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필민 칼럼니스트
SNS 사용이 늘어나며 숱하게 많은 글들이 우후죽순으로 세상에 터져 나온다. 어떤 주제에 대해 거의 비슷한 이야기를 썼는데, 어떤 이의 글은 잘 읽히고 어떤 사람의 글은 잘 읽히지 않는 경우가 있다. 왜 그럴까? 누가 글을 썼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글쓴이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글을 썼느냐에 따라 호감과 비호감이 나뉘는 법이다. 아무리 글을 잘 쓰고, 문장력이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떤 글은 영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글쓴이가 자신을 중심에 놓고 글을 썼기 때문이다. 자기의 이야기를 자신의 생각대로 자신의 문체로 쓰는 게 글이다. 하지만 일기처럼 자신만이 간직할 글이 아니라면, 글을 쓸 때는 늘 읽는 사람을 생각하며, 읽는 사람 중심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다른 이들이 관심이 없거나 읽고 싶은 내용이 아니라면 공감이 따르지 않는다. 읽는 사람이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지 못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읽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친절하게 써야 한다.
다음으로는 글 쓰는 목적을 분명히 하고, 그 목적에 가장 적합한 글을 써야 한다. 장소를 알려주는 글이라면 찾아오기 쉽게 써야 한다. 물건을 광고하는 글이라면 소비자가 사고 싶게 해야 한다. 집회를 알리는 글이라면 참여하고 싶게 써야 한다. 규탄하는 글이라면 읽는 사람의 분노를 일으켜야 한다. 여기서도 글 쓰는 사람의 중심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중심이어야 한다. 규탄 성명서를 쓸 때, 글쓴이가 자신의 분노를 신랄하게 쏟아내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 그 성명서를 읽는 이가 공감해 분노가 터져 나와야 한다. 그래서 연대의 마음을 일게 만들고, 실천에 함께한다면 성공한 성명서다.
1973년 9월 11일 미국의 지원과 사주를 받은 군 참모총장인 피노체트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키자 칠레의 대통령이던 살바도르 아옌데는 죽음을 앞두고 다음과 같은 칠레 국민들에게 고별인사를 했다.
“지금이 분명 여러분께 연설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겁니다. 공군이 라디오 마가야네스의 안테나를 폭격했습니다. 저는 실망과 괴로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제 말은 충성 서약을 어긴 자들에 대한 도덕적 심판이 돼야 마땅합니다. 칠레의 병사이고 명색이 합참의장이면서 해군 참모총장이기도 한 메리노 제독, 게다가 겨우 어제 정부에 대한 충성과 헌신을 맹세했으면서 지금은 경찰총장을 자임하는 저 비굴한 장군 멘도사 씨 같은 자들 말입니다. 이 모든 작태에 맞서 저는 노동자들에게 오직 이렇게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나는 결코 사임하지 않는다고! 이 역사적 갈림길에서 저는 민중의 충성에 제 생명으로 답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께 말하겠습니다. 우리가 수천, 수만 칠레인들의 소중한 양심에 심어 놓은 씨앗들은 일격에 베어 쓰러뜨릴 수 있는 게 아님을 확신한다고. 저들은 힘을 가졌습니다. 저들은 우릴 종복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범죄 행위로도, 무력으로도 사회의 진보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를 만드는 건 민중입니다. [가운데 줄임] 민중은 스스로를 지켜야 합니다. 스스로를 희생해서는 안 됩니다. 민중은 무너지거나 총탄세례에 쓰러져서는 안 됩니다. 아무도 민중에게 굴욕을 줄 수는 없습니다. 내 조국의 노동자들이여, 저는 칠레와 칠레의 운명을 믿습니다. 나는 죽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은 반역이 판치는 어두움과 비탄의 세월을 이겨낼 것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머지않아 위대한 길이 다시 열릴 것입니다. 그 길 위로 칠레의 자유인들이 걸어가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할 것입니다. 칠레 만세! 민중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것이 저의 마지막 말입니다. 저의 희생이 헛되지 않으리라고 굳게 믿습니다. 최소한 범죄자들과 비겁자, 반역자들을 벌하기 위한 도덕적인 교훈은 되리라 확신합니다.”
아옌데는 자신의 마지막 글을 오로지 칠레 국민만을 중심에 두고 썼음이 분명하다. 그 목적도 분명했다. 1988년 칠레 민중들은 민주화 시위를 벌였고, 결국 독재자는 권좌에서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