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뉴스등록
포토뉴스
RSS
자사일정
주요행사
맨위로

첫 문장을 첫사랑 하듯 써라

등록일 2018년10월16일 16시36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오필민 칼럼리스트

 


 

‘첫’이나 ‘처음’으로 시작하는 말은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지요. ‘첫’하면, 당신은 어느 순간이 떠오르나요? 지금 첫사랑의 기억을 끄집어내거나 노동조합 설립 뒤 첫 파업이 떠오르지는 않았나요. 그 ‘첫’이 해피엔딩이든 아니든 아마 지우지 못할 기억으로 당신의 가슴에 남아있겠지요.


그 처음의 여운으로 노동조합의 깃발을 움켜쥐고 오늘을 살거나 그 처음의 경험을 지우려고 오늘도 애쓰는 이도 있을 테지요.
저는 글을 쓸 때 첫 문장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첫 문장이 마음에 들면 글이 끝날 때까지 술술 써집니다. 그래서 첫 문장을 가장 많이 썼다 지웁니다. 쓸 이야기가 머리에 가득하더라도 첫 문장이 맘에 들지 않으면 단 한 문단도 마무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노동조합에서 보도자료를 작성하거나 노보의 기사를 작성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첫 문장과 문단에서 읽는 이의 마음을 휘어잡아야 합니다. 첫 문장을 보고 이 글을 끝까지 읽을까 말까를 결정합니다. 미처 몰랐던 새로운 이야기거나 흥미를 주어 읽고 싶은 욕구를 일으켜야 합니다.


오늘 제가 읽은 한 신문의 A면 첫 문장과 B면의 톱기사 첫 문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를 기사에서는 ‘리드(lead)문’이라 말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6일(현지시간) 비핵화 시한에 쫓기는 “시간게임(the time game)은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 A면
‘이영갑(71)씨는 최근 서울시내 한 오피스텔의 경비직 일자리를 구했다. 이씨는 30년 넘게 조선업체에서 근무했고, 퇴사 후에는 20년가량 음식점을 운영하다 올해 초 문을 닫았다. 50년 정도 일한 셈이지만 딱히 모아둔 돈도 없고, 자녀들의 살림살이도 빡빡해 기댈 곳이 없는 이씨는 일을 쉴 수가 없다.’ - B면

 

A면 리드는 이 기사에서 말하려는 핵심이 무엇인지가 담겨있습니다. B면 리드는 사례를 들어 기사에서 소개하려는 OECD 통계자료에 대한 독자의 관심을 일으킵니다. A면 리드는 기사의 핵심내용을 먼저 말한 뒤 이를 상세하게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B면은 사례를 통해 관심을 끈 뒤 통계 자료를 설명하며 기사의 핵심적 내용을 소개합니다.


주변적인 내용으로 관심을 불러일으킨 뒤 마지막에 핵심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을 피라미드형 기사라고 하고, 핵심적인 내용을 먼저 제시한 뒤 이를 상세하게 설명하는 방식은 역피라미드형 기사라고 부릅니다.


피라미드 구조로 기사를 쓸 것인지 역피라미드 구조로 쓸 것인지는 어떤 옷을 입어야 독자에게 쉽고 정확하게 기사 내용을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결정해야 합니다. 물론 그 결정은 첫 문장이 합니다.


첫 문장이 핵심을 말하지도 못하거나 이해를 돕는 사례로 시작하지도 않았을 때가 문제입니다. 애매모호함입니다. 리드문 다음에 무엇이 나올지가 그려져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애매모호한 첫 문장은 왜 나올까요? 리드문이 중요하다는 말은 어찌어찌해서 알고 있는데 딱 거기까지입니다. 독자의 관심을 이끌어야 한다니까 문장을 멋있게 꾸미려고 공을 들이는데 애먼 시간을 버립니다.


‘첫’은 아련한 기억으로만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삶이나 글을 이끌어가는 지표입니다. 알갱이도 없고, 이해를 돕는 사례도 없이 허공에 떠도는 첫 문장은 글을 어색하게 만듭니다. 첫 문장이 다음 문장을 만들고 글 전체의 구조를 결정합니다. 그런데 첫 문장 따로 이어지는 글 따로 노는 경우가 많습니다. 역피라미드형 기사에서는 그 사건의 핵심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했을 때, 피라미드형 기사에서는 디테일과 공감이 빠진 겉핥기 사례일 때 첫 문장을 실패하고, 결국 전체 기사도 엉망으로 만듭니다.


오늘 이 글의 첫 문장이 이 연재꼭지의 문체를 처음으로 ‘~ㅂ니다’로 만들었습니다.

오필민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올려 0 내려 0
유료기사 결제하기 무통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가장 많이 본 뉴스

종합 인터뷰 이슈 산별 칼럼

토크쇼

포토뉴스

인터뷰

기부뉴스

여러분들의 후원금으로
행복한 세상을 만듭니다.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현재접속자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