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필민 칼럼리스트
‘첫’이나 ‘처음’으로 시작하는 말은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지요. ‘첫’하면, 당신은 어느 순간이 떠오르나요? 지금 첫사랑의 기억을 끄집어내거나 노동조합 설립 뒤 첫 파업이 떠오르지는 않았나요. 그 ‘첫’이 해피엔딩이든 아니든 아마 지우지 못할 기억으로 당신의 가슴에 남아있겠지요.
그 처음의 여운으로 노동조합의 깃발을 움켜쥐고 오늘을 살거나 그 처음의 경험을 지우려고 오늘도 애쓰는 이도 있을 테지요.
저는 글을 쓸 때 첫 문장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첫 문장이 마음에 들면 글이 끝날 때까지 술술 써집니다. 그래서 첫 문장을 가장 많이 썼다 지웁니다. 쓸 이야기가 머리에 가득하더라도 첫 문장이 맘에 들지 않으면 단 한 문단도 마무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노동조합에서 보도자료를 작성하거나 노보의 기사를 작성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첫 문장과 문단에서 읽는 이의 마음을 휘어잡아야 합니다. 첫 문장을 보고 이 글을 끝까지 읽을까 말까를 결정합니다. 미처 몰랐던 새로운 이야기거나 흥미를 주어 읽고 싶은 욕구를 일으켜야 합니다.
오늘 제가 읽은 한 신문의 A면 첫 문장과 B면의 톱기사 첫 문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를 기사에서는 ‘리드(lead)문’이라 말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6일(현지시간) 비핵화 시한에 쫓기는 “시간게임(the time game)은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 A면
‘이영갑(71)씨는 최근 서울시내 한 오피스텔의 경비직 일자리를 구했다. 이씨는 30년 넘게 조선업체에서 근무했고, 퇴사 후에는 20년가량 음식점을 운영하다 올해 초 문을 닫았다. 50년 정도 일한 셈이지만 딱히 모아둔 돈도 없고, 자녀들의 살림살이도 빡빡해 기댈 곳이 없는 이씨는 일을 쉴 수가 없다.’ - B면
A면 리드는 이 기사에서 말하려는 핵심이 무엇인지가 담겨있습니다. B면 리드는 사례를 들어 기사에서 소개하려는 OECD 통계자료에 대한 독자의 관심을 일으킵니다. A면 리드는 기사의 핵심내용을 먼저 말한 뒤 이를 상세하게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B면은 사례를 통해 관심을 끈 뒤 통계 자료를 설명하며 기사의 핵심적 내용을 소개합니다.
주변적인 내용으로 관심을 불러일으킨 뒤 마지막에 핵심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을 피라미드형 기사라고 하고, 핵심적인 내용을 먼저 제시한 뒤 이를 상세하게 설명하는 방식은 역피라미드형 기사라고 부릅니다.
피라미드 구조로 기사를 쓸 것인지 역피라미드 구조로 쓸 것인지는 어떤 옷을 입어야 독자에게 쉽고 정확하게 기사 내용을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결정해야 합니다. 물론 그 결정은 첫 문장이 합니다.
첫 문장이 핵심을 말하지도 못하거나 이해를 돕는 사례로 시작하지도 않았을 때가 문제입니다. 애매모호함입니다. 리드문 다음에 무엇이 나올지가 그려져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애매모호한 첫 문장은 왜 나올까요? 리드문이 중요하다는 말은 어찌어찌해서 알고 있는데 딱 거기까지입니다. 독자의 관심을 이끌어야 한다니까 문장을 멋있게 꾸미려고 공을 들이는데 애먼 시간을 버립니다.
‘첫’은 아련한 기억으로만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삶이나 글을 이끌어가는 지표입니다. 알갱이도 없고, 이해를 돕는 사례도 없이 허공에 떠도는 첫 문장은 글을 어색하게 만듭니다. 첫 문장이 다음 문장을 만들고 글 전체의 구조를 결정합니다. 그런데 첫 문장 따로 이어지는 글 따로 노는 경우가 많습니다. 역피라미드형 기사에서는 그 사건의 핵심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했을 때, 피라미드형 기사에서는 디테일과 공감이 빠진 겉핥기 사례일 때 첫 문장을 실패하고, 결국 전체 기사도 엉망으로 만듭니다.
오늘 이 글의 첫 문장이 이 연재꼭지의 문체를 처음으로 ‘~ㅂ니다’로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