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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정부 실업급여제도 개정방향의 문제점과 고용보험제도 개선과제

남재욱_한국교원대학교 교수

등록일 2023년07월31일 14시33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요 약

윤석열 정부는 실업급여의 부정수급이나 도덕적 해이 문제가 크다는 인식 하에 구직급여 하한선을 인하하고, 피보험 단위기간 조건을 강화하며, 반복수급자에 대한 급여삭감 등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제도의 개정은 실업급여 필요성이 가장 높은 노동시장 취약계층의 수급권을 약화시키는 것이라는 문제가 있다. 이 글에서는 이와 같은 관점에서 우리나라 실업급여 제도의 현황을 OECD 국가들과 비교하여 살펴보았다. 또한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현실에 근거한 고용안전망 개혁이 어떤 방향을 지향해야 하는지에 대해 제언하였다.

제도의 한 측면만을 놓고 OECD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실업급여의 하한선이 비교적 높고, 구직급여 수급을 위한 피보험 단위기간이 짧은 편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제도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이와 같은 제도 설계가 실제로 부정수급이나 도덕적 해이로 연결될 것으로 볼 근거는 부족하다. 우리나라 실업급여는 그 수급 기간이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짧은 편이고, 자발적 실업에 대해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다. 따라서 실업자가 급여수급을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실업을 선택하거나 실업급여 수급을 위해 장기간 실업할 여지가 적다. 짧은 피보험 단위기간 조건은 반복 실업을 통해 급여수급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이지만, 자발적 실업에 대해 급여를 지급하지 않기에 반복 실업의 원인 역시 수급자보다는 노동시장 환경에 있다.

정부는 구직급여 수급자와 반복수급자 증가 및 그로 인한 고용보험 재정 적자문제를 지적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부정수급보다는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요인과 그동안 고용보험 적용을 확대해온 정책의 “성공”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고용보험 재정 안정화를 위한 조치는 중요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실업급여 삭감보다는 재정적자의 원인과 문제가 되는 정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고용보험이 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재원 조달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제도 전체를 놓고 비교했을 때 현재 우리나라 실업급여가 삭감이 필요할 만큼 지나치게 관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핵심적 특성을 중층적 분절로 인한 사각지대와 취약계층 근로자의 고용 및 불안정이라고 보았을 때, 바람직한 실업급여 제도 개혁은 이 두 가지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전자의 해소를 위해서는 지난 정부부터 추진 중인 ‘전 국민 고용보험’을 완성하여 소득 중심 인별 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하는데 현 정부의 추진 현황은 지지부진하다. 후자의 해소를 위해서는 고용보험을 보충하는 비기여 소득보장 제도 강화가 필요한데 국민취업지원제도는 아직 그 포괄성과 관대성에서 개선이 필요하다. 정부가 추진 중인 개정안은 이 두 방향과는 무관하거나 반대되는 실업급여 축소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노동시장 상황에 부합하지 않는다.

정부가 진정으로 실업급여의 부정수급 관리에 목적이 있다면 실업급여 자체의 축소를 통해 취약 노동자의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고용서비스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여 실업자 개개인에 대한 지원과 관리를 함께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전 국민 고용보험의 완성과 노동인구에 대한 비기여 소득보장 제도 강화를 추진하는 것이 이 정부가 내세우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혁’ 및 ‘약자복지’에 부합하는 조치가 될 것이다.

 

 

Ⅰ. 들어가며

 

실업급여가 도마 위에 올랐다. 정부여당은 지난 7월 12일 개최한 공청회에서 “실업급여가 악용돼 달콜함 시럽급여”(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 의장)라거나 “실업급여로 샤넬 선글라스를 사고 해외여행을 간다”(실업급여 업무 담당 공무원)는 발언으로 공분을 샀다. 이는 단지 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나온 돌출 발언으로 제도개혁 논의의 본질과는 무관한 해프닝이라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복지축소를 추구하는 정부에서 이런 종류의 ‘해프닝’이 일어나는 것이 그렇게 예외적인 일은 아니다. 일례로 미국 레이건 대통령의 ‘복지여왕’(가명으로 복지혜택을 잔뜩 받아 캐딜락을 몰고 다닌다는 흑인여성) 이야기는 이후 근거가 부족함이 밝혀졌지만, 레이건 정부의 복지축소가 지지를 얻는데 큰 힘이 되었다.

 

정부와 여당이 다소 무리한 ‘시럽급여’와 ‘샤넬 선글라스’ 이야기를 끄집어낸 것도 이와 비슷한 경우다. 이 발언들은 사회권으로서의 복지에 대한 집권당 정치인과 노동행정기관 관료의 인식이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지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실업급여 축소를 위한 군불떼기로 볼 수도 있다. 복지축소에 대한 시민들의 반발을 억누르는데 복지 수급자에 대한 부정적 시선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번 공청회 외에도 그간 몇 차례 실업급여 삭감 의지를 드러내 왔다. 지난해부터 실업급여 부정수급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거듭 제시해 왔으며, 올해 1월 ‘고용서비스 고도화 방안’ 발표 시에도 실업급여 반복수급 제한의 의지를 보였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실업급여, 고용유지지원금, 긴급고용안정지원금 등의 지출이 증가했고, 이에 따른 고용보험 재정 악화를 실업급여 수급 기준 강화 및 축소를 통해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실업급여를 삭감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이번 발언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물론 어떤 복지제도에도 부정수급은 발생하며, 이를 바로잡는 것은 제도 신뢰를 위해 중요하다. 그러나 정부의 접근은 단순히 부정수급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수준을 넘어 제도의 포괄성이나 관대성 자체를 약화시키고자 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는 2000년대 이후 한국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이 부각되며 지속되어 온 고용안전망 강화의 방향과 충돌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이하에서는 우선 현 정부의 실업급여 개정안의 방향과 그 문제점을 살펴본다. 이후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현실에 기초한 실업급여 개정의 방향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검토하고, 이를 정부 개정안과 대비하여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진정으로 실업급여의 부정수급이나 도덕적 해이를 막고자 한다면 필요한 것은 오히려 고용서비스 강화라는 점을 제안한다.

