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은 ‘가을야구’의 계절이다. 한국 프로야구 10개 팀은 한 해 대략 4월에서 9월까지의 정규시즌에 각각 144경기를 치른다. 그 결과 상위 5개 팀이 우승컵을 놓고 겨루는 것을 포스트시즌이라 하는데 가을야구란 이를 지칭하는 별칭이다.
올해 한국 프로야구 관중이 천만을 돌파했고 팬층이 두터운 팀들이 상위에 있으니 그 어느 때보다 후끈하고 들썩이는 10월이 될 것 같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이는 가을야구에 가지 못하는 5개의 팀이 있고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에 박수를 보내지 못하는 야구팬이 많을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야구는 실패의 스포츠다. 타자를 놓고 보면 확률상 10개 공 중 3개 이상을 쳐서 3할 타율을 넘기면 잘한다고 한다. 한 해 평균 타율 4할을 넘긴 기록을 가진 선수는 메이저리그 140년 역사상 16명에 불과하고, 1982년에 출범한 한국 프로야구에서 그 기록은 딱 한 번 나왔다. 일본리그에는 단 한 번도 없다. 아무리 최고의 프로야구 타자라고 해도 30여 년을 야구에 매진하는 세월 내내 대략 열 번 중 일곱 번은 실패한다는 얘기다.
또 투수라면 스크라이크 3개로 타자를 잡기 위해서 존 바깥 공인 볼 3개도 활용해야 한다. 투수가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는 멋진 공으로 정면승부 하는 순간만이 아니라 소위 더러운 공을 뿌려 타자를 속이고 꾸역꾸역 아웃 카운트를 잡는 일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많은 경기를 소화해야 하는 야구에는 패색이 짙은 경기에 등판해서 이닝을 끝내줌으로써 팀의 승수 쌓기를 위해 등판하는 다른 투수를 보호하는 패전처리조 투수도 있다. 타자들은 주자를 움직여 점수를 내기 위해 종종 자신의 진루 기회를 내놓고 희생번트나 희생플라이를 친다.
3루를 거쳐 홈베이스를 밟아 1점을 내기까지 야구의 점수는 수많은 실패를 쌓아 만들어지는 것이다. 올해 정규시즌의 경우 1위 한 팀만이 승률 6할을 넘겼다. 반대로 10위 팀도 승률이 4할을 넘겼다. 잘해도 못해도 절반을 패하는 것이 야구다. 정규시즌에는 주 6일 게임이 치러지므로 일 년에 6개월 동안 매일 매일 실패의 시간을 감당하고 실패하는 힘으로 승패를 쌓아 올리는 것이 야구 노동자의 일이다.
야구란 것이 위와 같으므로 야구를 좋아하고 잘 안다면 그 누구보다도 실패의 중요성을 알고 실패의 시간을 지고 있는 이들을 존중해야 할 것 같다. 가을야구에 보내는 환호는 잘 실패한 결과에 대한 박수와 격려임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보는 가을야구는 마치 빙산의 일각과도 같은 것으로, 그것이 눈앞에 드러나는 이유는 수면 아래로 깊게 펼쳐진 실패의 산세 덕택이다. 그렇다면 천만 관중이 가을야구에 보내는 환호에는 실패 끝에 성공의 자리에 선 이들만이 아니라 실패의 자리에 있는 이들, 실패를 묵묵히 감당하여 수면 아래에서 산세를 이루고 있는 이들에게 보내는 환호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6위부터 10위까지의 팀 선수들과 해당 팀의 팬들, 가을야구를 치르는 선수 중 경기에 직접 뛰는 최종 엔트리에 들지 못하고 한 발 뒤에서 지켜보는 1군 2군 3군의 선수들. 가을야구는 그들의 것이기도 하다.
<19번째 남자>(1990)와 <그들만의 리그>(1992)는 가을야구라는 영광의 자리에는 보이지 않지만 가을야구를 만들어내는 야구인들의 10월을 응원할 수 있는 야구 영화다. 그리고 그렇게 응원받는 야구인들의 자리에는 실패의 시간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이들 모두도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 <19번째 남자>에서, 크래쉬의 홈런
<19번째 남자>는 지적이고 센스가 좋으며 야구를 꽤 잘하는 마이너리그 베테랑 포수 크래쉬의 은퇴 무렵을 보여준다.
그는 아직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천방지축 유망주 투수 에비를 단련시키라는 특명을 받고, 크래쉬의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한 에비는 결국 메이저리그 진출에 성공한다. 그러나 자신의 역할을 다한 노련한 포수 크래쉬는 팀에서 방출된다. 크래쉬는 은퇴 전 결국 마이너리그 최다 홈런 기록을 세우지만, 누구도 그것을 기리지 않는다.
