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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결정하는 두 독자 다니엘과 스눕의 이야기

<추락의 해부>(2023)

등록일 2024년03월07일 14시50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채희숙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추락사의 원인을 추적하는 법정 드라마를 통해 진실과 허구의 관계를 질문하는 <추락의 해부>(쥐스틴 트리에, 2023)는 ‘추락’에 대한 이해보다도 ‘해부’의 방식에서 더 흥미롭다. 추락사를 이해하기 위한 이 영화의 해부는 두 방향을 향해 있는데, 그 하나는 재판을 통해서 진행되고 다른 하나는 추락사한 사뮈엘의 아들인 다니엘이 진행한다.

 

다니엘과 반려견 스눕은 산책 후 돌아오는 길에 집 앞에서 자살인지 타살인지 명백히 밝힐 수 없는 사뮈엘의 추락사를 최초로 목격한다. 사건의 조사 과정에서 엄마 산드라가 용의자로 기소된다. 이어서 재판을 통해서 진실의 ‘해체’로서의 해부가 진행된다. 재판정은 애증이 얽힌 부부관계가 파헤쳐지는 곳이며 진실에의 도달 불가능성을 확인하는 곳이 되기 때문이다.

 

사뮈엘의 시신은 죽음이라는 불변의 사실 외에 사건을 설명할 수 있는 물리적 증거가 되지 못하고 전문가들의 진술은 정황상 추정에 불과하다. 산드라가 진술한 부부관계 및 사뮈엘의 모습은 산드라에게 유리하게 왜곡된 것이거나 심지어 사실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 진술의 사실 여부를 확인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영화가 종결에 이를 때에도 인물들과 관객 모두는 진짜로 일어난 일이라고 확증할 수 있는 진실을 얻지 못한다.

 
 

▲사진 출처: KMDb

 

그 와중에도 다니엘은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재판을 회피하지 않고 모든 진술을 듣는다. 또 그간 자신이 몰랐던 부모 사이의 관계와 그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에 충격을 받는 중에도 불확실한 진술과 파편적 사실들 사이에서 진실을 찾고자 노력한다. 다니엘은 산드라의 진술을 믿을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자신의 기억과 산드라가 진술한 상황을 비교하는 실험을 강행하고 긍정적인 답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그 답조차 추락사의 진실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재판정에서부터 다니엘의 실험에까지 작용하고 있는 것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를 기준으로 판명될 수 있는 진실 관념이자 그러한 진실에 닿는 일의 실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재판은 결국 어떤 결론에 이르러야 하지만 객관적 진실이란 밝혀질 수 없는 것임이 다니엘의 좌절에서 마지막으로 확인된 이후, 이 영화는 다니엘에 의해 진행되는 ‘구성’을 위한 해부에 집중한다.

 

다니엘은 재판 기간 중 작용할 수 있는 불편이나 압력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주는 보호관인 마르주에게 사실과 확신 대신 선택과 결정에 의한 판단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조언을 듣는다. 그리고 다니엘은 인물과 관객에게 심화 된 곤경, 즉 어떤 진실에 이를 길을 잃고 미궁에 빠져버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는 또 다른 진실을 산출해낸다. 다니엘은 확인 불가능한 진짜 또는 사실의 영역에 의존하는 길에서 빠져나와서 사뮈엘, 산드라, 그리고 사건을 연결할 수 있는 고리를 찾고 그러한 자신의 이해를 믿고 감당하는 결정을 한 것이다.

 

▲사진 출처: KMDb

 

증언대에 선 다니엘은 사뮈엘과의 일화를 진술한다. 다니엘에 따르면 그 일을 겪던 당시에는 몰랐으나 이제 사뮈엘이 자신에 대해 발언한 것이라고 판단되는 이야기가 다니엘의 목소리를 빌려 들려진다. 그 목소리는 타인을 지켜보고 돌보는 삶을 지속하다가 지쳐버린 존재의 죽음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요청하고 그러한 죽음 뒤에도 세상이 이어진다는 위로의 말을 전한다.