 

Ⅱ. 윤석열 정부 실업급여 개정 논의방향과 문제점

 

1. 윤석열 정부 실업급여 개정 논의의 방향

 

윤석열 정부의 실업급여 개정의 방향은 그간 몇 차례에 걸쳐 제시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논란이 된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 주최 ‘실업급여 제도 개선 공청회’(`23.7.12) 외에도 올해 1월 고용노동부의 ‘고용서비스 고도화 방안’(`23.1.28)에서도 구직급여의 반복수급 및 부정수급 관련 논의가 일부 제시되었다. 또한 지난 5월에는 국민의힘 홍석준 의원이 대표발의한 「고용보험법 일부개정 법률안」(이하 ‘홍석준 의원안)을 통해 고용보험 개정 관련 내용을 법안으로도 구체화한 바 있다. 이를 바탕으로 윤석열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실업급여 개정의 주요 방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현재 최저임금의 80%로 설정되어 있는 구직급여 하한선이 너무 높아 조정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최근의 공청회에서 최저임금 노동자보다 구직급여 수급자의 소득이 더 높은 역전현상이 일어나고 OECD에서도 개선 권고를 했다는 내용이 이와 관련이 있다. 조정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 홍석준 의원안에서는 하한선을 폐지하는 방안을 제시했고, 최근의 공청회에서는 폐지 또는 하향조정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둘째, 구직급여 수급을 위한 피보험 단위기간을 연장한다는 내용이다. 현재 구직자가 구직급여를 수급하기 위해서는 최근 18개월 간 최소 180일(주말 등 고려 시 약 7개월) 동안 고용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현재 정부와 여당은 이 기준이 지나치게 관대하여 단기간 취업하여 수급자격을 획득하고 구직급여를 반복수급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으며, 국제적으로 비교했을 때도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자격을 획득할 수 있기에 조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홍석준 의원안에서는 이직일 이전 20개월 중 10개월로 조정하자는 방향을 제시했다.

 

셋째, 구직급여의 반복수급을 제한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구직급여를 반복수급(5년 간 3회 이상)하는 수급자에 대해 재취업 요건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구직급여를 최대 50%까지 감액하고, 대기기간을 기존 7일에서 최대 4주까지 연장하겠다는 방안이다. 다만 이는 현 정부에서 시작된 논의는 아니며, 이미 지난 2021년 정부안으로 제시되었던 고용보험 개정안의 내용이다. 현 정부에서는 지난 1월 ‘고용서비스 고도화 방안’에서 이 방향으로 제도를 지속적으로 개정해야 할 필요성을 제시하였다.

 

요약하면 현 정부의 고용보험 실업급여 개정의 방향은 ① 고용보험의 하한선 폐지 또는 하향 조정, ② 피보험 단위기간의 연장, ③ 반복수급자에 대한 급여감액 및 대기기간 연장의 세 가지이다. 실업 전 임금이 낮을수록, 취업기간이 짧을수록, 실업이 잦을수록 불리하다.

 

2. 윤석열 정부 실업급여 개정 논의 근거의 취약성

 

현 정부가 주장하는 이른바 ‘노동개혁’의 방향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개혁’으로 요약된다. 현재 우리 노동시장에 이중구조가 형성되어 있으며, 이를 혁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비추어 보면 지금의 실업급여 개정 방향은 의아하다. 실업 전 임금이 낮을수록, 취업기간이 짧을수록, 실업이 잦을수록 불리하다는 것은 명백하게 노동시장 이중구조에서 취약한 위치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노동시장 취약계층에게 불리한 개혁이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나라 실업급여 제도에서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문제가 심각하다는 정부의 주장이 명백한 사실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근거는 실업급여 최저하한선 수급자와 최저임금 노동자 간 소득역전이 일어난다거나 실업급여 수급기간 중 재취업률이 28%에 불과하다는 지적 정도다. 여기에 구직급여 수급자 및 반복수급자가 증가하고 있고, 그로 인해 실업급여 기금이 2018년 이후 적자라는 점이 근거로 제시된다.

 

그러나 최저하한선 수급자와 최저임금 노동자 간 소득역전 산정에 사용된 세율 10.3% 일괄적용에는 문제가 있다. 우선 최저임금 노동자는 근로소득세 실효세율이 0%에 가깝고, 사회보험 사각지대에 있을 가능성도 높으며, 사회보험이 적용되더라도 두루누리 사회보험료 지원 등의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일괄적으로 10.3%를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또한 실업급여 수급자라도 어떤 식으로든 건강보험료를 납부할 가능성이 높으며, 국민연금 수급권을 인정받기 위해 실업 크레딧을 신청할 경우 25%를 본인 부담한다. 실제 소득역전이 일어나는 경우가 어느 정도인지는 훨씬 더 엄밀한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최저임금 노동자와 실업급여 수급자 간 소득역전이 마치 일반적인 현상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과장되었다.

