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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받는 공직사회 혁신 그리고 공무원노조의 역할

박기산 한국노총 공무원본부 부장

등록일 2022년09월06일 08시23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윤정부의 “The Party Is Over.”

 

“파티는 끝났다.” 6월 윤석열 정부가 공공기관 구조조정과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 등 노동구조 개혁을 위한 굵직한 발표들을 쏟아내면서 노동자들을 향해 내던진 말이다. 윤석열 정부는 무덤 속에 묻혀 있던 신자유주의로의 회귀를 천명했다.

 

이 문장은 세계금융시장의 불황기 전환을 뜻하는 은어처럼 사용되어 언론의 헤드라인에 종종 등장했다. 이 표현이 가장 의미가 있던 순간은 2020년 10월 전 세계 신자유주의를 주도했던 IMF와 세계은행의 미국 워싱턴 연례회합일 것이다. 사실상 이 회합 때 “파티는 끝났다.”며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의 종말을 스스로 인정했다.

 

IMF와 세계은행은 이 표현을 빌려 패러다임의 실패를 자인하고 복지국가의 역할을 강조했다. 반면, 윤정부는 ‘공공부문 감축을 통해 취햑계층을 지원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들이밀며 공공기관과 공무원사회의 파티를 끝내라 종용한다. 표현과 의미 모두 역설적인 이 파티를 과연 어떻게 끝내야 하는 것인가?

 


△제28회 국무회의(출처 = 제20대 대통령실)

 
 

공무원사회 파티는 끝났다?

 

공공부문, 특히 공무원사회는 새정부의 정체성에 따라, 또한 사회변화에 따라 늘 혁신을 강요받아왔다. 새정부는 한국사회 자살 증가율 1위, 출산율 최저 1위, 노인빈곤율 1위, 주택가격 안정화 및 소득 불평등 등의 심각한 사회경제적 위기에 대한 책임을 공무원사회에 손쉽게 떠넘기며, 혁신(개혁)과 구조조정을 강요하고 사회변화를 담지하는 적극행정으로 희생하라 등떠민다.

 

공무원사회를 파티처럼 오독하는 대표적인 표현이 또 있다. “영혼 없는 공무원”에 편견과 오해이다. 청년들이 신규 공무원(9·7급)이 되기 위해 보통 3~5년에 걸쳐 준비하여 치열한 경쟁률1)을 뚫고 입직하면 맞닿게 되는 현장과 현실을 직면할 때만이 비로소 이 표현의 역설을 깨닫게 된다. 신규 공무원(9급)은 월 최저임금(올해 191만 4,440원) 미만인 194만 대로 입직한다. 사실상 인턴직 혹은 알바생 수준으로 시작하게 되는 셈이다. 물론 일한 만큼 붙는 부가 급여(수당)가 존재하지만 그 수준은 식비, 교통비, 월세, 대출 등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할뿐더러, 현실적인 물가 수준 반영은 꿈도 꿀수 없다. 청년들에게 신규 공무원의 삶이란 자립 불가한 미래를 꿈꿀 수 밖에 없는 갑갑하고 막막한 월급통장과도 같은 허탈함 그 자체이다.

 

민원업무의 최일선인 현장은 인력감축과 적극행정의 결합으로 기이한 혁신이 이뤄지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보여준다. 일례로 학교시설 주무관의 경우 1학교 1시설관리에서 인근 5~6개 학교 당 1명의 시설관리로 점차 담당 학교 수가 많아지고 있다. 때론 2~3주 당 하루 정도는 관리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드론 자격증’마저 갖춰야 하는 실정이다. 그런데 학교는 학교 안전 강화 방침에 따라 시설 안전 공백을 메우기 위해 모든 시설관리 업무와 관련된 각종 자격증(소방안전, 가스안전, 석면관리, 엘리베이터 등)을 그때그때 갖추도록 행정공무원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또 다른 일례로 사회복지 공무원의 경우 주민센터 내 복지상담과 돌봄현장 방문을 수시로 진행하기에 보통 담당 주무관 1명 당 100여 가구 남짓 맡아 활동한다. 1인당 활동영역이 폭넓은 만큼 온갖 돌봄 민원인을 상대해야 하는데, 이중 악성민원인에 대한 위험으로부터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이는 특히 여성 주무관에게 매우 위협적이다. 돌봄SOS, 모니터링 가구 등 그 책임이 막중함에 비해 인력이 늘 부족하다보니 대상자 관리에 어려움이 많아 사실상 세밀한 돌봄(추적 돌봄)은 불가능하다.

