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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열리고 저녁에 닫히는, 배달노동자의 하루

한국노총전국연대노조 플랫폼배달지부 선동영 지부장 24시간 동행 인터뷰

등록일 2023년10월23일 14시02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박주현 한국노총 조직본부 선임차장

 

종종 누군가의 업(業)을 말 그대로 업신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학창시절 공부를 소홀히 해서’ 혹은 ‘열심히 살지 않아서’. 과거보다 훨씬 나아졌지만, 배달노동자에 대한 부정적이거나 ‘배달=부업’이라는 고정관념도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의 삶을 한 번이라도 들여다본다면 우리는 감히 타인의 노동을 함부로 재단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여기 몇십 년을 ‘배달’ 업종에 몸담고 매일매일을 누구보다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심지어 빡빡한 일상 속 노동조합까지 하는 한국노총전국연대노조 플랫폼배달지부 선동영 지부장의 하루를 따라가 봤다.


새날이 시작되는 자정, 선동영 지부장의 하루도 시작된다. 과거보다 신문의 종류도 매수도 훨씬 줄었지만, 마트 처마 아래엔 30-40 종류의 신문들이 줄 세워진다. 선 지부장은 동료와 함께 신문 속지를 끼우고, 배달 구역별로 신문을 분류하는 작업을 한다. 한일 월드컵이 있던 2002년부터 했으니, 어둑한 곳에서도 선 지부장의 손놀림은 자동화 기계 못지않은 속도와 정확성을 보인다. 그나마 마트 건너편에 24시간 빨래방이 들어서서 밝은 조명이 생겼다며 선 지부장은 환히 웃는다.

 

요즘은 날씨가 선선해져서 일하기가 좋아요. 여름에는 모기가 물어대고, 신문이 젖으면 안되니까 비 오는 날은 정말 힘들어요. 겨울엔 추운 것도 있지만 눈 오면 또 신문 정리할 곳이 마땅치 않고……. 눈, 비바람 불 때가 가장 아찔해요.

 

혹시라도 신문을 못 받는 고객이 있을까 여분을 뻬놓는 것도, 배달 중 신문이 젖거나 상하지 않도록 가지런히 포장하는 일까지, 작은 부분에서도 구독자에 대한 선 지부장의 따스한 배려가 묻어난다.

 

매일 아침 신문이 있어야 화장실을 갈 수 있는 할아버지들이 있어요. 배달이 늦어지면 ‘우리 영감이 화장실을 못간다’고 전화가 오기도 해요. 오래오래 신문을 봐주시는 거니까, 그런 분들한테 감사하죠.

 

분류가 완료된 신문 위로 커피가 하나씩 얹어진다. 밤에 잠도 못 자고 일하면 짜증 나고 힘드니까 커피라도 마시면서 마음과 피로를 풀었으면 한다는 선 지부장에겐, 동료들의 음료를 챙기는 것도 출근 일과 중 하나다. 간단한 인사와 함께 동료들이 커피와 신문을 하나, 둘 들고가면 선 지부장도 건물 뒤편에서 오토바이를 끌고 나온다.

새벽 두 시, 오토바이 뒤쪽 노란 플라스틱 상자에 배달순서를 고려해 차곡차곡 신문이 쌓인다. 힘찬 시동소리와 함께 선 지부장의 신문 배달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신문 배달 후 자주 찾는 순대국집에서 선 지부장을 다시 만났다. 배달 시작 시각부터 굵게 내리던 빗방울은 오전이 돼서 잦아들었다. 갑자기 쏟아진 비에 신문도 배달도 걱정스러웠는데, 비가 와서 배달이 지연됐다고 한다. 우비도 없이 배달을 어찌했냐 물으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대답이 돌아왔다.

 

배달 시작 후에 비가 오면 그냥 맞죠. 올해 여름에 우비 입은 게 세 번 되나. 나갈 때부터 비가 쏟아지면 모를까, 한 번 우비를 벗으면 더워서 다시 못 입어요. 작업할 때 우비를 입어도 다니다 보면 이미 다 젖어서 입는 의미도 없어지고, 그냥 안 입고 배달하는 거죠. 빗방울 떨어지니까 우비 입고 영업장 들어가기도 눈치 보이구요.

 

신문이 일요일만 빼고 매일 발행되니 선 지부장의 삶은 온전히 그 패턴에 맞춰져 있다. 친구들과의 여행은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몸이 아파도 맘 편히 쉴 수조차 없다.

 

너무 아플 때는 많이 참고 일을 하죠. 내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교통사고 때문에 전치 13주가 나왔어요. 복숭아뼈가 조각났거든요. 그래서 그날 외발로 다니면서 신문 분류하고, 엎드려서 신문에 배송지를 다 적었죠, 다른 사람이라도 배달을 해야 하니까. 그리고 24일 밤에 앰뷸런스 타고 병원가서 25일 하루 자고, 26일 수술하고. 원래 몇 달 있어야 했는데 신정 되자마자 나왔어요. 다리 아픈 건 괜찮은데 깁스해서 신발을 못 신는데 발가락이 다 나와 있으니까, 한겨울에 야외에서 분류작업 할 때 발가락이 너무 시려운 거예요.

아침식사 후엔 다음 근무지인 마트로 향한다. 영업 시작인 9시부터 오후까지 손님들이 마트에서 주문한 품목을 배달한다. 마트 배달일도 벌써 10년 가까이 하다 보니, 사장님네와 가족과 다름없다. 애틋한 관계는 여전하건만, 마트의 풍경은 코로나 이후 많이 달라졌다. 인터넷 장보기에 익숙해진 동네 손님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절묘하게도 그 덕분에 선 지부장이 노조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배달이 한 건도 없을 때가 있어요. 그러면 밍숭맹숭 있는게 아니라 마트에 할 일이 많아요. 쪽파 까고, 야채 소포장해 진열하고, 유통기한 지난 물품 없나 봐야되고. 코로나 이전 대비 여기 일 매출이 거의 반토막이 났어요. 마침 제가 당시 노동조합을 할 수 있었던 건 마트가 한가해진 덕도 있어요.

 

매출 감소가 여실히 보이자 선 지부장이 먼저 제안해 급여를 줄였다. 덕분에 마트 업무 시간을 조율하며 노동조합 활동 시간을 벌 수 있게 됐다고 선 지부장은 오히려 웃었다.

 

노동조합을 하기 전, 선 지부장은 마트의 오전 일과가 끝나면 플랫폼배달을 했었다. 하지만 노동조합의 지부장이 된 후, 대부분의 오후 일과는 신규 조합원을 만나고, 노조 월례회의를 진행하고, 사무국장과 사업 관련 논의 등으로 바뀌었다.

 

쿠팡, 배민은 안 한 지 일 년 넘었죠. 어떤 날은 할 수 있는 시간이 돼도 배달을 매일 하지 않으면 주문 배정이 잘 안 돼요. 오랜만에 하면 감각도 떨어져서 콜을 잘 못 잡기도 하니까, 잘 안 하게 되죠.

 

노동 대신 노조가 일상에 파고드니 당연히 수익도 전보다 많이 줄었다. 생활비를 걱정하자 자신은 신문도 하고 마트도 하니‘그냥 괜찮다’고 한다.

직장인들이 집으로 돌아간 19시, 선 지부장도 일과에서 퇴근해 꿈나라로 향한다. 23시에는 일어나야 신문 배달을 시작할 수 있다.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꼼짝없이 수면 부족으로 이어지니, 남들보다 조금 이르게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 내일도, 모레도 누군가에게는 쳇바퀴지만 선 지부장에게는 최선인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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