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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힘껏 사는 삶

<빌리와 몰리: 수달 사랑 이야기>(2023), <꿈꾸는 개들>(2024)

등록일 2024년11월07일 11시19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채희숙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반려동물이란 말은 동물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와 함께 새롭게 전파된 용어다. 그전에 한국사회는 오래도록 애완동물이란 말을 사용했었다.

 

‘완’이란 글자에는 장난하고 노는 행위나 대상의 의미가 담겨있다. ‘애완’은 내가 일방적으로 즐기고 마음대로 다루면서 좋아하는 행위를 이르는 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말은 우리 곁에 있는 동물들이 나와 친밀한 관계를 맺는 동무로서 존중되어야 한다는 성찰 속에서 사라져갔고 이제 반려동물이란 말이 자리를 잡은 것 같다.

 

말이 입에 익어가는 것과 걸맞게 행동하려면 일방적이지 않은 관계로 서로를 대하고 존중하는 반려 관계란 것이 정말 무엇인지 이해하고 실천하는 노력이 따라야 할 것이다.

 

‘있는 힘껏 살다’는 슬로건으로 열린 제7회 동물영화제의 개막작 <빌리와 몰리: 수달 사랑 이야기>(찰리 해밀턴 제임스, 2023)는 스코틀랜드의 외딴 시골 바닷가 고향에서 아내, 반려견 제이드와 가족을 이루고 있는 빌리가 어느 날 집 앞에서 게를 뜯어먹던 수달을 목격하는 데서 시작한다.

 

어미 없이 홀로 그 딱딱한 게를 뜯어먹기엔 아직 너무 어리고 약한 수달이었다. 빌리는 그에게 몰리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먹이가 될 수 있는 생선들을 던져주기 시작했는데 그의 애정은 곧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빌리는 몰리 전용 냉동고를 마련해 생선을 가득 채우는가 하면 가지고 놀 수 있는 고무공이 가득 담긴 수조를 몰리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그중 최고는 집을 지어준 것이었는데, 빌리는 그 집에 와이파이와 CCTV를 설치해서 몰리가 들어오면 핸드폰 앱으로 알람이 울리도록 하고 집에 들어간 몰리의 모습을 언제든 볼 수 있게 했다.

 


 

빌리는 마치 몰리가 자신의 돌봄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 것만 같이 몰리를 돌본다. 그렇지만 빌리의 아내 수전은 보고 말았다.

 

빌리는 자신 없이 몰리가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어쩌면 무의식중에 그걸 바라는지 몰라도, 몰리는 친구도 만나러 다니고 있으며 혼자서 먹이도 잡을 줄 안다는 것, 몰리에게도 빌리가 소중하겠지만 그것은 몰리의 삶의 전체 중 일부분이라는 것을 말이다.

 

완벽한 혼자살이가 없는 것처럼 완벽히 의존적인 삶도 없는 법. 몰리는 점점 방문이 뜸해지더니 추운 겨울을 앞두고부터는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발길을 끊는다.

 

몰리는 영영 야생으로 돌아간 것일까? 무사히 살아남아 있을까, 이내 목숨을 잃었을까. 애타고 부질없는 빌리의 기다림을 무색하게 만드는 혹독한 겨울이 얼마간 흐른 후에 앱의 알람이 울린다. 몰리가 집에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몰리의 배가 수상쩍다. 몰리는 임신을 했고 빌리가 지어준 집에서 봄을 맞이하며 출산을 한다.

 

 

빌리와 몰리의 드라마는 종을 초월한 돌봄과 그 돌봄에 담긴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의 성숙을 통해 지혜가 깃들어 가는 기쁜 관계를 보여준다. 몰리는 빌리의 지극한 돌봄 속에서 건강한 한 마리의 수달로 자라 위풍당당하게 삶을 누릴 수 있었고, 빌리는 몰리라는 존재로 인해 돌보는 사랑만이 선사할 수 있는 활력을 얻을 수 있었다.