 

실업급여 수급자의 재취업률이 낮다거나 구직급여 반복수급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 구직급여 수급자가 증가하고 실업급여 재정이 악화된다는 것 역시 도덕적 해이의 문제로 곧바로 연결될만한 근거로는 불충분하다. 우선 재취업률이나 반복적 실업은 노동시장 상황의 영향을 받는데 주지하는 것처럼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해 최악의 노동시장 상황을 경험했다. 이는 당연히 실업, 반복실업, 취업의 정체 증가 효과를 가졌을 것으로 예측할 수 있으며, 구직급여 수급자 증가, 반복수급 증가, 재취업률 하락,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고용보험 기금의 약화로 연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낮은 재취업률에는 우리나라의 짧은 구직급여 수급기간 역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고용보험은 여러 사회보험 중에서도 자동 안정화 장치(automatic stabilizer)로서의 기능이 가장 뚜렷한 제도다. 경기가 활황일 때는 실업자가 감소하고 취업자가 증가함으로 인해 기금이 쌓이며, 자동적으로 총수요를 감소시킨다. 반면 경기가 불황일 때는 실업급여 지출은 증가하고 수입은 감소함으로써 총수요를 증가시킨다. 따라서 이제 막 코로나19로 인한 노동시장 위기를 통과한 현재 상황에서 얼마간의 고용보험 기금 적자가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오히려 고용보험이 경기위축 상황에서 제 기능을 수행했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고용보험 기금의 적자에는 경기 요인 뿐 아니라 정책 요인의 영향도 나타났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 수 년 간 정부는 고용안전망 강화를 중요한 정책과제로 삼아왔으며, ‘전 국민 고용보험’을 추진하여 고용보험의 적용범위를 확대해왔다. 이와 같은 노력이 어느 정도라도 성과를 거두었다면 고용보험 재정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새롭게 고용보험의 적용범위에 포함된 이들은 종전의 가입자에 비해 실업 위험이 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면 이는 정책의 실패가 아닌 성공의 결과이며, 고용보험이 마침내 실제로 실업보호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보호를 제공하기 시작했다는 시그널이다. 이를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취약계층의 고용보험 수급권을 약화시키는 개혁으로 나아가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물론 고용보험 기금의 적자가 장기간 이어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지난 수년 간 고용보험 적자의 어느 정도가 코로나19와 같은 단기적 경기 요인에 기인하며, 어느 정도가 정책의 영향 등으로 인한 가입자 구조변화의 영향인지 – 또한 어느 정도가 부정수급 또는 도덕적 해이의 영향인지도 - 엄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의 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적정한 보험료율 및 재정 관리방안을 도출해야 한다. 사실 우리나라의 실업급여 보험료율은 노사 부담 각각 0.9%에 불과하여, 우리와 유사한 사회보험방식의 실업급여를 운영하는 독일(노사 각각 1.3%), 오스트리아(노사 각각 3%), 프랑스(사용자만 4.05%), 네덜란드(사용자만 7.65%)에 비해 현저히 낮다.1) 뿐만 아니라 2020년 우리나라의 GDP 대비 실업자 소득보장에 대한 지출 수준은 0.67%로 OECD 회원국 평균(1.45%)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2) 물론 보험료율이나 소득보장 지출은 해당 국가의 제도설계나 실업률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점에서 단순 비교할 수 있는 지표는 아니다. 그러나 고용보험 적자가 제도가 너무 관대해서라기보다는 재원조달이 충분치 않아서일 가능성을 고려해야 할 근거로는 충분하다.

 

비교의 관점에서 볼 때 정부가 제시하는 실업급여 개정 방향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주요국의 실업급여 제도를 비교할 때 한국의 급여 하한선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사실이다. OECD의 2022년 비교자료3)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실업급여 하한선은 평균임금의 44% 수준으로 OECD 국가들 중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피보험 단위기간이 짧은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 구직급여를 수급하기 위해서는 최근 18개월 간 180일(주말 등 고려 시 약 7개월)의 고용보험 가입이 요구되는데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이 약 1년 이상의 가입을 요구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관대한 편이다. 다만 핀란드(26주/28개월), 프랑스(130일/24개월), 그리스(125일/14개월), 아이슬란드(3개월/12개월), 이탈리아(13주/4년), 룩셈부르크(26주/12개월), 네덜란드(26주/36주) 등은 우리보다 더 관대하거나 비슷한 수준의 요건을 가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짧은 피보험 단위기간은 반복수급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제도가 다른 국가들에 비해 현저히 엄격한 기준을 가진 요소도 있다. 대표적으로 급여 수급기간이다. OECD의 비교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실업급여 최대수급기간은 270일로 OECD에서 가장 짧은 국가들 중 하나다. 그러나 각 국가의 실업급여 수급기간은 대상자의 연령이나 기여기간 등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일반적이며, 이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이 점을 고려하여 유럽 주요 복지국가와 우리나라의 실업급여 수급 최소 및 최대 기간을 비교하면 <표 1>과 같다. 우리나라의 실업급여 수급기간은 최대와 최소 기준 모두에서 가장 짧은 수준임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실업급여가 엄격한 또 하나의 측면은 자발적 실업에 대한 제재다. 우리나라의 구직급여는 비자발적 사유로 인한 퇴직 시에만 지급된다. 근로조건·임금·근로시간 등에서의 부당한 대우나, 직장에서의 차별, 성희롱·성폭력·성적 괴롭힘, 사업장의 도산이나 폐업, 사업주의 퇴직 권고, 통근의 곤란, 가족의 질병, 본인의 건강상 사유, 정년, 계약만료 등이 그 사유에 해당한다(고용보험법 시행규칙 [별표2] 참조). 대부분의 국가들이 자발적 퇴직 시 급여 유예기간을 늘리는 방식으로 제재하지만 급여를 전혀 지급하지 않는 경우는 많지 않다. OECD의 2015년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 40개국 중 13개국만이 자발적 실업에 대한 수급자격을 완전히 박탈하고 있었다(Langenbucher, 2015).

