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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착각

임승수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저자

등록일 2024년10월08일 14시40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자본주의에 문제가 있다는 건 일정 부분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세상에 완벽한 제도란 없지 않나요? 인간이란 동물은 본성적으로 이기적이기 때문에 사회주의는 불가능해요. 이기적인 인간들이 모여 사는 사회는 결국 이기심에 의해 돌아갈 수밖에 없으니까요.”

 

사회주의자로서 글 쓰고 강의하다 보면 가장 자주 접하는 주장이다. 얼핏 설득력 있게 들리지만 내가 보기에 크게 두 가지 오류가 있다. 첫째, 사회주의가 경쟁을 배제하고 인간의 이기심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오해다. 둘째, 인간이 이기심으로 가득하다는 가정 자체의 오류다. 하나씩 살펴보자.

 

사회주의에도 경쟁은 존재한다

 

오래전 남과 북의 교류가 활발했던 시기에 남한의 한 기자가 취재차 북한의 학교를 방문했다. 그런데 교실에서 1등부터 꼴등까지 이름과 점수를 공개한 게시물을 발견하고는 무척 놀랐다. 평등을 중요한 가치로 내세우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대한민국보다 더욱 노골적으로 등수를 공개하다니!

 

사실 북한에서도 소위 명문대라는 김일성대학에 진학하려면 뜨거운 경쟁을 피할 수 없다. 김일성대학에서 공부하고 능력을 인정받으면 그에 걸맞은 중요한 직책을 맡을 수 있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니 말이다. 입학 정원은 한정되어 있으니 동료들보다 공부를 더 잘해야 한다.

 

사회주의에서도 성과급제를 시행해 경쟁과 근로 의욕을 고취한다. 솔직히 농땡이 치는 사람과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똑같은 보상을 받는다면 그 누가 열심히 일하겠는가. 사회주의 국가에서 목표를 초과 달성하는 개인이나 팀에게 상을 주고 물질적 혜택을 추가로 부여하는 건 매우 흔한 일이다.

 

학교에서도 성적을 놓고 경쟁하고, 직장에서도 더 높은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경쟁하는데 사회주의가 어떻게 인간의 이기심과 경쟁심을 마냥 무시한다고 할 수 있겠나. 다만 이러한 이기심과 경쟁심이 자본주의처럼 극단적인 빈부 격차와 착취로 이어지지 않을 뿐이다.

 

사회주의의 궁극적 목적은 모두가 고루 잘사는 평등한 사회 구현이다. 기업 대부분이 공기업 형태를 띠고 있어서 공익을 위해 운영되며, 국가의 우선 과제는 구성원 모두에게 능력과 적성에 맞는 일자리를 제공하고 기본적인 삶의 질을 보장하는 것이다. 경쟁이나 성과급의 도입은 단지 이러한 목표달성을 보조하는 역할일 뿐이다.

 

전문직에 대한 우대도 존재하지만 위험하거나 고된 일에 종사하는 이들을 한층 배려한다. 노동자 대부분이 사실상 공기업에 소속되어 공적인 일을 수행하니 아무리 작은 업무라 할지라도 인민들을 위해 일한다는 사명감과 긍지를 갖고 있다.

 

무엇보다도 사회주의에서는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예컨대 국회의원)에 노동 계급 출신이 상당수다. 애초에 노동 계급의 이익이 관철될 수밖에 없는 정치 구조다. 그러니 학교에서 1등부터 꼴등까지 성적을 게시해도, 직장에서 성과에 따라 보상을 차등적으로 주어도, 그것이 불평등과 차별의 문화로 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기업 대부분이 이윤 목적의 사기업이고 계급·직종 간 소득 격차가 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명문 대학 학위를 받고 근사한 전문직에 종사하느냐의 여부가 향후 안정되고 윤택한 삶을 사는 데에 상당히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쉽게 대체될 수 있는 단순한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는 대개 저임금에 고용 형태가 불안정하다.

 

이러니 부모는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라도 공부하라고 경쟁에 내몰 수밖에 없고 아이는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학생부종합전형이든 정시든 아무리 입시 제도를 고친다 한들 불평등이 심한 사회에서는 결국 과도한 경쟁으로 입시 제도가 파행적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크다.

