제시하며 중소상공인의 호소를 외면하고 있다. 지난 10월의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카카오 먹통 사태를 겪으며 플랫폼 독점의 폐해를 실감하게 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안일한 자율규제에서 벗어나 독점폐해를 해결할 필요한 규제는 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지만, 공정거래위원회의 플랫폼 규제 심사지침을 만드는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그림 2] 2020년 온라인플랫폼을 통한 매출액 비중
결국 대기업들의 규제완화 요구를 수용하여 핵심 국정과제로 선정한 윤석열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은 노동·환경, 생명과 안전, 경제적 약자 보호 등의 공익적 규제에 집중되고 있는 반면, 플랫폼 독과점 방지와 불공정행위 감독 등의 합리적 규제는 외면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3. 공공서비스 축소, semi-민영화 등 공공역할의 축소
윤석열 정부는 7월 29일 공공기관 혁신가이드라인에서 “민간 경합성 점검 체크리스트”를 통해 민간과 경합하는 사업 기능을 축소한다 하였고11), 그 뒤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사회적 가치 배점 비중을 줄이고 재무성과 비중을 두 배 늘리는 등 부채를 줄이는 방안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과거 이명박 정부에서 공공기관이 민간과 경쟁하는 사업을 하지 말고, 박근혜 정부가 “민간 주도의 공공부문 개혁”이라며 시장성 테스트12)를 거쳐 철도, 지하철, 발전, 가스, 지역난방 등 공공서비스에서 부채를 줄이고 민간의 참여를 확대하라고 한 정책이 부활하는 것이다.
공공임대주택 건설을 위한 주택도시기금의 지원을 회계상 부채로 처리하고 있는데, 이명박 정부에서 부채축소를 압박하니 LH는 사업계획승인을 받은 공공임대 건설사업의 30%만 착공하였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아예 공공임대주택 건설용의 공공택지를 민간에 대규모로 매각하도록 하여 공공택지를 헐값으로 넘겨받은 건설회사들이 급성장하여 도급순위 10위 안에 드는 대형 건설회사를 인수하기도 하였다. 그러고는 공공임대 공급을 소홀히 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위해 전세보증금 지원 사업을 공공임대 공급 사업으로 둔갑시켜 공급통계량만 늘리는 꼼수를 부리기도 하였다.
결국 장기 공공임대는 여전히 전체주택의 5~6% 수준으로 여전히 턱 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인구가 집중되는 유럽의 대도시들은 파리 22%, 베를린 19%, 스톡홀름 25%, 암스테르담 35%, 비엔나 40% 등 전체주택에서 공공임대 비율이 높아 집값 상승이나 임대료 폭등 시기에 저렴한 임대료로 저소득층이나 청년들의 주거안정을 보장하고 주택가격 상승에 대한 완충작용을 하는데, 한국은 부동산 버블 시기에 저소득층과 젊은 중산층의 주거안정을 보호하는 완충장치가 거의 없는 것이다. 본격적인 공공서비스 민영화에 대한 국민반발을 의식하여 semi-민영화13)로 공공서비스 기능축소, 공공자산 매각 같은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저렴한 공공요금 등의 사회적 가치 배점을 줄이고 수익성과 부채축소를 경영평가의 핵심 내용으로 하면 철도, 고속도로, 지하철, 전력, 가스 공기업들은 요금을 올려 수익성을 높이고 부채를 줄이는 경영전략으로 나갈 것이다. 코로나19 감염병 사태에서 헌신적인 활동으로 공공의료 확대의 필요성을 보여준 지방의료원 노동자들은 윤석열 정부의 공공의료 예산 축소로 다시 지방자치단체에 재정부담을 주는 애물단지로 전락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부채축소, 수익성 증대 등의 정책적 숫자가 국정 목표가 되면 가뜩이나 고물가로 고통받는 서민들은 공공요금 인상이나 공공시설과 공공서비스 축소로 가계 부담이 더 커지게 된다.