 
 

노골적이고 불법적인 수준의 속임수를 논외로 한다면, 실업보험 수급자의 ‘도덕적 해이’가 나타날 수 있는 경로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의도적으로 실업을 초래하여 실업급여에 의존하는 경우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실업자 본인의 중대한 귀책사유나 자발적 의사에 의한 실업에 급여를 지급하지 않으므로 이와 같은 경우는 발생하기 어렵다. 둘째, 일단 실업한 이후 장기간 실업상태에 머물며 실업급여를 편취하는 경우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또한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데 실업급여 수급기간이 짧기 때문이다. 셋째, 실업급여 수급 후 단기간 취업하여 실업급여 자격만 재취득하고 이후 실업하여 다시 실업급여를 수급하는 경우다.

 

정부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에서 세 번째 유형의 문제가 크다고 보고 있다. 피보험 단위기간의 축소나 실업급여 반복수급자에 대한 급여삭감을 언급하는 것은 단기간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는 구직자를 염두에 둔 것이다. 그러나 반복되는 취업과 실업을 과연 실업자의 의도적 행위라고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자발적 실업에 대해 실업급여가 지급되지 않는 상황에서 반복적 실업자는 각각의 실업이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닌 경우에 한해서만 실업급여를 수급한다. 그렇다면 구직급여의 반복수급은 의도적으로 실업하는 구직자의 부정이 아닌 장기간 일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를 얻기 힘든 상황에 원인이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뿐만 아니라 만약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에 정부의 책임이 있다고 본다면, 그리고 실업자의 재취업에 공공 고용서비스 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면, 이 문제의 원인은 적어도 일정 부분 정부의 정책 실패라고 말할 수도 있다.

 

결국 종합적으로 볼 때 현재 우리나라 고용보험 실업급여가 노동시장 취약계층에게 더 불리해지는 방향으로 제도를 긴급히 손질해야 할 정도로 부정수급 혹은 도덕적 해이 문제가 심각하다는 근거는 부족하다. 구직급여 수급자의 증가 및 고용보험 재정의 악화는 오랫동안 사각지대가 크고 노동시장 내부자만을 보호한다는 비판에 직면해왔던 고용보험이 마침내 조금씩이나마 제 기능을 하게 된 결과일 수도 있다. 물론 장기적으로 고용보험 재정의 안정성은 중요하지만, 이는 실업급여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노동시장 취약계층을 겨냥한 급여 삭감 보다는 실업급여가 제 역할을 하기 충분한 정도의 재정을 마련하기 위한 계획을 필요로 한다.

 

Ⅲ. 노동시장 환경을 고려한 실업급여 개혁방향

 

1.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환경

 

한 국가의 사회보장제도는 그 제도가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위험이 나타나는 양상과 관련이 있다. 실업급여 제도는 우리나라에서 ‘실업’이라는 사회적 위험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며, 이를 어떻게 보호할지를 고려해서 설계하고 개혁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첫 번째 특성은 노동시장 분절 혹은 이중구조에 있다. 노동시장 분절이 우리나라만의 특성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그 분절의 양상이 중층적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가 주목받는 서구 국가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고용형태 못지않게 기업규모에 따른 분절이 심각하다(정이환, 2013; 이철승, 2017; 김유선, 2019 등). 여기에 특수형태근로종사자와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등 근로계약관계가 아니지만 종속성을 지닌 종속계약자 문제도 주요하게 부각되고 있다(장지연·박찬임, 2019; 강금봉, 2022; 남재욱·이다미, 2023). 이 문제들과 상당부분 겹치긴 하지만 좀 더 오래된 노동시장 불평등 문제로 임시·일용직 및 영세자영업의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전병유, 2011; 김도균 외, 2017). 기업규모, 고용형태, 종사상 지위에 따른 분절이 중첩되어 있다.

 

노동시장이 중층적으로 분절되어 있다는 점은 한국 노동시장에서 완전히 안정적인 고용의 규모가 작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고용형태만을 기준으로 볼 때는 정규직이면 안정적이라고 하겠지만, 기업규모까지 고려하면 대기업 정규직이어야 안정적이라 볼 수 있다. 여기에 노동시장에서 상당한 규모를 차지하고 있는 종속계약자나 영세자영업자 등 비임금노동의 불안정성까지 고려하면, 고용과 소득이 모두 안정된 일자리는 그리 많지 않다. 실제로 한국 노동시장 분절에 관한 기존 연구들은 비교적 안정적인 노동시장 내부자의 비중을 임금근로자의 약 20~30% 내외, 전체 취업자의 20%를 넘지 않는 수준으로 보고 있다(정이환, 2013; 이철승, 2017; 전병유, 2018; 김유선, 2019).

