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IT밸리 아스팔트 위로 땡볕 더위 아지랑이가 아른아른 피어나는 8월의 첫날, 한화시스템노동조합 이성종 위원장을 노조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날 뜻밖의 손님이 찾아와 있었는데, 방위사업노동자위원회(이하 방노위) 활동을 위해 바로 양대노총 울타리를 넘어 연대하고 있는 LIG넥스원지회(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김호일 사무국장이었다. 마침 방노위 회의준비로 방문했다고 해 인터뷰 자리에 함께했다.
▲이성종 한화시스템 노조 위원장(가운데), 조대영 한화시스템 노조 사무국장(왼쪽), 김호일 LIG넥스원지회 사무국장(오른쪽)
Q. 방위사업노동자위원회(이하 방노위)와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방위사업노동자위원회, 약칭 방노위는 방위사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노동3권 확보를 목적으로 2022년 2월 설립된 노동조합 연대체이다.
현재 방노위에는 국방과학연구소지부, 국방기술품질원노조, 한국항공우주산업(KAI)노조, 한화창원지회, LIG넥스원지회, 한화시스템노조 등 6개 노조가 양대노총을 망라해 연대하고 있다. (본인은) 위원회 제2대 간사인 이성종 한화시스템노조 위원장이다. 1대 간사는 위원회를 만든 곽영찬 LIG넥스원지회 전 지회장이었다.
Q. 방노위를 설립한 계기가 궁금하다.
방위사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노동3권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어 노동자들의 권리를 되찾아야겠다는 생각이 설립에 가장 직접적인 계기였다. 한류열풍과 세계 지정학적 긴장에 따른 수출 호황으로 유명해지고 있는 ‘K-방산’의 이면에 있는 노동자들의 상황을 알리고 싶었다.
방위산업은 쟁의행위 금지로 인한 기본권 제한, 감사 및 비리 진단 시 일부 감사부서의 무리하고 강압적인 행위 발생, 고비용/저효율 등 불합리한 구조 등 다양한 불합리함이 있다. 이는 방위사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공통으로 겪는 문제이므로 사업장의 차이, 양대노총의 차이를 넘어 단합된 힘으로 문제점을 개선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방위사업노동자위원회 2024년 1분기 정기회의
Q. 노동3권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
방위산업체 노동자는 노동자의 기본권(단체행동권, 단결권, 교섭권) 보장을 받고 있지 못한다.
현재 주요 방위산업체는 노동조합법 제41조 2항에서 “주로 방산물자를 생산하는 사람은 단체행동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의 쟁의행위가 전면금지되어 단체행동권을 무력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노조 활동이 어렵다.
심지어 국방과학연구소와 국방기술품질원 등 정부 유관기관의 노동자가 공무원이 아닌데도 국방과학연구소법과 방위사업법에서 이미 사문화된 공무원법 제66조 1항을 준용해 노동조합법에 따라 설립신고를 마친 노동조합마저 인정하지 않는다.
Q. 방위산업체 현장에서 쟁의 금지가 실제로 어떤 악영향이 있는지 궁금하다.
(→ 단체행동권이 단순히 파업권은 아니겠지만, 파업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실제 어떤 악영향이 있는지 궁금하다.)
현행 노조법에 따르면 하나의 방산업체 내에서도 대통령령에 따라 단체행동권을 행사할 수 있는 업무수행자와 그렇지 못한 업무수행자로 구분된다. 파업 금지 자체의 전제에 생산품 중에 민간에 해당하는 ‘민수’와 방위산업에 사용되는 ‘군수’가 구분되고 이에 종사하는 노동자도 구분된다는 것이다.
즉 민수품 생산 노동자들은 파업이 되고, 군수품 생산 노동자들은 파업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를 이용해 민수 부문 조합원들이 파업할 때 군수 부문으로 강제 이동시킨다. 사측은 민수물량이 줄어들고 방산물량이 늘어났다는 이유로 민수사업부 조합원들을 방산사업부로 전보시킨다. 2015년에는 연봉제 전환에 동의하지 않고 노조 탈퇴를 거부한 노동자만 선별적으로 방산사업부로 전보시키는 방법으로 노조의 파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도 한다.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들을 개별적으로 고소·고발하고, 노조 탈퇴를 조건으로 고발을 취하해주겠다고 회유하고 있다. 창원에 있는 S&T중공업(전 통일중공업)이 그랬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그랬고, 현대로템지회가 그랬다.
조직률이 높아지면 해결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노조의 조직률이 70%에 육박하는 한국항공우주산업 노조의 경우, 쟁의권을 확보했지만, 조합원 중 누가 파업이 가능한가를 구분하는 과정에서 현장에 큰 혼란이 초래되기도 했다. 엄밀히 파업 가능 조합원을 구분해 파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조직률만 가지고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지금의 문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노조는 삼성테크윈이던 당시 한화그룹 매각에 반대하며 파업을 했었는데, 회사에서 계속 불법이라고 겁을 줘서 조합원들이 참여하지 못했다. 어쨌거나 파업에 앞서 임시총회를 개최했는데, 회사는 이게 단체행동이라며 고발했다. 재판에 들어가니 창원지법 판사마저 아무리 법이라지만 국민의 권리 제한은 최소한으로 해야지 이건 너무했다며 직권으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게다가 노동조합법에 따라 사측이 부당노동행위를 일삼으며 아무리 노조 깨기를 해도 벌금은 1천만 원으로 끝난다. 그런데 방산 노동자들이 파업하면, 즉 노동조합법 41조 2항을 위반하면 해당 법에서 제일 처벌이 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 5천만 원이다.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보다 방산 부문 파업이 더 잘못된 일인 것인가?
▲지난 3월 22일 국회 앞에서 열린 ‘노조법, 국과연법, 방위사업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
Q. 한화시스템노조의 지금 상황은 어떠한가? 역시나 어려운 상황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한화시스템노조의 경우 지금 회사가 노조가 아닌 단체와 교섭을 하고 있다. 삼성에서 노조를 제쳐두고 한마음협의회와 교섭하던 그 상황과 유사하다. 우리 경우는 근로자위원회라는 단체인데, 우리 노조의 교섭이 끝나지 않았는데, 근로자위원회와 타결한 결과대로 비조합원들에게 임금 인상분을 바로 입금해버린다.
이런 문제에 다른 일반 기업의 노조는 쟁의행위를 통해 상황을 타개할 텐데, 우리는 애초에 그럴 수가 없으니 노조가 힘이 없는 상황이 계속 반복되는 거다. 단체행동권이 제한됨으로써 노사갈등뿐 아니라 노노갈등이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당연히 사용자는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기 쉽다.
Q. 한국노총 조합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방산업체 노동자에 대한 단체행동권 제한은 전두환 정권 때 도입된 것이다. 이 근원은 박정희 정권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는 유신헌법의 영향이다. 명백하게 군사정원의 유물이다. 지금 시대에 역행한다.
노동3권은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셋 모두 보장되어야 하고, 보장될 때 ‘노동3권’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단체행동권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해서 노동3권 중 노동2권만 보장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3권은 그 중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면 노동3권 모두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상황이 오게 된다.
방위사업 종사자들 외에도 온전한 노동3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모두 온전한 노동3권을 보장받는 날까지 함께 연대해 싸워나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