 

빌리의 아내 수전은 빌리의 활기찬 모습을 보면서 행복했고, 수전의 행복한 손길이 반려견 제이드를 쓰다듬었다. 그렇게 그들의 모습은 반려 관계의 기쁨을 보여주는데, 그 관계는 서로가 응원하는 거리를 지키면서 이뤄졌다. 몰리, 수전, 빌리, 제이드는 각자 자신의 삶을 독자적으로 살아가는 가운데 서로에게 건강한 사랑을 주고받는 동무 같았다.

 

인간, 비인간 막론하고 저마다의 독자적인 영역을 만들고 스스로 돌파해가는 삶을 사는 존재들이다. 몰리는 친구를 만나고 자식을 낳는 과정을 오직 스스로 맞이하고 이겨나가면서 건강하고 더 큰 삶을 맞이한다.

 

그러한 삶을 위해서는 추운 겨울 바다를 타고 모험을 나서는 몰리를 걱정하기보다, 서로의 주체적인 삶을 지켜보고 응원하는 일이 더 큰 돌봄임을. 그렇게 강자와 약자 사이가 아니라 서로 독자적인 이들이 동무로서 만나 돕는 것이 반려 관계임을 배운다.

 

이들의 반려 관계는 <꿈꾸는 개들>에서도 또 다른 형태로 목격된다. 모스크바의 어느 대규모 공장 폐쇄로 사람들이 단지를 떠나가자 그곳에는 주인 없는 개들만이 터전을 잡는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폐허가 된 그 공장지대에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들어와 개들의 이웃 주민 혹은 동거인이 된다.

 

할머니는 대형견 딘고의 다리에 난 상처를 떠들어 보면서 자꾸만 딘고에게 말을 건다. 아프겠다고, 할머니 고기 먹으면 나을 거라고, 자기 없이 싸돌아다니면 걱정된다고, 어디 갔다 왔는지 말해보라고.

 

딘고는 어딜 그렇게 혼자 다니는지 할머니는 자주 딘고의 이름을 불러 찾는다. 할머니는 개들에게 자신이 지켜주겠다고 말하지만, 개들은 무심해 보인다. 되려 고철이나 쓰레기를 모아 도심에 팔러 나갈 때 개들이 마치 경호원처럼 할머니와 동행하는 모습을 보면 누가 누구를 지키는 건지 모르겠다.

 

 

그러던 어느 추운 날 할머니는 짐을 싸더니 여느 때처럼 개들과 같이 도심으로 나서고 한 철문을 열고 혼자 들어간다. 개들은 할머니를 한동안 기다리지만, 이번에는 할머니가 나올 기색이 없다.

 

한동안 기다리던 딘고가 먼저 고개를 돌려 발걸음을 옮기자 모두 따라서 집으로 돌아간다. 다시 반려인간 없이 그들만의 계절이 흘러가는 공장지대에서 어느 날 멀리 할머니가 딘고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딘고는 오가는 반려인들에게 어떤 마음을 품고 있을까? 다만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딘고 무리가 목줄 없이도 절도있게 무리지어 할머니 곁에서 주변을 살피면서 걷는 광경, 할머니를 기다리는 것, 그러다가 돌아서서 자기들끼리 돌아오는 장면들에서 그들의 담담하고 담대한 삶의 자세를 본다.

 

딘고는 할머니가 주는 밥도 먹고 침대를 같이 쓰지만, 딘고는 할머니가 자신의 보호자라고 여기지는 않는 것 같다. 잔인한 세상을 겪고 살아남은 이들이 사회의 돌봄 영역 바깥에서 만나 독특한 연대의식을 형성한 것일까?

 

그들이 함께하는 방식에는 전적인 의존이나 독립과는 다른 관계가 담겨있는 것 같다. 사람들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밤에는 카메라가 그 곁에 앉아있는 개들 특별히 몽환적인 화면에 담아낸다.

 

그들도 공상이나 바람을 나누거나 영화를 보면서 수다를 떠는 사람들처럼 이런저런 저만의 꿈을 꾸는 것처럼 말이다. 이때 개는 인간의 곁에 배경으로 존재하는 이미지가 아니라, 인간의 소리와 광경을 배경으로 꿈꾸는 주체 같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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