 

노동시장의 중층적 분절이 초래하는 결과는 다양하지만, 실업급여 관점에서는 특히 고용관계의 불안정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22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임금근로자의 평균근속기간은 6년이다. 이는 OECD 평균(9.3년)보다 크게 낮은 것은 물론 같은 해 조사가 이루어진 OECD 27개 국가들 중 가장 짧은 것이다. 특히 한국 임금근로자의 평균근속은 정규직만을 놓고 보아도 8년 1개월로 비정규직까지 포함한 OECD 평균보다 짧고, 비정규직의 경우 2년 4개월이어서 정규직-비정규직 간 격차도 크다. 1년 미만 근속자의 비율 역시 31.6%로 OECD 평균(21.1%)보다 현저히 높고, 콜롬비아(41.4%)와 영국(33.0%)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이처럼 짧은 평균근속기간은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이동성이 높으며, 단기간 취업 후 실업하는 노동자의 비중이 높다는 것을 시사한다.4)

 

2. 노동시장 환경에 조응하는 실업급여 개혁 과제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중층적 분절은 고용보험 사각지대 문제의 중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다른 고소득 국가에 비해 두터운 자영업 부문의 존재와 2000년대 이후 증가해온 특수형태근로종사자, 그리고 최근 주목받고 있는 플랫폼 노동자 등 고용관계 밖 노동의 비중이 높다는 점은 법적으로 고용보험에서 배제된 취업자(법적 사각지대)를 크게 증가시켜왔다. 여기에 영세한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와 임시·일용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전근대적 노동시장’(전병유, 2011) 종사자들의 경우 법적 가입대상이지만 사업주의 가입 의무 미이행으로 인해 실제로는 고용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경우(실질적 사각지대)도 많다. 정규직에 비해 비정규직 노동자의 실질적 사각지대가 크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법적 사각지대와 실질적 사각지대 문제가 모두 노동시장 분절의 경로를 따라 나타나고 있음이 확인된다.

 

2000년대부터 시작되어 지난 2021년 국민취업지원제도 도입으로 이어진 ‘한국형 실업부조’ 논의나 지난 정부에서 시작되어 현재까지 진행 중에 있는 ‘전 국민 고용보험’은 모두 노동시장 분절에 따르는 사각지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되었다. 한국 노동시장의 분절로 인한 사회보험의 기능부전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고용보험을 보충할 수 있는 자산조사형 소득보장 제도를 도입하고, 고용보험 제도의 적용범위를 자영업자나 종속적 계약자까지 확대하고자 한 것이다.

전 국민 고용보험은 지난 정부에 수립된 로드맵을 따라 현 정부에서도 진행되어 왔다. 2020년 12월 예술인을 시작으로 2021년 7월부터 단계적으로 노무제공자5) 19개 직종에 대해 고용보험을 적용하고 있다. 또한 예술인과 노무제공자를 고용보험에 적용하기 위해 필요한 실시간 소득파악제도를 함께 추진했는데, 일용근로소득 및 인적용역 사업소득을 지급하는 원천징수의무자의 신고의무를 강화하고 매월 신고하도록 주기를 단축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전 국민 고용보험 자체는 고용보험의 법적 사각지대와 주로 관련되지만 실시간 소득파악 체계의 구축은 실질적 사각지대 감소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전 국민 고용보험의 추진이 당초의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2020년 문재인 정부에서 제시한 전 국민 고용보험 로드맵에서는 고용보험 가입자 수는 2019년 1,367만 명, 2022년 1,7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지만(관계부처합동, 2020) 2023년 5월말 기준 고용보험 가입자 수는 1,518만 명에 머물고 있다(고용노동부, 2023. 5). 2022년 4월 기준으로 노무제공자 고용보험에 가입한 가입자는 100만 명을 조금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는데,6) 지난 2018년 한국노동연구원의 연구에서 추정된 종속적 계약자(221만)의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정흥준·장희은, 2018). 자영업자의 경우 2021년부터 사회적 대화기구를 구성하고 2022년까지 단계별 적용방안을 수립한다는 계획이었지만, 현재까지 감감무소식이다.

 

