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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 윤석열

이동철의 상담노트

등록일 2022년03월10일 09시45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윤석열은 자유주의자다. 그는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 감명받아 법학과 진학을 결정했다고 알려졌다. 자유론은 국가가 개인의 자유에 개입할 수 있는 근거에 대해 탐구한 책이다. 그런 그가 시장경제 질서를 수호하는 것을 임무로 하는 검찰의 수장이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검찰총장 취임 당시 대검찰청 대변인실은 그가 자유시장경제를 중시한 “시카고학파의 밀턴 프리드먼의 사상에 공감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다.

본격적인 현실정치에 나선 이후 노동계에서는 망언이라 비판하지만 노동정책에 관한 그의 발언을 보면 일관된 철학이 느껴진다. 노동시장에 정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면 자원의 배분에 왜곡이 일어난다고 비판한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론’를 들어 “퀄리티가 낮은 부정식품이라도, 먹고 막 죽는 정도가 아니면 없는 사람들이 싸게 먹을 수 있게 해 줘야 한다”고 말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 지난해 12월 15일 한국노총을 방문한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대표적 노동망언이라 평가받는 주 120시간 노동 발언이나 주 52시간 상한제와 최저임금 철폐주장은 실제 그가 직접 약속한 바는 없다. 그는 단지 기업과 노동자가 원하면 “1주 120시간을 일해야 한다”는 어느 게임스타트업 관계자의 말을 전하며 정부의 근로시간 제한을 비난했을 뿐이다. 지난해 12월 관훈클럽 토론회에선 “최저임금제도를 철폐한다고 말한 적 없다”면서도 노동자들이 월 150만원 받고 일할 수 있는데 최저임금이 그보다 높게 정해져 일할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는 취지로 최저임금제를 비판했다.

중소·영세 업체의 목소리를 전한다면서도 교묘하게 현장 노동자들의 의견보다는 경제단체와 사업주들의 의견에 올라타 기업가들을 대변한다. 전체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노동조합이 주장한 주 52시간제나 최저임금 인상을 두고 노동조합이 4%에 불과한 대기업 노동자만 보호하기 위해서라며 교묘하게 일반 노동자들과 갈라치기를 한다. 윤석열의 정치적 발언을 보며 어느 영화 주인공의 대사가 떠 올랐다. “이런 곰 같은 여우를 봤나?”

물론 산업현장에서 임금이 줄어 주 52시간제를 비판하는 노동자들도 있다. 주 52시간제로 연장근로가 줄어 임금이 깎이면 경제적으로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기본급은 최저임금 수준으로 정하고 임금총액의 30% 이상을 초과근로수당으로 설계한 기업의 꼼수를 바로잡아 해결해야 할 문제다.

장시간 노동으로 건강과 일-가정의 양립이 불가능한 현실은 무시한 채 초과수당이 깎인 노동자의 경제적 어려움을 자극해 주 52시간제를 무력화하려는 것은 정치적으로 매우 무책임한 태도다. 더욱이 주 52시간제는 국민의힘의 전신인 박근혜 정부가 고용률 70% 달성을 목표로 그 필요성을 주장하며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사안 아닌가.

필자가 상담하는 노동자들은 열에 아홉은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지 못하며 100명 미만의 중소·영세 사업장에서 일한다. 주 52시간 상한제가 본격화된 2020년 이전까지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중 하루를 제외하고는 1일 8시간의 기본노동에, 길게는 4시간의 잔업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렇게 한 주에 약 56시간을 일하고 회사가 바쁘면 토요일에도 일한다. 잔업이 없는 수요일을 제외하면 길게는 64시간을 노동하는 것이다.

이들 사업장은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에 비해 임금지급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이 된다. 제조업 노동자들은 초과근로수당을 포함해 월 300만원을 조금 넘게 가져가고 판매서비스 노동자들은 250만원 남짓 받아 한 달 가정경제를 꾸린다. 최저임금 기준 기본급이 월 180만원 남짓이니 월급의 30% 이상은 초과근로수당이다.

주 52시간제 시행 이전까지 400만명 넘는 노동자들이 저임금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1주 60시간 이상을 일하며 일과 생활의 균형이 심각하게 파괴되고 건강을 잃고 팍팍한 삶을 살았다. 1주 60시간 이상 일한다면 통상 휴일인 일요일 하루를 제외하고 매일같이 10시간 이상을 일하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런 장시간 노동 관행을 한국인 특유의 부지런함으로 칭송하며 우리 경제의 발전을 일군 원동력이라 평가한다. 물론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장시간 노동 관행으로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근로시간이 긴 그룹에 속하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 해 평균 370명 이상이 과로사로 죽어 가는 산재공화국이기도 하다.

주 52시간제 전면 시행에 즈음해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2월 외부전문기관에 의뢰해 노동자 1천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그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7.8%는 주 52시간제 시행을 잘한 일로 평가했다. 응답자 절반 이상인 55.8%는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일을 많이 하는 편이라고 인식했고, 초과근무를 해서 임금을 더 받고 싶다는 의견(23.5%)보다 정시퇴근해 여가를 즐기겠다는 의견(76.1%)이 3배 이상 많았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장시간 일하지 않으면 먹고살기 어려운 경제구조를 만들어 놓고 노동자의 건강과 여가를 위해 근로시간을 제한한 것을 두고 정부가 자유시장경제를 위협한다고 주장한다면, 그 자유는 대체 누구의 자유인가.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부장 (leeseyha@naver.com)

이동철 leesey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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