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범죄와의 전쟁(2012년 개봉)은 대한민국 80~90년 시대를 풍자한 범죄오락물 장르영화로 극중 캐릭터 최형식(배우 최민식)의 구수한 부산 사투리는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유행어1)를 남겼다. 숱한 유행어를 남긴 이 영화에서 깡패가 되어가는(?) 최형식을 붙잡은 조범석 검사(배우 곽도원)는 “난 니가 깡패인지 아닌지 관심 없어. 내가 깡패라고 하면 넌 그냥 깡패야”라고 말했다. 이 한 문장에 당시 범죄와의 전쟁 방식이 어떤 것인지 응축되어 있다.
2022년 12월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개혁 4대 원칙’2)을 발표하며 느닷없이 3대 부패로 공직, 기업, 노조를 규정하며 “노조부패도 우리 사회에서 척결해야 할… 엄격한 법 집행을 해나가야 한다”고 발언했다.
윤 정부가 말해 왔던 노동개혁의 실체가 확인되는 순간이다. 노동개혁은 노동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이 없는 귀족노조, 부패노조로 때려 잡아야 하는 대상으로 변질되었다. 이 거침없는 이데올로기적 호명방식이 바로 영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그때와 너무나 유사하다.
다만 지금은 21세기로 시대가 변한만큼 그럴듯한 명분이 필요하다. 자연스레 윤 정부의 「미래노동시장위원회」는 그 명분을 만들어 주는 수단으로 전락되었고 격하되었다. 담당 부처와 집권 여당은 일사분란하게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라는 명목을 들고 나오며, ‘오래된 미래’3)를 준비한다.
작년 윤 정부는 화물연대에 한 치의 타협도 없는 강도 높은 자세로 일관하면서 지지율 상승이라는 전투 효과를 맛보았다. 이 연장선상에서 2023년 윤 정부와 그리고 집권 여당이 그리는 더 큰 판, 검찰 출신의 대통령이 경찰을 통제하에 두고, 필요하면 국정원까지 동원 가능한(이미 동원한) 이 ‘노조와의 전쟁’에서 지금 우리는 무엇을 대비하고 준비해야 할 것인가?
△ 한국노총 공무원연금개악저지 공동투쟁본부 전국 릴레이 출정 기자회견
노조와 국민 갈라치기 정책
윤 정부의 반노조적 정책은 명확하다. 2023년 노동운동은 엄혹한 국면에 직면해 있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적절한 대응 전략을 즉각 모색할 필요가 있다.
계묘년 시작과 동시에 헤프닝이 일어났다.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 자율점검 안내문’이라는 고용노동부의 공문(’22.12.29)이 총 300여 노조 대상으로 발송되었다. 각 지역지청 근로감독관들은 노조 사무실을 불시에 방문했고, 노조 간부들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안내문만으로도 노조 자율성을 서슴없이 침해하는 윤 정부의 무소불위적 인식의 단면을 엿보인다. 2023년 고용노동부 업무보고 자료(1.9) 상단에는 ‘2023년은 공정과 법치의 노동개혁 원년’으로 적시되어 있다. ‘노조 회계공시시스템 구축’과 노사 법치주의를 확립해 불법·부당관행 개선도 명시했다.
노조 낙인찍기는 시작되었다.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라는 업무조사는 언제든지 압수수색으로 변질될 수 있다. 언론과 여당은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노조 혐오발언들을 거침없이 쏟아낼 것이다. 이른바 노조와 국민의 갈라치기를 통한 분열적 통치전략, ‘노조=적폐세력’이라는 이데올로기적 호명 ‘노조와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노조와의 전쟁’이 시작되는 2023년 연금과 임금 현안은 특히 한국사회 노동운동에 있어 중요한 의제로 부상하고 있다. 물가상승률 7.7%, 가스·전기·수도 등 각종 생계비 인상과 4대 보험료 인상 등으로 인한 실질임금 삭감의 체감력은 ‘더는 이대로 못살겠다’는 전 국민 생존권 확보의 문제로 점차 커지고 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의 활동 귀추에 따라 공적연금개혁에 대한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꺼지지 않고 있다.
이 두 현안에 대한 윤 정부의 대처는 무덤에서 꺼내 쓴 앙상한 신자유주의 기조로는 더 이상 해결이 안 되는 사안이다. 그럼에도 이데올로기적 선동과 혐오로 ‘법치주의 확립’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매우 커 굉장히 우려스럽다. 강력한 대중 현안이 되어버린 연금과 임금의제를 어떻게 다시 노동의제로 이끌고, 어떻게 대중운동과 강한 연대를 구성하는가에 따라, 공포로 변해버린 국가 폭력과 공권력에 맞서는 유일한 해법이 될 것이다.
연금 개악이 미래전략?
한국사회 자본과 노동의 거대한 싸움의 소용돌이에서 2023년 공무원 노사관계는 어떠할까? 섣불리 그 향방을 진단하기 어렵지만, 공무원 노사관계는 곧 노정관계이고 신분에 구속된 반쪽 노동자성만으로는 극복하기 매우 어려운 난국임은 분명해 보인다. 파트너는 이미 반노조적 정책을 천명하고 나선 마당에 이 신분을 극복할 노동정치 세력화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하다.
따라서 한국노총과 공무원조직 간의 대정치 전략을 세밀하게 구상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공무원 ‘노동자’의 계급성을 더 명확하게 표출할 수 있는 현안 사업에 주력해 공무원 노동자를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2022년 공무원 노동운동의 투쟁과정을 돌이켜보고, 그 연장선상에서 대정치 전략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공무원연금과 공무원보수 현안은 때문에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계급적 동력 의제다.
인사혁신처(’23.1.27)는 공무원연금 재정추계를 2년 앞당긴다고 발표했다. ‘더 내고, 덜 받고, 오래 내고, 더 늦게 받는’ 4대 고통 분담을 다 받고 있는 공무원연금에 또 다시 칼질을 하겠다고 공식화했다.
공무원연금에 대한 여론몰이를 통해 공적연금 개악에 대한 전국민적 분노를 잠재우기 위한 전형적인 국민과 공무원 갈라치기 전략을 또다시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과 공무원 갈라치기 전략은 2009년, 2015년 연금개악 때마다 실행된 오래된 미래전략이다.
폭력적인 과거가 되풀이 되고 있다. 비록 그 폭력의 결이 다를지라도 이데올로기적 양식만은 재생산되어 노조를 공공의 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그럼에도 흔들리지 않고 한국노총은 140만 조합원을 이룩한 역사가 있다. 양대노총 합계는 약 240만 명이다. 불평등한 현실에 사회정의를 함께 외치는 파트너십과 단결로 이 전쟁을 극복할 큰 걸음에 동참할 때다.
<미주>
1) “내가 인마 느그 서장이랑 인마 어저께도 으! 같이 밥 묵고 으! 싸우나도 같이 가고 으! … 마 다 했으” 등 대표적 유행어가 있다.
2) ▲노동제도 유연성 ▲노사 간 공정성 ▲노동자 안전 ▲노사 법치주의
3) 노태우 정부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함과 동시에 좌익불순세력 색출이라는 명목으로 당시 민주노총의 전신 ‘전노협’에 대대적인 공세 압박을 높였다. 그때 명분도 노조회계 투명성이라는 업무조사가 시작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