사실 현재의 전 국민 고용보험 적용방식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종전의 고용보험은 기본적으로 임금노동자의 ‘실업’을 보장하는 제도로 설계되었고, 이는 ‘고용’과 ‘실업’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비임금노동자의 소득활동 방식과 상당한 정합성이 낮다. 이 차이를 보완하기 위해 전 국민 고용보험 추진 과정에서 피보험 자격의 이중취득을 가능하게 하고, 복수의 소득원을 합산하여 가입이 가능하게 했으며, 소득 감소를 급여 지급이 가능한 이직사유로 인정하는 등의 조치가 이루어지긴 했다. 그러나 비임금노동자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실업급여가 도입되지 않았고, 복수의 소득원을 합산하는 것도 제한적이다. 임금노동자의 실업을 보장하는 제도에 ‘특례’ 방식으로 예술인과 노무제공자를 적용하는 접근은 그 한계가 뚜렷하다. 이는 노무제공자를 ‘직종’ 중심으로 적용하는 것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임금근로관계를 전제로 한 제도에 노무제공자를 끼워 넣다 보니 특수형태근로, 플랫폼 종사자 전반으로 확대하지 못하고 관리 가능한 직종에 제한하여 적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 국민 고용보험 로드맵의 마지막 단계는 이를 해소하는 것에 있었다. 2022년~2023년 사이에 임금노동자에 대한 관리체계를 ‘근로시간’ 기준에서 ‘소득’ 기준으로 변경하고, 2024년~2025년에는 소득기반 인별 관리 체계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만약 이 단계가 실현된다면 고용보험이 보장하는 사회적 위험은 ‘실업’이 아닌 ‘소득’이 되는 것이며, 이를 통해 다양한 방식의 소득활동을 고용보험의 틀 안에서 보호할 수 있게 된다. 임금노동자의 ‘실업’을 보호하는 제도에 예술인과 노무제공자가 특례로 적용되는 방식이 아닌 모든 취업자의 ‘소득’을 보호하는 제도로 변화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마지막 단계가 제대로 추진되고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실시간 소득파악 체계 구축을 위한 ‘조세 및 고용보험 소득정보연계추진단’(기획재정부)과 ‘소득자료관리 준비단’(국세청)은 모두 해체되었다. 전 국민 고용보험제도에 관한 논의를 진행해온 ‘소득기반 고용보험제도개선 TF’(고용노동부)에서는 뜬금없이 당초의 목적과 관계없는 실업급여 하한선 하향 방안이 제기되었고, 해당 기구에 참가해온 양대노총이 이에 반발해 참여를 중단했다.7) 임금노동자의 소득기준 관리방식 적용은 지난해에서 올해 사이에 이루어져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진전이 보이지 않는다. 전 국민 고용보험이 당초의 계획대로 추진되는 것인지 우려하게 하는 대목이다.

 

한국 노동시장의 분절이 고용보험의 적용범위에서 고려해야 할 중요한 문제라면, 그 분절의 결과로 나타나는 불안정은 고용보험의 급여지급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문제다. 앞서 살펴본 노동시장의 불안정은 실업과 취업을 반복하고, 취업해 있는 동안에도 소득이 충분치 못한 근로빈곤층 증가의 원인이 된다. 특히 이들 중 상당수가 고용보험의 수급자격이 없기에 ‘한국형 실업부조’를 도입하여 고용보험 수급자격이 없는 이들의 소득을 지원해야 한다는 논의가 그간 이루어져 왔다(이병희, 2013). 국민취업지원제도 도입의 배경이다.

국민취업지원제도는 도입 이후 대상 범위를 넓혀 왔지만, 기본적으로 소득보장보다는 취업 프로그램 제공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소득보장의 기간도 6개월에 불과하고, 급여 수준도 월 50만원으로 낮아 실질적으로 노동시장 취약계층의 소득을 보장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정부에서 구직급여 하한선 조정 필요성의 근거로 제시한 OECD 보고서에서도 – 정부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 국민취업지원제도의 급여 수준이 평균임금의 14%에 불과해 다른 OECD 국가들이나 구직급여 수준에 비해 너무 낮다는 점을 지적한다(OECD, 2022). 올해부터 부양가족이 있는 경우 추가 급여를 지급함으로 인해 상황이 조금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노동시장 취약계층의 소득보장제도로서의 역할에는 한계가 크다.

 

정부가 개혁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구직급여의 짧은 피보험 단위기간은 우리 노동시장의 불안정성과 조응하는 측면이 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나라의 피보험 단위기간 조건은 비교적 관대한 편이지만, 노동시장의 이동성·불안정성은 가장 높은 수준이다. 우리와 비슷하거나 더 관대한 피보험 단위기간 조건을 가진 국가들보다도 우리나라 임금노동자의 평균근속기간은 훨씬 더 짧다. 단순히 피보험 단위기간 조건만 해외와 비교할 것이 아니라 노동시장의 여건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현재의 노동시장 상황을 그대로 둔 채 피보험 단위기간 요건만 엄격하게 하는 것은 고용보험 재정에 이로울지 모르지만 그 대가로 취약계층 노동자의 고용보험 수급 가능성을 낮춘다. 국민취업지원제도를 포함한 비기여 소득보장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고용보험 수급 가능성 약화는 직접적으로 취약계층 노동자의 생활을 위협할 것이다. 이는 정부가 표방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혁’이나 ‘약자복지’의 방향과는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실업급여 반복 수급자가 많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노동시장 여건을 개선함으로써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피보험 단위기간 조건을 엄격하게 한다고 노동시장 상황이 개선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전 국민 고용보험의 추진이나 국민취업지원제도 도입과 같은 비기여 소득보장 제도 강화는 모두 우리나라 노동시장 상황과 그 상황에 따른 대응을 위한 조치들이었다. 노동시장의 분절과 불평등, 그로 인한 불안정성 증가라는 환경 속에서 고용보험의 사각지대를 축소하고 취약 노동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조치를 강화해온 것이 지난 수 년 간의 고용안전망 강화의 흐름이었다. 비록 추진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과 한계가 노출된 것도 사실이지만, 적어도 전체적인 방향성은 실질적 보호의 강화를 추구해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현 정부가 추진하는 실업급여의 축소 지향적 개혁 방향은 종전의 방향과 충돌한다. 특히 피보험 단위기간을 늘리고 반복수급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상황에 있는 취약 노동자들의 처지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반복수급이 그 자체로 부정수급이 아닌데 이를 부정수급 취급하는 정부의 방향은 우리나라의 불안정 노동시장의 피해자인 취약 노동자에게 불안정 노동시장의 책임을 지우는 것이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현실에 맞게 고용안전망을 재조정하기 위해서는 실업급여 하한선 인하나 피보험 단위기간 조건 강화가 아니라 전 국민 고용보험의 완성과 국민취업지원제도의 실질적 소득보장 기능 강화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요컨대 우리나라 노동연령대 인구에 대한 사회보장제도의 핵심과제는 여전히 고용안전망 강화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 이는 정부가 실업급여 하한선 하향이 필요하다는 근거로 인용한 OECD 보고서의 핵심 내용이기도 하다(OECD, 2022).

