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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할 이유와 일하지 않는 이유

오나영

등록일 2024년08월27일 14시25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일주일 전 이사를 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이삿짐센터 노동자들과 함께 짐을 정리하던 중, 냉장고를 옮기던 두 분이 주고받는 낯선 언어가 들렸다.

 

발음과 억양이 생소해 잠시 멍해졌지만, 나와 대화할 때는 능숙한 한국어를 구사했기에 외국인 노동자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궁금했지만 바쁘게 일하는 그들에게 물어볼 틈도 없이 일은 계속되었다. 짐은 많지 않았지만, 불볕더위에 모두가 땀을 비 오듯 흘리며 고생했다.

 


이사가 끝나고 비용을 정산하는 과정에서, 팀장과 부엌 정리를 맡은 중년 여성만 한국인이었고, 나머지 남성 노동자들은 모두 몽골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팀장은 몽골인 노동자가 없으면 이사 업계가 돌아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국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는 힘들고 고된 일을 기피 해 이쪽으로 일하러 오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지난 7월 말, 국내 인구가 3년 만에 증가했다는 기사를 보았는데, 그 이유가 외국인 노동자의 급격한 증가 때문이라는 내용이었다(통계청의 2023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발표). 조금 더 찾아보니 ‘이삿짐은 몽골인, 뱃일은 인도네시아인, 중고차 거래는 러시아·중앙아시아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특정 업종이나 지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사를 하면서 노동시장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현실을 새삼 깨닫게 됐다.

 

최근 이와 대조되는 다른 통계청 발표가 있었다. 구직 활동조차 하지 않고 ‘그냥 쉬었다’는 청년들이 44만 명에 달했고, 이는 역대 최대치였다는 거다. 이 중 75%가량은 직장을 구할 의사가 없다고 답했으며, 일자리를 찾지 않은 이유로는 ‘원하는 임금 수준이나 근로조건에 맞는 일자리가 없을 것 같아서’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청년들의 일할 의욕이 급격히 저하된 현실을 보여주는 통계였다. 왜 일하는 청년은 줄어들고, 외국인 노동자는 늘어나는 걸까?

 

사회에서는 종종 청년들이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대기업 등 좋은 일자리만 원한다며 비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정말 청년들이 눈이 높아서 대기업 외의 일자리를 피하는 걸까? 혹은 몸을 쓰고 땀을 흘리는 육체노동을 경시하는 걸까? 아니면 정부의 청년 취업 지원금에 기대어 일하지 않으려는 걸까?

 

외국인 노동자들은 자국에서보다 훨씬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기에 어렵고 힘든 일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들은 E9 비자가 허용하는 농축산업, 어업, 제조업, 건설업 등 특정 업종 이외의 일자리에서 일하면서 불법 체류자로 전락할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

 

여러 사건 사고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이들은 출신 국가 기준으로 보면 꽤 높은 소득을 얻고 있다. 반면, 이들이 받는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은 한국 청년들에게는 한국에서 생활하기에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일 뿐이다.

 

86.4년. 20대 청년이 저축만으로 서울에서 아파트 한 채 마련하는데 걸리는 평균 시간이다. 평균 연 소득 4,123만 원 기준으로 소비지출과 비소비지출을 제외한 1,389만 원을 저축할 때 가능하다. 이 수치는 청년들이 직면한 경제적 장벽이 얼마나 높은지를 보여준다.

 

대기업, 은행권, 전문직 등 소위 ‘좋은 일자리’에 들어가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내 집 마련은 꿈같은 이야기다. 좁디좁은 일자리의 관문 앞에서 청년들이 일할 의욕을 잃고 ‘그냥 쉰다’고 말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 상황을 청년들의 눈높이 문제로 치부하며, 저임금 일자리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보다는 이러한 일자리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외국인 노동자 유입에 더 집중하고 있다.

 

더 나아가 외국인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자는 논의까지 나오고 있는데, 이는 결국 사회 전반의 일자리 처우를 하향 평준화하겠다는 것이다.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일할 이유'마저도 사라질 판이다. ‘일하지 않을 이유'만 넘쳐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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