 

코로나19 시국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는 상황에서 방역 공무원들로 차출된 이들은 어떠하겠는가? 그리고 지금 이 순간까지도 장마 수해 피해 복구 업무로 비상근무 및 격무에 시달리는 공무원들이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 묵묵히 업무수행을 하고 있다. 이처럼 국민 생활터전에 온전히 투입되어야 할 공공서비스 영역의 공무원들에게 인원감축과 적극행정, 낮은 봉급을 동시에 강요하는 것은 가히 ‘영혼을 갈아 넣는 과로업무’ 환경을 구조적으로 감내하라고 부추기는 것과 다름없다. 공무원사회의 인원감축과 적극행정 강요는 ‘위험의 외주화’라 불릴 수 있는 구조조정과 공무원 과로사를 방치하는 업무 구조화라 볼 수 있다.

 

 

영혼 없는 공무가 되지 않기 위한 공무원노조들의 임금인상 투쟁

 

2022년 모든 공무원노조들은 연일 ‘임금인상’을 위한 강력한 장외투쟁에 나서고 있다. 물가연동제를 실시하는 영국 공무원노조들 마저도 5% 미만의 인상률에 대해 총력 투쟁을 벌이고 있다. 물가 인상분만이라도 감안해 달라는 한국적 현실과 최저임금만도 못한 9급 신규 공무원의 처우, 사실상 -6% 내외의 실질임금 삭감 수치는 사람은 소모품에 불과하다는 윤석열 정부의 인식을 여실히 드러낸 처사다. 이는 공공행정 현장 인력 감축과 적극행정 강요를 부르짓고 있는 윤정부의 공무원사회 혁신의 민낯이기도 하다.

 

“영혼 없는 공무원은 없다. 영혼을 갈아 넣는 과로업무만이 존재한다.” 늘 희생만 강요받아 왔던 공무원사회에 ‘파티’는 애초에 어울리지 않는 공감각적인 오류다. 공무원노조들은 영혼 없는 공무가 되지 않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여기에는 청년 공무원들에게 ‘영혼을 갈아 넣는 현장’을 더 이상 물러주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 깃들어 있다. 이 절박함이 국민적 공감대로 확산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단순히 돈 올려달라는 투쟁이 아니다. 윤정부는 결코 이를 오독해서는 안 된다. 이는 공공행정현장의 과로업무에 대한 위기의 경고음이다.

 

솔선수범하고 있는 공무원집단이 우리 곁에 있다. 소방·경찰 공무원들은 그 자체로 전문성을 발휘하는 집단이며, 국민의 높은 신뢰도에 기반해 있기 때문에 적극행정의 귀감으로 국민들에게 인식되어 있다. 제복이 아닌 모든 민원현장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에게도 이와 같은 국민적 인식이 확산되어야 한다. 모든 공무원노조들은 풀뿌리 투쟁을 지속적으로 기획하고 9급, 7급 신규 청년 공무원들의 적극적인 목소리를 담지 하는 현장개선 활동이 필요하다. 민원인들과 국민들에게 신뢰받는 공공행정 현장의 위상이 정립될 때 영혼 없는 공무원의 오독 역시 사라질 것이라 확신한다.

 

<미주>

1) 2020년 지방직 일반행정 기준으로 전국 평균 경쟁률은 9급(8,000여명 채용대비) 14.5:1, 7급(400여 명 채용 대비) 86: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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