 

3. 구직급여 하한선 조정의 고려사항

 

정부의 개혁 논의 중 우리나라 고용보험 실업급여의 하한선이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높다는 점은 일정한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구직급여 하한선과 제도의 다른 측면 및 제도환경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

이는 윤석열 정부에서 구직급여 하한선 조정의 근거로 내세운 OECD 보고서8)에서 잘 드러난다. OECD는 지난 2022년 9월 「OECD Economic Survey Korea」를 발표하고 한국 경제에 대한 몇 가지 제언을 제시한 바 있다. 이 때 핵심적 정책제언 중 하나로 제안한 것이 사회안전망 강화(strengthening the social safety net, 2장)다(OECD, 2022).

이 보고서에서 고용안전망에 관한 제언은 첫째, 고용보험을 임금근로자 뿐 아니라 취업자 전반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 둘째, 근로연령대 인구에 대한 비기여 사회안전망(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국민취업지원제도)을 더욱 확대하고 급여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것, 셋째, 실업위험을 낮추고 취업유인을 높이는 방향으로 실업급여의 제도 설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직급여의 하한선이 높아 소득역전이 일어날 수 있기에 이를 조정해야 한다는 논의는 세 번째 제도 설계의 개편방안의 한 가지로 제시된다.

 

그러나 보고서 전체에서 구직급여 하한선 조정에 대한 내용은 일부에 불과하다. 보고서 2장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구직급여 하한선 조정과는 별도로 사회안전망 강화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예컨대 이 보고서는 구직급여의 하한선은 낮추되 급여 수급기간 연장 및 상한선 상향을 검토할 필요성을 시사하고 있으며, 자영업자를 포함하는 취업자 전반으로의 고용보험 확대가 단지 법제도 측면에서 뿐 아니라 제도의 집행 수준에서 실효성 있게 추진되어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9) 게다가 이 보고서는 기초생활보장제도, 국민취업지원제도 등의 급여 수준이 - 구직급여 하한선과 반대로 - 다른 국가들에 비해 낮은 수준이기에 이를 상향조정해야 한다는 것도 제언했다. 요컨대 한 편으로는 고용보험의 하한선을 낮추어야 할 필요성을 시사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취약계층 실업자, 특히 고용보험 수급자격 조차 없는 취약계층 실업자의 실질소득보장을 높여야 한다는 점도 제시한 것이다.

 

OECD 보고서의 접근은 우리가 구직급여 하한선의 조정을 검토한다면 어떤 관점을 취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구직급여 하한선은 다른 제도 밖에서 단독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며, 고용보험 내에서는 고용보험의 적용범위, 급여 수급기간, 급여 상한선 등과 고용보험 밖에서는 비기여 소득보장제도와 상호작용하며 작동한다. 따라서 급여 하한선을 낮춤으로써 관대성을 희생하는 조치를 취하고자 한다면, 동시에 제도의 다른 측면에서 포괄성이나 관대성이 너무 낮지 않은지를 함께 검토하여 조정해야 한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노동시장 환경과의 관계다. 앞서 살펴본 노동시장 분절의 결과 우리나라 노동시장에는 저임금 노동자 비중이 높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의 중위임금 2/3 이하 저임금 노동자는 16.9%로 OECD 평균(13.9%, ’21년)보다 높다.10) 매년 최저임금 조정 때마다 확인되는 또 다른 사실은 최저임금 적용률과 미만률이 모두 높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높은 저임금 노동 비율은 정부가 지적한 ‘소득역전’의 한 원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것은 일부의 주장처럼 실업급여 하한선을 폐지했을 때 지급될 실업 전 임금의 60% 수준의 소득으로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운 취약 노동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실업급여가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은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현재의 실업급여 하한선이 다소 높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그 조정에 있어서는 상당한 신중함이 요구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Ⅳ. 나가며: 정말 부정수급이 문제라면

 