크래쉬는 일주일간의 메이저리그 경험을 가진 선수다. 그것만으로도 다른 마이너리그 동료들이 눈을 반짝이며 그곳의 대단함을 묻고 궁금해한다.
우리는 어쩌면 끝까지 왜 에비가 크래쉬보다 뛰어난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이해해야 할 것이 아니다. 그의 어깨가 엄청나게 위력적인 스피드로 공을 던지고 그것이 우리의 마음과 일상을 뒤흔들기에 그는 메이저리그 영광의 무대에 설 것이다.
크래쉬는 생각이 깊고 야구를 사랑하지만, 야구도 우리의 인생도 크래쉬가 지닌 그 모든 소중한 것들, 즉 세상을 이해하는 태도나 야구를 향한 사랑 등 다양한 자질이 최고의 무대에 소개될 수 있게 허락하지 않는다. 위력적인 공의 힘과 그것을 쳐내는 힘, 오직 그것만이 무대에 선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그 무대에 서는 힘이란 반드시 그 힘을 발휘하는 이의 무수한 실패, 그리고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다른 선수들의 무수한 실패 속에서 탄생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크래쉬는 자신이 완성한 에비의 어깨를 통해 메이저리그에 서 있을 것이다. 에비가 크래쉬의 가르침을 잊는다면 그의 공은 유리창이나 깨고 말 것이다.
▲ <그들만의 리그>에서, 여성 야구팀 단체사진 장면
<그들만의 리그>는 미국에서 2차 세계대전 중 많은 야구선수가 군에 입대하자 리그 운영이 어려워진 틈을 메우기 위해 한시적으로 출범되었던 1943년 여성 프로야구리그 첫해를 담고 있다.
남편의 이름이 전사자를 통보하는 전보에 포함될까 마음이 무거운 가운데서도 여성 프로야구 선수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기회를 충분히 펼치고 또 누린다.
영화에는 농장 생활을 하면서 집안을 건사해온 여성, 천재적인 타격 능력을 갖췄지만, 그것을 펼칠 무대가 없는 여성, 글씨를 읽을 줄 몰라 자신이 발탁됐는지 확인할 수 없기에 옆의 도움을 받고서야 기뻐할 수 있는 여성,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어 경기장에 데려와야만 하는 여성, 파울볼을 경기장으로 던져주는 폼과 공의 힘이 예사롭지 않지만, 흑인이기에 여성리그에 끼지도 못하는 여성 등 적절한 기회를 받지 못하는 여성들의 각종 상황이 재현된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리에 있던 여성들의 야구에는 유쾌한 톤으로 그들의 존재에 마땅한 긍지가 부여된다. 그러나 여성 프로야구리그는 역사적으로 메이저리그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것이었고 남성 스포츠인 메이저리그 야구 시즌의 지속을 위한 것이었다.
이 목적을 다 수행하고 나자 여성 리그는 마치 크래쉬의 방출처럼 무대에서 퇴장해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메이저리그 바깥과 주변의 야구 영화들과 함께 다시금 최고의 리그를 가능하게 해온 실패의 힘을 실감하고 그것에 박수를 보낼 수 있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하늘이 가장 찬란한 계절에 두 개의 ‘그들만의 리그’가 펼쳐질 것이다. 하나의 리그에서는 우승컵과 MVP가 결정되고, 거기에서는 한 해의 모든 영광이 최고의 가을하늘에 더해 더욱 밝게 빛날 것이다.
또 하나의 리그는 가을야구를 지켜보고 박수를 보내면서도 한편 괴로워하고 후회하고 체념하고 인정하며 실패를 지고 넘어서 내년을 향하거나 아니면 야구를 내려놓을 야구인들, 그리고 자신의 팀을 미워하고 욕하거나 무한한 응원을 다시 보내거나 열심히 저만의 분석과 해법을 소통하는 팬들의 것이다.
실패라는 필연을 겪고 견뎌야만 하는 인생이란 일, 계속 실패해야만 찬란히 지속하는 야구의 일에 가을야구의 박수가 닿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한다. 이 문장까지 총 스무 번의 ‘실패’라는 단어가 쓰였다.
이 말들이 그것에 대립하거나 그것을 보상하는 성공이라는 말 속에서만 빛나는 것이 아님을 재차 강조해본다. 스물한 번째로 말하거니와 실패는 가을야구의 진정한 주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