Ⅲ. 민생위기 극복을 위해 필요한 정부의 적극적 역할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의 분석에 의하면 광물 원자재가격이 10% 상승 시 관련 수요가 높은 금속‧비철금속 제품 가공, 기계 및 장비, 운송 산업에 속한 중소기업의 이익은 2% 이상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매출 규모가 작을수록 원자재가격 상승에 더 민감하게 반응해 영업이익 악화 수준이 더 높게 나타났다. 이는 대기업에 소재ㆍ부품ㆍ장비를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이 비용 인상분을 납품단가에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14)
중소기업을 살리고,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실질임금과 근로조건의 악화를 막기 위해서는 원자재가격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반영하도록 하는 납품단가 연동제가 한시라도 빨리 시행되어야 한다. 2008~2009년 금융위기 상황에서 원자재가격이 폭등하자 이명박 정부에서도 납품단가 연동제를 시행하겠다고 하다가 결국 실효성 없는 납품대금 조정제도만 도입하고 논의를 중단한 바 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여야가 납품단가연동제 도입을 공약하고 있는데, 윤석열 정부는 다시 시범사업 시행 수준에서 머무르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표 2> 원자재가격 동향(철강 분야)15)
코로나19 위기로 인한 봉쇄로 가장 큰 피해를 입고 빚으로 버텨 왔던 자영업자들은 급격한 플랫폼 경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과도한 수수료 부담, 고물가, 임대료 인상, 가계소비의 위축 등 이중삼중의 고통이 더해지고 있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그나마 대규모 유통에 시장을 뺏기지 않고 매출을 올릴 수 있게 해 주었던 지역화폐 예산을 전면 삭감하고, 플랫폼 독과점 불공정에 대해서는 자율규제라는 안일한 대응으로 나오자 크게 실망하고 있다. 플랫폼의 과도한 수수료 규제, 임대료 감액조정, 소비 진작을 위한 지역상품권 확대 등 다른 어떤 계층보다도 더 종합적인 중소상인 살리기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고물가, 고금리로 더욱 어려움에 처한 가계의 부담 완화 정책도 필요하다. 가계를 압박하는 대표적인 3대 부담이 주거비, 가계부채, 통신비 등이다. 가계부채 조정을 위해 파산ㆍ회생 등 채무조정 지원과 복지ㆍ(재)창업지원 등을 원스톱으로 지원하는 행정이 확대되어야 하고, 법원이 1년 이내에 파산ㆍ회생 신청 사건을 처리하여 채무자가 신속하게 경제적 복귀를 할 수 있도록 지방에도 전문 도산법원을 설립해야 한다. 고물가로 사회활동 자체를 줄이고 집에 틀어박혀 있으려 하는 청년, 서민들의 사회ㆍ경제활동을 고무시키는 정책도 중요하다. 독일 사민당 정부는 9유로 교통카드를 구입하면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통해 서민과 청년들의 사회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
한국인의 기본 사회 네트워크는 휴대폰이다. 기본적인 통신서비스를 기준요금에 의해 이용할 수 있는 보편 통신요금제가 같은 것을 도입하여 위축된 청년 등의 사회ㆍ경제활동을 고취해야 한다. 아울러 소득수준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주택가격으로 내집마련은 꿈도 꾸지 못하는 저소득층, 청년 세입자 등의 주거비 부담을 낮추려는 공공임대 공급 확대, 주거보조비 지원 확대 정책이 필요하다. 이렇게 3고의 민생위기 시대에는 재정확대, 공정경제, 격차해소, 공기업의 책임강화 등 정부가 서민의 호민관이 되어 적극적인 행정을 펼쳐야 한다.
Ⅵ. 맺음말 : 노동조합이 왜 민생개혁운동에 나서야 하나
과거 박근혜 정부는 실질임금 확보나 공공부문 축소 반대 투쟁에 나서는 노동조합을 노동·공공부문의 개혁에 저항하며 자신의 밥그릇만 챙기는 기득권 세력으로 규정하여 정치적으로 공격하면서 적극적 지지층을 결집하는 정치 전략을 보여준 바 있다. 아마도 윤석열 정부도 지지율이 지금과 같이 계속 낮은 상태가 되면 이러한 정치적 전략을 다시 꺼낼 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노동조합이 민생개혁운동에 적극 나서야 한다. 그 배경에는 3고로 실질임금이 하락하고 가계부담이 커진 노동자들의 처지에서 보면 노동조합이 격렬한 임금인상 투쟁에 나서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는 사실이 있다.
특히 공공주거, 공공서비스, 의료, 금융 등 민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공공영역에 종사하는 노동자들도 공공서비스 축소와 semi-민영화 정책에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나설 것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사용자를 상대로 한 실질임금 확보 교섭이나 공공부문 축소 반대 투쟁에만 머물러서는 “밥그릇 지키기 투쟁”이라는 정치적 프레임에 갇혀 고립되고 사회적 지지와 지원을 받지 못할 위험성이 크다. 고물가의 민생위기 속에서 이러한 민생위기 해결을 위한 정부의 위와 같은 적극적 역할을 방기하고 오히려 재벌·부자 감세, 공익적 규제의 해체, 공공서비스 축소 등 민생의 위기를 더욱 부추기는 방향으로 나가는 윤석열 정부의 정책기조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운동 속에서 노동조합의 요구도 해석되어야 한다.
