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지난 7월 4대 공적연금 및 기초연금 개혁을 위한 여야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 구성안을 발표하며 공적연금 개악에 대한 시그널을 내비쳤다. 국회 연금특위 활동시한은 내년 4월 말까지다. 윤정부의 [국정과제 42]에 따르면 장기재정전망에 기반한 제도 개편안 마련과 ‘공적연금 개혁위원회’를 통한 사회적 합의도출을 명시해 놓았으나 연금특위 구성안은 ‘사회적 합의’가 명시되지 않아 정치적 야합이 가능하도록 여지를 남겼다. 또한 연금특위 내 법률안 심사권이 명시됨에 따라 특위 패스트트랙을 통한 졸속·밀실야합 등 국민적 동의 없는 연금개악이 가능하다는 위험이 내재되어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공적연금 개혁을 지지율 반등 계기로?
더욱이 이 구성안은 정치적 상황을 고려할 때 공무원노조들의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집권여당의 지지율이 매우 낮은 상황(20%대 후반)에서 4대 공적연금의 개혁방향이 지지율 관리를 위한 개악방향으로 변질되기 쉽기 때문이다. 즉 4천만명 대상의 국민연금에 대한 개악 강도는 낮추고, 윤정부의 공약사항인 노령기초연금(대상자 약 천만)을 인상해야 하는 부담감 속에서 직역연금을 개악하기 위한 손쉬운 명분이 마련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은 공무원노조들에게 2009년, 2015년의 공적연금개악 저지 투쟁의 역사적 경험을 떠올리게 했다. 당시 정부는 공무원연금을 개악하기 위해 ‘갈라치기’ 프레임을 혹독하게 덧씌웠다. 이때 대대적인 공세로 각인된 대표적인 용어가 ‘철밥통’이다. 또한 사적연금 옹호론자들은 언론플레이로 연금재정위기론을 심화시키고, 사적연금시장의 확대를 조장했다. 2009년 당시 공무원노조들은 법외·법내의 노동운동 형성과정 속에서 제대로 단결된 대응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2015년 공무원연금 개악 때는 공적연금 사회적 대화기구 구성이라는 큰 틀을 마련해 개악 강도를 매우 낮추는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사회적 대화기구 구성이 끝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2022년 현재는 어떠한가? 공무원사회 현장 곳곳은 공무원연금에 대한 정부 불신과 불안함이 팽배해 있다. 먼저 공무원연금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혼란이 유튜브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국민연금보다 더 내고, 다 깎인 공무원연금 받으니 차라리 국민연금 내고 퇴직금 받겠다’는 내용이다. 결론적으로 이 논리는 사적연금으로 공적연금을 해체하려는 연금통합론과 사적연금옹호론의 핵심 주장과 동일하다. 공무원 스스로 공무원연금을 무너뜨리려 한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러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청년공무원들에게 이 같이 잘못 알려진 공무원연금 관련 내용이 급속도로 번져갔다.
여기에 2023년도 적용 최저임금이 5.1% 인상되었고, 2023년 공무원 임금인상률은 1.7%로 결정되었다. 현 시점에서 1.7% 인상률은 물가상승률 6~7%를 감안하면, 사실상 실질임금 삭감과 같다. 그동안 공무원사회는 코로나19 시국의 3년 동안 국민과 함께 지난한 과정을 견디고 희생하면서 고통을 분담해 왔다. 그럼에도 정부의 이 같은 임금인상률은 공무원사회에 억눌러 있던 정부 불신과 불안감의 도화선에 불을 당겼다. -4%대의 실질임금삭감 조치는 결국 ‘최저임금 밑에 9급 공무원’이라는 오명 아닌 오명을 짊어지게 했다.
한국노총 공무원 공동투쟁본부 출범
이에 한국노총 공무원과 교사 조직들은 즉각 대처했다. 한국노총 산하 대표 공무원조직은 공무원노동조합연맹(9만), 교사노동조합연맹(6만), 전국우정노동조합(3만)이다. 모두 18만여명의 공무원·교사 노동자들은 ‘120만 공무원·교사 노동·정치 기본권 확대’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고 똘똘 뭉쳤다. 8월 30일 공무원보수 1.7% 임금인상분이 결정되던 날 한국노총 공무원 공동투쟁본부는 실질임금 삭감을 규탄하고, 물가연동제플러스를 요구하는 긴급기자회견을 국회 앞에서 개최했다.
“입직하고 현장에 근무하며 9급 공무원 봉급으로 집세, 교통비, 밥값 등 빼면 제 손에 남는 건 50여만 원 남짓한 돈입니다.···연애·결혼·출산·가정을 이루고 내집 마련에 대한 꿈을 꾸는 것보다 당장 오늘을 어떻게 버틸까라는 허탈함뿐입니다.”
청년공무원의 현장 발언은 뜨거웠다. 이 열기를 이어나가고자 한국노총 공무원 공동투쟁본부가 공식출범(’22.9.14)하고, 투쟁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9월 15일 제주지역부터 출발해 전국 17개 시도를 순회하며, 40여 일간 전국 릴레이 투쟁 출정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실질임금삭감 규탄, 공적연금개악 저지, 연금소득공백 해소’의 3대 구호를 공무원 현장 곳곳에서 외치며, 공무원 공동투쟁본부의 결의를 대외적으로 알려 나갔다. 또한 윤정부의 실질임금 삭감을 규탄하고, 청년공무원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공무원보수 물가연동제플러스의 제도적 안착을 촉구했다.
이 밖에도 2033년까지 연금소득공백발생자 90만 명에 대한 대책 마련과 함께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사회적 대화 기구의 설치를 주문했다. 2015년에 합의 했지만 미이행된 공무원·교사 인사정책 개선 방안에 대한 협의기구 구성도 요구했다.
각 지역의 반응은 생각보다 뜨거웠다. 한국노총 지역연대의 단결은 더욱 단단해지고, 한국노총 공무원노조의 위상이 풀뿌리 지역사회에 급속히 전파됐다. 이처럼 한국노총 공무원 공동투쟁본부는 희생만 강요 받는 영혼 없는 공무원이 되지 않기 위해, 민주적인 공무원사회를 위한 대투쟁의 큰 걸음을 내딛었다.
공무원노동운동에서 연금과 임금은 가장 핵심적인 화두이다. 2022년 공무원사회에서 발생한 공무원연금 문제의 혼란과 실질임금 삭감 상황은 공무원노동자의 계급성을 증폭시키고 ‘투쟁’이라는 단결을 이끌어 내고 있다.
이 절박함이 전 국민적 공감대로 확산될 수 있는 방안은 결국 공무원도 ‘노동자’라는 것을 국민 앞에 충분히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이제 공무원들은 당당히 길거리로 나섰다. 윤정부가 이에 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