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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까지 못 가

오나영

등록일 2024년10월08일 14시19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달까지 가자>는 2021년 베스트셀러로, 장류진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가상화폐 투자로 큰돈을 번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걸 미리 알고 있어서, 책이 화제가 되었을 때에도 별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 독서 모임에서 선정된 덕에 2024년 하반기가 되어서야 읽게 됐다. 작가가 “설탕 가루를 발라 만든 소설”이라고 표현했는데, 책을 읽은 후 내게는 설탕 범벅의 과자를 잔뜩 먹고 난 이후에 입안에 남는 텁텁함과 불쾌함이 강하게 느껴졌다.

 

‘흙수저’ 주인공 세 명은 가상화폐, 그중에서도 이더리움에 전 재산을 투자(?)하고, 운 좋게 ‘존버’ 끝에 막대한 차익을 얻고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소설에는 ‘우리 같은 애들’이라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우리 같은 애들’은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부모도 없고, 학자금 대출과 각종 빚에 시달리며, 변변한 스펙도 없는 ‘흙수저’를 의미한다.

 

“은상 언니, 지송이, 그리고 나. 우리가 금세 친해질 수 있었던 건 암묵적으로 서로가 같은 부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몇 년간 깨닫게 된 것 중 하나는 같은 회사에 다녀도, 비슷한 월급을 받아도, 결코 같은 세계를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그 사이에는 투명한 선과 보이지 않는 계단이 있었다.”

 

아등바등 애를 써도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 이들에게 가상화폐는 그야말로 한 줄기 빛과 같았다.(소설 배경은 2017년 하반기). 부동산 불패 신화의 한국 사회에서 주거 안정을 꿈꾸는 건 사치가 된 지 오래. 2014년 ‘빚 내서 집 사라’던 최경환 전 부총리의 발언은 문재인 정권 5년을 거치면서 찬사를 받았다.

 

집값이 올라도 너무 올라 버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로또 1등인데 3억, 집 한 채도 못 산다’는 불만에 정부가 로또 1등 당첨금 상향 설문 조사를 지난 24일부터 1달간 한다. 큰 자금이 없어도 시작할 수 있는 가상화폐 투자는 빈손의 청년들에게 더욱 매력으로 다가왔을 수 밖에.

 

“코인은 엉뚱한 곳에 난데없이 뚫린 만화 속 포털 같은 거라고. (…) 께름칙해도 있을 때 들어가야 한다고. (…) 닫히기 전에 얼른 발부터 집어넣으라고. 오직 이것만이, 우리 같은 애들한테 아주 잠깐 우연히 열린 유일한 기회 같은 거라고.”

 

가상화폐의 실제 가치 여부를 떠나, 가상화폐에 인생 전부를 걸어야 했던 주인공들의 절박함은 지금 한국 사회에서 보편화 된 감정이다. “이런 식의 박음질이 더는 지겨웠다. 나는 그냥 부스터 같은 걸 달아서 한 번에 치솟고 싶”었다는 주인공의 바람에 격공(격한 공감)할 수밖에 없다.

 

‘해피엔딩’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존버' 끝에 가상화폐 투자로 성공한 것이 ‘우리 같은 애들’이 꿈꿀 수 있는 최고의 꿈이라는 사실 자체가 씁쓸하다. 이들이 목숨을 걸다시피 한 투자를 통해 얻어낸 성공은 일시적이고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데, 그마저도 그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탈출구라는 점에서 더 큰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마치 '만화 속 포털'처럼 잠깐 열린 그 문을 통해 발을 들여놓지 않으면 기회를 놓치는 이 상황은, 사회구조가 얼마나 불평등한지 반증한다. 기회가 극도로 제한된 이 현실에서, 많은 이들이 절망 속에서 투기적 수단을 선택할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매일같이 목격하고 있다.

 

열심히 일해도 안정적인 삶을 보장할 수 없는 사회는 탈출해야 하는 게 맞다. 그리고 그 탈출구는 가상화폐나 부동산, 주식 투자(?)처럼 불안정하고 좁은 문이 아니라 함께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상상력이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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