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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고충 듣겠다? 노사협의회부터 정상화하라

이동철의 상담노트

등록일 2024년05월16일 11시04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강아무개씨는 영상 콘텐츠 제작 회사에서 일한다. 노조는 없고 일하는 시간은 들쭉날쭉하다. 근로계약상 정해진 근로시간이 지켜지지 않아 노동자들의 불만이 높다. 가장 큰 불만은 체계적이지 못한 업무지시였다. 회사 내 작업실에는 음료 등 최소한의 복지 물품도 갖춰져 있지 않다.

강씨가 일하는 곳은 상시근로자 30명 이상 사업장으로, 회사가 입주해 있는 아파트형 첨단 산업 밸리에서 규모가 큰 편에 속한다. 그런데 사장과 그 친구인 본부장은 영업에 골몰하다 보니 소속 노동자의 업무를 지원하는 담당자조차도 없다. 월급 계산과 4대 보험 공제 등은 세무사와 계약해 위임한다. 퇴직금 액수에 문제의식을 느낀 퇴직 노동자가 사업주에게 퇴직금 산정방식을 문의하니 세무사 전화번호를 알려 주며 거기에 알아보라고 했다.

엉망진창인 임금체계와 부실한 사내 복지, 체계 없이 뒤죽박죽인 업무처리가 계속되자 직원들의 불만이 높아졌다. 강씨를 비롯한 노동자들 몇 명이 모여 사업주를 상대로 고충처리를 집단적으로 제기했다. 그러나 회사에는 고충처리기구나 노사협의회가 없었다.

근로자 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근로자참여법)에 따라 상시근로자 30명 이상을 사용하는 사업장에서는 노사협의회와 고충처리기구를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 사업주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는 사항이 아니다. 노사협의회 미설치는 1천만원 이하, 고충처리기구 미설치는 2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지는 의무사항다.

강씨는 사업주를 상대로 고용노동부에 근로자참여법 위반으로 진정을 제기했다. 그런데 놀라운 반전. 회사에는 노사협의회가 있었다. 사장의 친구인 본부장을 비롯해 사용자위원과 사장 수행기사를 비롯해 강씨도 잘 모르는 직원 몇몇이 자격이 없는데도 근로자위원으로 돼 있었다. 노사협의회 규약까지 갖춰져 있었다.

노사협의회는 사업주가 위촉하는 사용자위원과 근로자가 선출하는 근로자위원이 각각 동수로 구성한다. 노사협의회에서는 소속 노동자의 교육훈련이나 능력개발에 대한 기본계획, 복지시설의 설치와 관리, 고충처리위원회에서 해결하지 못한 사항을 의결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노사가 회사의 매출과 사업계획 등 경영 상황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성과 배분·작업환경 개선 등 소속 노동자들이 제기하는 고충처리와 복리후생 정책을 협의할 수 있다. 사업주 역시 근로자의 채용과 배치, 인사·노무관리 제도 개선, 작업수칙 제·개정을 노동자와 협의해 그 수용성을 높일 수 있다.

법이 이렇게 사업주에게 노사협의회라는 노사협의기구 설치를 의무화한 이유는 명확하다. 적어도 노동자 30명 이상이 되는 규모의 사업장에서는 간접적이나마 노동자들과 업무수행에 따른 고충을 협의하고 개선점을 찾는 것이 노동자가 일하는 데 도움이 되고 기업의 효율성에도 보탬이 되기 때문이다.

2022년 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30명 이상 사업장 약 6만여곳에 노사협의회가 설치돼 있었다. 법적 의무 사항인데도 설치하지 않은 사업장이 적지 않다. 설치됐다 하더라도 강씨 사업장처럼 ‘페이퍼 노사협의회’만 둔 곳은 얼마나 많은지 파악하기 어렵다.

노동부가 노조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의 고충을 듣겠다며 지역순회 원탁회의를 하겠다고, 주요 일간지에 대문짝 만하게 광고하고 있다. 대다수 노동자가 점심 먹고 한참 일해야 할 시간인 오후 1시30분부터 서울 도심의 4성급 호텔에서 행사가 진행된다.

부디 그 예산으로 페이퍼 노사협의회를 바로 잡고 법에 따른 노사협의회 정상 설치를 독려하면 좋겠다. 전체 노동자 중 노조에 가입한 비율이 채 15%가 안 되는 우리 노동시장에서 최소한 노사협의회라도 제대로 작동해야 노동자들의 고충이 논의 테이블에 올라간다.

 

이동철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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