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필민 칼럼리스트
얼마 전 어느 화물노동자의 이야기를 써서 출판사로 넘겼다. 글을 고치고 다듬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글이 어려워졌구나! 다시 이오덕 선생의 책을 꺼냈다.
“말을 글자로 적어놓은 것이 글일 터인데, 글이 말에서 멀어져 말과는 아주 다른 질서를 가진다는 것은 매우 좋지 못한 현상이다. 더구나 말을 소리 나는 대로 적게 되어 있는 우리글이 우리말에서 멀리 떨어져 나가 있다면 아주 크게 잘못된 일이다.”
삼일절 백주년을 맞이해 ‘국민과 함께 읽는 독립선언서 낭독하라 1919!’ 운동이 일었다. ‘독립선언서’를 그대로 봐서는 무슨 말인지를 몰라서다. 그때 쓰인 선언서는 읽기조차 힘들다.
‘吾等은 玆에 我 朝鮮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 此로써 世界萬邦에 告하야 人類平等의 大義를 克明하며, 此로써 子孫萬代에 誥하야 民族自存의 正權을 永有케 하노라.’
이를 풀어쓰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 우리는 이를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가 모두 평등하다는 큰 뜻을 분명히 하고, 우리 후손이 민족 스스로 살아갈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게 할 것이다.’
운동의 제목에서 ‘낭독하라’도 바꿨으면 한다. ‘국민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읽어라 1919!’는 어떤가. 이 운동에 ‘낭독 릴레이’, ‘캠페인’이라는 말을 덧붙이기도 하는데, 그 뜻을 모르는 듯해서 안타깝다.
독립선언서만이 아니다. 우리 곳곳에 이 같은 일이 많다. 아래는 한 노동조합의 성명서이다.
‘1주일의 노동시간을 최대 52시간으로 제한하는 근로기준법 시행은 노동부의 왜곡된 행정해석으로 인해 현장에서 발생한 장시간 노동을 해소하고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중요한 문제이다.’
한글로 쓰였으니 우리글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조사를 빼면 다 중국글자다. 중국에서 쓰는 말도 있지만 우리나라 지식인들이 만든 말, 일본에서 넘어온 중국글자도 있다.
‘1周日의 勞動時間을 最大 52時間으로 制限하는 勤勞基準法 施行은 勞動部의 歪曲된 行政解析으로 因해 現場에서 發生한 長時間 勞動을 解消하고 勞動者의 健康權 保護와 삶의 質 向上을 爲한 重要한 問題이다.’
1919년 독립선언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말이 있는데 굳이 중국글자를 우리글자로 옮길 필요가 있을까 고민이다. 익숙하지 않고 어색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우리말을 자주 쓰지 않으니 낯 설 뿐이다.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를 쓴 이도 그랬다. 중국글자의 말은 괄호 안의 말로 바꿔야 한다. ‘勞動時間(일하는 시간), 歪曲된(그릇된, 잘못된), 行政解析으로 因해(행정해석 때문에, 행정해석으로), 發生한(일어난, 생긴), 長時間 勞動(긴 시간 노동), 解消하고(없애고, 풀어 없애고), 保護(지키기), 向上(높이기), 삶의 質 向上을 爲한 重要한 問題이다(삶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열쇠이다)’ 이리 바꿔 썼다.
‘1주일 동안 일하는 시간을 최대 52시간으로 막는 근로기준법 시행은 이제껏 노동부의 잘못된 행정해석으로 현장에서 벌어진 긴 시간 노동을 뿌리 뽑고, 노동자 건강권 지키기와 삶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일이다.’
성명서 문장이 길고 알쏭달쏭했는데, 우리글로 바꾸니 무슨 말인지 쏙 알 수 있지 않는가. 우리글로 쓰면 문장이 길어진다고 말하는 이가 있는데 꼭 그렇지는 않다. 무슨 뜻인지를 또렷하게 알 수 있으니 잘못된 글을 찾기도 쉽다. ‘주52시간으로 제한하는 근로기준법 시행’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장시간 노동을 해소하고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와 삶의 질 향상’시키는 ‘중요한 일’이다. ‘문제問題’는 ‘해답을 요구하는 물음’을 말이다.
아래는 노동조합 성명서에서 흔히 쓰는 말을 우리글로 바꿨다.
철회하라 → 걷어치우라, 거둬들여라
소화하다 → 받아들이다
항거하다 → 맞서다
연장하다 → 늘이다
저지하다 → 막다, 말리다
남용하다 → 막 쓰다, 마구 쓰다, 함부로 쓰다
중단하라 → 멈춰라
규탄하다 → 나무라고 꾸짖다
절규하다 → 부르짖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