 

자신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고 위하는 마음이 ‘이기심’이라면, 남보다 더욱 두각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경쟁심’이라면, 이기심과 경쟁심이 없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적정 수준의 이기심이나 경쟁심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여러 면에서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니 사회주의라고 해서 이기심과 경쟁심을 도외시할 리가 없다. 다만 기본적인 삶이 보장되는 사회주의에서의 안정적인 경쟁과 오로지 내가 번 돈으로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각자도생 자본주의에서의 절박한 경쟁은, 당사자가 느끼는 압박감과 스트레스에서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인간은 공감 능력으로 이타심을 발휘한다

 

인간이 이기심으로 가득하다는 가정 자체의 오류를 살펴보자. 사실 인간이 이타적임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는 인간이 이기적임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만큼이나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막돼먹은 극소수 인간말종이 아니고서야 길을 잃어 우는 아이를 누가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한 이기심의 발로라고? CCTV가 있을 때만 아이를 도와주고 없을 땐 방치한다면 그 말이 맞겠다. 하지만 도대체 누가 그러겠나. 자식에 대한 부모의 무조건적 헌신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조국과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 목숨까지도 아낌없이 바친 독립운동가들은? 어떤 이들은 생판 모르는 남을 구하기 위해서 위험을 무릅쓴다.

 

인간이 이렇게 높은 수준의 이타심을 발휘할 수 있는 기저에는 공감 능력이 존재한다. 인간은 왜 이토록 이타적일까? 인간이라는 종은 내내 무리를 이루며 살아왔다. 무리 안에서 서로 의존해야 개체의 생존과 번식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고립되어 혼자 살아야 한다면 생존하거나 자식을 남길 확률이 현격히 낮을 것이다. 수렵 채집으로 먹을거리를 마련하고, 아이들을 돌보며, 맹수나 다른 무리와의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구성원이 서로 협력해야 한다. 각자 이기적으로 행동하며 돕지 않으면 생존과 번식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

 

알다시피 인류는 지구에 등장한 이후 대부분 수렵 채집 활동을 하며 소규모 공동체로 시간을 보냈다. 이 기나긴 진화의 여정에서 협력에 도움이 되는 이타심이라는 형질이 선택되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인정 욕구, 그리고 이기적인 사람에 대한 거부감도 진화 과정을 고려하면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무리에서 좋은 평판을 얻은 개체가 후세대에 유전자를 남길 확률이 높을 것이다.

 

정나미 떨어지는 녀석과 음식을 나누거나 자식을 만들기는 싫은 법 아니겠나. 그러니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일은 영양분 섭취만큼이나 삶에서 중요한 과제다. 일종의 정신적 양식인 셈이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재벌이나 유명 연예인조차 외로움과 소외감이라는 정신적인 영양실조에 빠지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인간에게 있어 공동체에 소속감을 느끼고 인정받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감하게 된다.

 

인간은 공동체적 존재다

 

자기만 챙기는 이기적인 사람은 마치 썩은 음식과도 같아서 협력의 분위기를 훼손하고 공동체에 악영향을 끼쳐 구성원의 생존과 번식 확률을 낮춘다. 알다시피 인간은 몸에 해로운 썩은 음식을 섭취할 때 맛없고 역겹게 느끼도록 진화되었다.

 

우리가 이기심 가득한 사람에게 역겨운 감정을 느끼는 것도 같은 이유다. 나에게 해로운 사람임을 본능적으로 알아보는 것이다. 사실이 이러한데도 어떻게 인간을 이기적인 존재로만 치부할 수 있는가?

 

자신이 썩은 음식임을 자인하는 꼴 아닌가 싶다. 현재 진화 현상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타심의 진화에 대해서 유전자의 관점에서 혹은 집단의 관점에서 다양한 주장을 내놓으며 활발하게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결국, 이기심이든 이타심이든, 근본은 공동체적 존재이기 때문에 가능한 속성이다. 무리 안에서 서로 관계를 맺고 있기에 이기와 이타가 성립되는 것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철저하게 공동체적 존재이며 공동체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이기심만 가득한 존재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자본주의 시스템이 초래하는 공동체성 파괴와 인간 소외 현상을 마치 본성의 산물인 양 호도한다. 그런 언동이 인민을 착취하는 한 줌 지배 계급의 행동에 면죄부를 준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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