 

다니엘의 증언은 산드라와 사뮈엘 모두에게 어떤 진실을 제공한다. 다시 말해 다니엘은 실험 결과를 증언함으로써 산드라에게 그녀의 진술에 부재했던 믿음을 주고, 사뮈엘에게는 그의 죽음에 부재하는 주체의 목소리를 준다. 다니엘의 진술 역시 여전히 거짓말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의 진술은 스스로 고민하고 판단해 감당하기로 한 내용으로서 사건의 진실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지표로 작용한다.

 

다니엘의 결정으로서의 진실, 다시 말해 사건의 이해를 도모하여 자신의 이해에 따른 결정을 감당하고 실천함으로써 실현되는 진실이 이 영화에서 진실의 무용함이나 상대성과는 다른 차원에 있는 것임은 스눕이 설명한다. 스눕의 발소리는 영화의 시작과 끝, 그리고 재판 결과 장면에 같은 리듬으로 들려온다.

 

스눕은 거실에, 사건 현장에, 산드라 곁에 있으면서 모든 사건을 응시하지만, 그 시선은 또한 프레임 바깥을 향해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스눕은 가장 먼저 보기 시작하고 가장 마지막까지 눈을 뜨고 있다. 사건의 모든 곳에 존재하며 모든 것을 응시하는 스눕에게서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진실을 간직한 서늘한 눈을 직면한다.

 


▲사진 출처: KMDb

 

영화를 다 본 후에 비로소 연결되겠지만, <추락의 해부>가 제안하는 진실은 오프닝씬의 시청각이미지에서 복선처럼 이미 전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암전된 상태에서 “탁 탁 탁” 하는 스눕의 발소리에 이어서 “무엇이 알고 싶나요?”라고 묻는 소설가 산드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위와 같은 소리 이후에 화면이 열리면 2층 계단에서 1층으로 공이 하나 통통 떨어지고 스눕이 그 공을 따라 계단을 내려와서는 공을 물고 인터뷰가 진행되고 있는 거실 쪽으로 서서 프레임 바깥을 잠시 응시한다. 곧이어 산드라의 11살 난 아들 다니엘이 자신을 부르자 스눕은 공을 물고 다니엘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간다.

 

장면은 거실로 이어지고 경험을 반영한 글을 쓰는 데 따르는 불편함을 묻는 인터뷰어에게 산드라는 독자가 책으로 들어와야 비로소 이야기가 흥미로워지고 책이 완성된다는 작가관을 밝힌다. 이야기에 선행하는 진짜가 무엇인지 묻는 인터뷰어의 말에는 답이 이어지지 않는다. 남편 사뮈엘이 (나중에 가면 산드라에게 무언의 항의 또는 불만을 표하는 행동으로 해석되는) 노동요를 온 집안에 울리도록 반복재생하는 바람에 인터뷰가 더 이어지지 못한다.

 

이 영화에는 끝까지 진짜를 확인하게 하는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다. 대신 독자가 완성해야 할 소설이 있고, 사뮈엘과 산드라는 독자에 의해 완성되어야 할 그 소설의 일부이다. 관객에 앞서, 이야기를 완성하는 첫 번째 독자는 다니엘과 스눕이다. 진짜인가 아닌가를 확인하는 대신 이야기를 생산하고 책을 완성하는 존재들로서의 독자들이다.

 

이때 이야기란 진짜와 허구로 나뉘는 진실보다는 결정으로서의 진실을 전할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이 아빠의 이야기를 지어냈거나 혹은 해석함으로써 그의 삶의 진실을 비로소 드러낼 수 있었던 것처럼, 스눕의 말 없는 응시에서 사건이 입증되는 것처럼, 독자가 진실에 이르는 유일한 존재이기도 하다. 이 두 독자를 통해 제안되는 진실, 즉 자신을 걸고 스스로 이해하여 그것을 감당하는 결정으로서의 진실이 흥미로운 이야기인지는 다시 관객이라는 독자를 통해 결정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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