정부는 실업급여의 하한선 폐지 또는 하향조정, 피보험 단위기간 조건 강화, 반복수급자에 대한 급여삭감 등 제재 강화 필요성을 제기하며, 현재 구직급여 수급자, 반복수급자, 실업급여 재정적자 증가의 배경에 부정수급 혹은 도덕적 해이가 자리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시럽급여’나 ‘샤넬’ 발언 역시 실업급여 수급자의 문제가 제도의 문제를 가져오고 있다는 시각에 기초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실업급여 제도상 도덕적 해이의 여지는 오히려 크지 않으며, 반복수급을 그대로 부정수급 취급하는 시각에도 문제가 있다는 점을 살펴본 바와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부정수급이 문제라고 한다면 이에 대한 가장 좋은 해결책은 실업급여 규정 자체의 조정이 아니라 개별 수급자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부정수급을 관리하는 것이다. 부정수급 자체에 대한 개별적 관리를 선행하지 않고 반복수급을 무조건 편법으로 간주하여 일괄적으로 규정을 바꾸는 것은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는 노동시장에서 분투하고 있는 취약 노동자들에게 징벌을 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실업급여 수급자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개별 수급자의 노동시장 재통합을 위한 직업훈련 등 인적자원 투자와 일자리 매칭 등 취업지원 체계의 강화가 함께 이루어진다면 더욱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안정적인 노동시장 통합을 지원하는 것은 반복수급을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1990년대 이후 대부분의 복지국가에서 실업급여 제도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과 결합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그리고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의 핵심은 고용서비스, 그 중에서도 원스탑(one-stop) 서비스 센터로 기능하는 공공 고용 서비스의 기능과 역량을 강화하는 것에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공공 고용서비스는 그 역량과 기능을 따지기 이전에 인프라 투자 자체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GDP 대비 고용서비스 지출은 2020년 기준 0.06%로 OECD 평균(0.14%)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고용서비스 인프라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공공 고용서비스 인력은 경제활동인구 대비로 봤을 때 독일의 1/12, 프랑스의 1/11, 일본의 1/3에 불과하다(유경준, 2022). 이 정도로 부족한 투자와 인력 수준에서 양질의 고용서비스를 제공하기는 어렵다. 노동시장정책에 관한 연구들이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통해 실업급여의 실업기간 증가 효과(도덕적 해이 문제)를 개선할 수 있으며(Amable, 2009; Pareliussen, 2014),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중에서도 고용서비스의 효과성을 입증해온 점을 고려하면(Card et al., 2010; 2017) 고용서비스 강화는 매우 중요한 과제다.

 

정부도 이를 인식하고 ‘고용서비스 고도화 방안’을 내놓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인프라와 인력 확충 이야기는 빠져 있다. 고용-복지 연계의 강화, 경력설계 및 역량지원 강화, 디지털 기반 업무 효율화, 상담 인력 교육, 민간 고용서비스와의 협업 강화 등의 방안이 제시되었다. 이 방안 역시 필요한 과제이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인력부족 문제에 대한 대안이 없이 제대로 된 고용서비스가 제공되기는 어렵다. 그리고 이를 외면하고 있는 정부의 고용서비스 관련 방안은 정부의 고용보험 개정안이 정말로 부정수급을 문제시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지출을 줄여보자는 계획인지 헷갈리게 한다.

정부가 정말로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혁’과 ‘약자복지’의 방향 위에서 실업급여 부정수급을 감소시키고, 실업자의 재취업을 확대하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면 고용안전망 개혁의 우선순위는 분명하다. 우리나라 노동시장 상황에서 비롯되는 취업자의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전 국민 고용보험을 실질적인 소득 중심 제도로 발전시키고, OECD 권고대로 비기여 소득보장제도를 강화하는 것이 우선이다. 부정수급의 감소를 위해서는 취약 노동자들의 처지를 악화시키는 급여 축소보다는 고용서비스 강화의 방향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으며, 주로 고용보험 재정 문제에 초점을 둔 것으로 보이는 급여 하한선 조정 등의 조치는 적정 고용보험료 수준에 대한 검토 및 고용보험에 대한 일반재정 투입 필요성 검토 등과 함께 좀 더 신중히 접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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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Statistics (https://stats.oecd.org/), 최종접속일: 2023-07-22.

 

<미주>

1) MISSOC(Mutual Information System on Social Protection) Comparative tables 참조(https://www.missoc.org/missoc-database/comparative-tables/), 최종접속일: 2023-07-22.

2) OECD Statistics (https://stats.oecd.org/), 최종접속일: 2023-07-22.

3) OECD Benefit and Wages (http://www.oecd.org/els/soc/benefits-and-wages.htm), 최종접속일: 2023-07-22.

4) OECD Statistics (https://stats.oecd.org/), 최종접속일: 2023-07-22.

5) 고용보험법에서는 예술인과 노무제공자를 ‘특례’ 형태로 의무적용대상에 포함한다. 이 중 예술인은 “근로자가 아니면서 「예술인 복지법」 제2조제2호에 따른 예술인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 중 「예술인 복지법」 제4조의4에 따른 문화예술용역 관련 계약(이하 “문화예술용역 관련 계약”이라 한다)을 체결하고 다른 사람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자신이 직접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법 제77조의2)으로 정의되며, 노무제공자는 “근로자가 아니면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하여 자신이 직접 노무를 제공하고 해당 사업주 또는 노무수령자로부터 일정한 대가를 지급받기로 하는 계약(이하 “노무제공계약”이라 한다)을 체결한 사람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법 제77조의6)으로 정의된다.

6) 고용노동부 내부자료

7) 매일노동뉴스(2023. 5. 25). 「전 국민 고용보험 기구에서 실업급여 삭감 논의」 (https://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5261), 최종접속일: 2023-07-24.

8)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의 임이자 의원은 ‘실업급여 제도 개선 공청회’에서 OECD 보고서의 제안에 대해 언급했으며,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역시 지난 7월 14일 국회 질의응답 과정에서 이를 언급하였다.

9) 예를 들어 고용보험을 미가입한 고용주에 대한 과태료 등의 제재 강화, 고용보험 가입 모니터링 시스템 강화, 사회보험 기여금 징수와 조세 징수 시스템의 통합 등을 언급하고 있다.

10) OECD Statistics (https://stats.oecd.org/), 최종접속일: 2023-07-23.

강해경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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