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기도내 기초지방자치단체 출연출자 기관의 고충처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 기관은 전체 소속 노동자가 50명 정도에 불과한 작은 사업장이지만 취업규칙에 해당하는 인사규정과 노동조합과의 단체협약을 통해 고충처리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었다.
고충처리위원회는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이하 ‘근참법’) 제 26조에 따라 30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의무적으로 구성해야 하는 기구다. 노사를 대표하는 3명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근참법상 노사협의회가 구성되어 있는 경우 고충처리 위원은 노사협의회 위원에서 선임할 수 있다.
노동자의 고충은 일반적으로 고용관계에서 발생하는 근로환경이나 근로조건에 관한 다양한 노동자의 불만을 말한다. 최근에는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직장내 괴롭힘 문제의 해결이 주된 의제가 되고 있다. 이번에 필자가 참여한 고충처리 사안도 직장내 괴롭힘 문제였다.
▲ 출처 = 이미지투데이
직장내 괴롭힘 문제는 「근로기준법」에 규정되어 있다. 근기법 제 76조의2에 따르면 사업주에게는 직장내 괴롭힘 발생시 신속하게 사실관계를 조사하여 직장내 괴롭힘인지 여부를 판단하고 이에 따라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에 대한 적절한 인사조치를 하여 직장내 괴롭힘을 예방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처럼 직장내 괴롭힘 금지 및 예방 관련 조항이 근기법에 포함된 이래 직장내 괴롭힘 문제는 노동현장에서 고충처리 사안의 핵심 의제가 되었다.
문제는 사업장의 규모에 따라 이처럼 직장내 괴롭힘에 따른 노동자의 고충을 처리하는 역량이 들쭉 날쭉 하다는 것이다. 앞서 필자가 고충처리위원으로 참여하는 사업장의 경우 지자체 출연출자 기관으로 법률가등 전문성 있는 고충처리 위원의 선임으로 신뢰성을 확보하고 피해자 노사동수로 고충처리위원을 배치하여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뿐만 아니라 독립된 공간을 확보하여 조사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2차가해를 예방하려고 노력했고 조사대상자의 조사시간에 대해 근로시간으로 인정해 주는 등 직장내 괴롭힘 사실관계 조사의 효과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보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노동현장에서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소영세사업장에서는 이러한 안정적 직장내 괴롭힘 조사 시스템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부분의 사업장에서는 근기법에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사업주의 사실관계 조사 및 적절한 인사조치 의무가 있기에 형식적으로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조사를 수행한다. 전문성 있는 조사위원을 통해 공정하게 조사를 하기는커녕 2차 가해의 개념도 정확하게 알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상담을 하다보면 직장내 괴롭힘 신고를 받은 사업주가 가해자와 피해자를 퇴근 후 술자리에 동석시켜 화해주를 권하기도 하는 기가막힌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더욱이 5인 미만 사업장에는 근기법상 직장내 괴롭힘 관련 조항의 적용이 제외되고 근참법상 고충처리위원회 구성 의무도 없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21년 4월 직장내 괴롭힘 관련 규정이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제외된 현실에 우려를 표시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당시 성명을 통해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 접촉의 빈도는 증가할 가능성이 높고 그에 따른 괴롭힘 문제가 더 심각하여 괴롭힘 발생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되는 등 보호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하다”고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기법상 직장내 괴롭힘 조항 적용제외를 비판했다.
이처럼 직장내 괴롭힘 문제의 해결 역량이 부재한 사업장이 다수인 현실에서 어떻게 노동자들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을까?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직장내 괴롭힘이 발생한 경우 노동위원회에서 직장내 괴롭힘 판단을 받아 보도록 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 사업주의 의견을 반영해 적절한 후속조처와 피해자 보호조치를 명령하고 이에 대해 이행강제금 등으로 집행을 담보하면 실효성이 보장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