노동자의 사회적·경제적 지위 향상과 근로조건의 개선을 위한 노동조합의 역할을 사용자를 상대로 한 경제적 교섭에 가두어서는 안 된다. 민생위기 상황에서 자칫 신빈곤층으로 전락하거나 생존위기에 놓일 수 있는 중소기업과 종사 노동자‧비정규직, 자영업자, 세입자, 소비자 등 경제적 약자 계층이나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려는 시민단체 등과 연대하여 불평등 해소와 합리적인 민생보호 규제를 위한 개혁입법 운동, 재벌·부자감세 저지 및 민생예산 확대운동 등에 나서야 한다.
<미주>
1)한국금융연구원(2022. 7. 31.)의 「국내 금융권 다중채무자 현황 및 리스크 관리 방안」에 따르면 3개 이상의 금융기관에 채무를 지고 있는 다중채무자는 2022년 4월말 현재 451.0만 명으로 채무액은 598.8조원에 달한다.
2)조선일보(2022.5.16.), “4년간 530만원 늘었다는 소득, 원리금 상환하면 되레 60만원 줄어”
3)국회 예산정책처(2014), 『MB정부 감세정책에 따른 세수효과 및 귀착효과』.
4)한국일보(2015.2.26.), 「MB감세, 투자·고용 대신 기업 곳간만 불렸다」.
5)T뉴스타워(2016.9.12.), 「서민 죽고 재벌만 산다...대기업 사내 유보금 521조원」.
6)한겨레신문(2022.6.8.), 「MB가 깎아줬다 원상회복했는데... 법인세 감세 3대 쟁점」.
7)고용노동부(2022.5.25.)의 “고용 형태별 근로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1년 6월 기준 국내 임금 근로자 1인 이상 사업체의 저임금 근로자 비중은 15.6%로 전년(16.0%)보다 0.4%포인트 낮아졌다. 저임금 근로자는 임금 수준이 중위 임금의 3분의 2 미만인 근로자를 가리킨다. 작년 6월 기준 중위 임금은 월 297만원이다.
8)열심히 일해도 근로소득만으로 기본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운 계층을 ‘워킹푸어(Working Poor: 근로 빈곤층)’라고 하는데, 워킹푸어라는 말은 1990년대 중반 미국에서 생겨나 2000년대 중반 이후 전 세계에 퍼졌다. 이들은 월급이 나오는 일자리가 있어 얼핏 보기엔 중산층처럼 보인다. 그러나 고용도 불안하고 저축도 없어 언제라도 빈곤층이 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살아간다(월드투데이: https://www.iworldtoday.com)
9)중소벤처기업부(2021), 오픈마켓, 배달앱, 숙박앱, 부동산앱 등 이용사업자 1000개사를 대상으로 벌인 「2021년 온라인플랫폼 이용사업자 실태조사」 결과
10)특정 재화나 서비스의 이용이 다른 선택을 제한해 기존의 것을 계속 구매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11)기획재정부(2022.7.29.), 「생산성·효율성 제고를 위한 새정부 공공기관 혁신가이드라인」.
12)민주노동연구원(2022.8.1.), 「윤석열 정부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비판적 검토」.
13)공공기관 자체를 민영화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기관의 주요사업 중 일부를 민간에 사업이전하는 것을 “semi-민영화”라고 표현하였다.
14)중소벤처기업연구원(2022.4.5.), 「국제 원자재가격 상승이 중소기업에 미치는 영향과 시사점」, KOSI 중소기업포커스 제22-07호.
15)T뉴스타워(2016.9.12.), 「서민 죽고 재벌만 산다...대기업 사내 유보금 521조원」.
<참고문헌>
국회 예산정책처(2014), 『MB정부 감세정책에 따른 세수효과 및 귀착효과』.
기획재정부(2022. 7. 29.), 「생산성·효율성 제고를 위한 새정부 공공기관 혁신가이드라인.
민주노동연구원(2022.8.1.), 「윤석열 정부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 비판적 검토」, 이슈페이퍼 2022-12호.
중소벤처기업부(2021), 「2021년 온라인플랫폼 이용사업자 실태조사」.
중소벤처기업연구원(2022.4.), 「국제 원자재가격 상승이 중소기업에 미치는 영향과 시사점」, KOSI 중소기업포커스 제22-0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