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은 지난 7월 12일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를 개최하고 실업급여 개편 방향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자리는 실업급여 제도에 관한 생산적 논의보다는 실업급여가 악용돼 “시럽급여”라거나 실업급여 수급자가 “샤넬 선글라스를 사고 해외여행을 간다.”는 등 실업자에 대한 편견이 가득한 악의적 발언만 남았다.
▲ 7월 14일 국회 앞에서 개최한‘실업급여 삭감’운운하는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 규탄 기자회견
윤석열 정부의 “시럽급여” 논란과 실업급여 개편방안
정부와 여당이 이번 공청회와 그간의 논의들을 통해 제시하는 실업급여 개편 방향은 크게 다음 세 가지다. 첫째, 현재 최저임금의 80%인 구직급여 하한선이 너무 높기에 하향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둘째, 현재 18개월 내 180일로 설정되어 있는 피보험 단위 기간 조건을 더 엄격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구직급여 반복 수급자에 대한 대기기간 연장, 급여 삭감 등의 패널티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직급여 반복수급을 일종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라고 판단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실업급여 개편 방안이 실현될 경우 실업 전 소득이 낮거나 고용이 불안정한 계층에게 불리하다. 이는 전 국민 고용보험과 국민취업지원제도 도입 등 고용안전망 강화를 지향해온 지난 수 년 간의 노동시장 정책 방향과 다를 뿐 아니라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과 ‘약자복지’라는 윤석열 정부의 고용·복지 정책 캐치프레이즈와 상반된다. 우리나라 실업급여 정책이 지나치게 관대해서 부정수급과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는 상황이라는 진단이 아니고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우리나라 실업급여는 관대한가?
정부와 여당이 구직급여 하한선과 피보험 단위 기간 조건의 관대성을 표적으로 삼은 것에 나름의 근거는 있다. 정부가 내세운 핵심 근거는 국제비교인데 OECD 주요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 제도가 관대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OECD 비교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실업급여 하한선은 평균임금의 44% 수준으로 가장 높은 수준이며, 피보험 단위 기간 조건은 핀란드, 프랑스, 그리스, 아이슬란드,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등과 함께 관대한 편에 속한다.
그러나 실업급여를 구성하는 요건이 하한선과 피보험 단위 기간 조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실업급여는 수급 기간이 120~270일로 가장 짧은 편이다. 또한, 우리나라 실업급여는 자발적 실업에 대해서는 구직급여를 지급하지 않는다. 대부분 국가가 자발적 실업에 대해 대기기간을 길게 하는 등의 패널티를 부여하지만, 구직급여를 전혀 지급하지 않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는 하한선이나 피보험 단위 기간 조건과 반대로 우리나라 제도가 더 엄격한 측면들이다.
실업보험 수급자의 ‘도덕적 해이’가 나타날 수 있는 경로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의도적으로 실업을 초래하여 실업급여에 의존하는 경우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실업자 본인의 중대한 귀책 사유나 자발적 의사에 의한 실업에 급여를 지급하지 않으므로 이 같은 경우는 발생하기 어렵다.
둘째, 일단 실업한 이후 장기간 실업 상태에 머물며 실업급여를 편취하는 경우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또한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데 실업급여 수급기간이 짧기 때문이다. 셋째, 실업급여 수급 후 단기간 취업하여 실업급여 자격만 재취득하고 이후 실업하여 다시 실업급여를 수급하는 경우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자발적 실업에 대해 실업급여가 지급되지 않는 상황에서 반복적 실업자 역시 각각의 실업이 비자발적인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급여를 수급한다. 그렇다면 구직급여 반복수급은 구직자의 의도가 아닌 장기간 일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를 얻기 힘든 상황에 근본 원인이 있다.
결국, 종합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나라 실업급여 제도가 부정수급과 도덕적 해이 문제를 심각하게 발생시킬 정도로 관대하다는 진단에 동의하기 어렵다. 부분적으로 제도의 조정이 필요한 관대한 측면이 있다고 할지라도 다른 측면에서는 오히려 과도하게 엄격한 측면이 있기에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큰 틀에서 우리나라 고용안전망의 핵심과제가 무엇인지에 있다.
여전히 강화가 필요한 고용안전망
정부가 구직급여 하한선 하향조정의 근거 중 하나로 내세우고 있는 OECD 보고서 “OECD Economic Surveys: Korea 2022”에서는 우리나라 고용안전망에 관한 여러 제안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높은 구직급여 하한선에 따른 노동유인 저하 문제도 포함되어 있지만, 종합적으로는 고용안전망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특히 여전히 우리나라 고용보험은 사각지대가 넓어 이를 개선해야 하고, 국민취업지원제도 등 자산조사형 급여는 그 수준이 너무 낮다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와 자산조사형 급여의 취약성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 정부에서 추진된 제도 개혁이 ‘전 국민 고용보험’과 ‘국민취업지원제도’이다. 두 제도의 도입은 우리나라 고용안전망의 중요한 진전이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전 국민 고용보험은 단계적으로 추진하여 현재 19개 직종의 노무제공자를 고용보험 적용대상으로 포괄하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임금노동자를 주된 대상으로 하는 제도에 특례 방식으로 비임금근로자를 ‘끼워 넣는’ 방식이다 보니 이들의 다양한 소득 활동 방식에 맞는 제도 조정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고용관계’가 아닌 ‘소득’을 보호의 대상으로 하는 소득 중심 인별 관리체계를 실현해야 하지만, 정권교체 이후 이를 위한 논의는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
국민취업지원제도의 경우 급여 수준이 너무 낮고, 수급 기간도 짧아 저소득 구직자의 생활 보장을 위한 제도로 제대로 자리매김하고 있지 못하다. 2023년부터 부양가족에 대한 부가급여를 도입함으로써 어느 정도의 개선은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실업자의 생계보장을 위한 제도라기보다는 구직지원 프로그램 참여자에 대한 참여 수당 정도의 위치에 머무르고 있다.
따라서 국민취업지원제도가 고용안전망의 핵심 제도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구직급여 수급권이 없는 실업자에 대한 생활보장 제도로 그 성격을 분명히 하고, 이에 맞게 제도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
고용안전망의 강화를 요구하자!
정부의 ‘시럽급여’ 발언이 나온 공청회에서는 막상 공청회의 목적인 실업급여 제도개선을 위한 다양한 논의가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의 일방적 발표로 이끌어 가기에 고용안전망의 문제는 너무나 중요하며, 그 강화의 필요성이 여전히 크다. 정부와 여당의 편견 어린 발언으로 시작된 실업급여에 대한 논의의 장을 고용안전망 강화를 위한 과제들을 다시 한번 점검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차제에 고용안전망 강화를 요구하자. 정부가 정말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과 ‘약자복지’에 관심이 있다면 고용안전망 강화의 요구를 받아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