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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한 사회와 시스템의 존속은 우연이 아니었음을

<콘크리트 유토피아>(2023)

등록일 2024년01월30일 10시41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채희숙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새해가 오면 심기일전하여 새로운 다짐을 하거나 계획을 세우곤 한다. 새해의 처음 날은 마법의 숫자가 되어 오류나 불운으로 점철된 지난 시절을 잊고 새로 시작할 희망을 불어넣어 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마법은 이내 그 효력을 다하고 만다. 그리고 익숙한 생활 리듬과 습관 속에서 지난해와 유사한 세월이 다시 쌓인다. 결국, 새로운 다짐을 실천에 옮기는 것은 과거를 지운 제로 점에 서는 것보다는, 과거를 외면하지 않고 성찰하는 용기와 이를 바탕으로 더 낫게 바꿔내려는 노력일 것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엄태화, 2023)는 재난 서사를 빌려 집에 머물 자격을 부여하는 시스템을 문제로 삼는다. 재난이라는 우연한 사건 속에 과거를 묻어버리기도 하지만, 새로 쌓아가야 할 시간을 가로막는 장벽과 관습을 고민하게도 한다. 그러하니 비록 이 영화가 해답을 완전히 주지는 않더라도,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기 위한 지혜를 이 영화와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새해에 제법 어울릴 것 같다.

 

▲ 사진 출처: KMDb

 

이 영화의 주제어는 첫째 ‘아파트’다. 여기서는 생존의 문제가 아파트를 지키는 문제, 정확히는 아파트의 소유권을 지키는 문제로 치환된다.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를 소유하는 것은 빈곤을 극복하는 지표를 넘어 일정 수준 이상의 삶의 질을 누릴 부를 축적할 가장 유력한 방법이다. 집이 삶의 기본이라는 본래 역할보다 투자 상품, 나아가 투기의 대상으로 욕망 되곤 한다. 그런데 재난으로 붕괴한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과연 유토피아를 보장할까?

 

하루아침에 영문도 모를 재난을 맞이한 황궁 아파트의 주민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아파트 밖에서 집을 잃은 사람들이 밀려든다. 황궁 아파트만 재난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홀로 우뚝 솟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어느 집주인과 무단침입한 사람 사이에 큰 싸움이 나 급기야 불이 나는데, 아파트를 지키기 위해 한걸음에 달려온 902호 영탁(이병헌 분)의 노력으로 상황이 정리되고 위기를 실감한 주민들이 주민 회의를 연다. 그 회의에서 공무원 민성(이서준 분)이 ‘시스템’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그리고 주민들은 민주주의 사회제도를 따라 주민대표를 뽑고 다수결 투표를 진행한다. 그렇게 결정된 황궁 아파트 시스템의 제1원칙은 거주의 자격을 부여하는 “아파트는 주민의 것, 주민만이 살 수 있다”이다.

 

‘바퀴벌레’라고 지칭하는 외부인으로부터 아파트를 보호하거나 바깥에서 생존 수단을 구해오는 방범대가 일종의 군대처럼 구성되고, 아파트공동체에 기여하는 정도에 따라 물자가 배급된다. 구성원의 재산을 보호하고, 적으로 상정되는 외부에 맞서 안보를 지키며, 특정 가치 기준에 따라 차등 분배가 이뤄지는 황궁 아파트는 마치 현대국가를 작고 단순하게 축소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만장일치 투표로 권력을 이양받은 주민대표 영탁의 아파트에 대한 집착은 점점 더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통치체제를 강화한다. 민성은 영탁을 대표로 한 시스템에 결탁하며 영탁에 복종하고 그를 맹신하게 된다.

 

▲ 사진 출처: KMDb
 

영화의 둘째 주제어는 ‘시스템’이다. 황궁 아파트의 문제는 재난 자체나 그로 인한 시스템의 부재가 아니라 ‘시스템의 존속’에서 발생한다. 사회가 붕괴하여 재설정이 필요한데 이전 사회의 관념으로 기존의 지배적인 시스템을 유지하려 한다. 이는 전쟁과도 같은 대립을 해소하는 데 합리적이거나 유효하지 않아 보인다. 황궁 아파트의 시스템은 적으로부터 소유공동체를 지키라는 절대명령처럼 배타적으로 작동한다. 합의로 출발한 시스템은 명령이 되어 주민들의 생활과 판단을 통제한다.

 

입주민 중 명화(박보영 분)와 도균(김도윤 분)은 이러한 아파트의 배타적 시스템에 반하여 주민이 아닌 사람들을 집에 들이고 식량과 잠자리를 제공해 큰 곤경에 처한다. 외부인을 수용했다는 죄로 고립된 도균은 마지막 남은 물을 화분에 주고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명화는 시스템의 괴물이 된 영탁을 막기 위해 시스템의 논리를 반복한다. 다른 시스템을 상상할 수 없는 이타주의는 죽음으로 향하거나 자기 논리로 서지 못하는 것이다.

 

이 영화를 평가하는 댓글에서 명화가 오히려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내용에 놀랐다. 영탁과 황궁 아파트의 행보가 납득 된다고 소회를 밝히는 내용도 볼 수 있었다. 댓글을 섣불리 해석하거나 일반화하면 안 되겠지만, 명화에 대한 반발이나 비동의 혹은 그녀를 향한 비호감 등은 명화의 이타심이 사회적 효능을 제시하지 못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사회를 재구성할 수 있는 또 다른 시스템을 제안하지 못하고 호의에만 머무는 한계에 대한 반작용일까?

 

내외부 간의 적대관계가 팽배해지며 결국 ‘디스토피아’로 판명된 황궁 아파트에서 명화는 우여곡절 끝에 그곳에서 벗어나 비로소 다른 풍경의 사회를 맞이한다. 명화는 자신이 “그냥 여기서 살아도” 되는지를 묻지만, 새로 맞이한 공간에서는 그런 자격을 물을 필요가 없고, 그녀의 손에는 이미 흰쌀밥이 쥐어져 있다. 그 밥의 의미는 명화에게서 카메라가 멀어지면서 그녀가 도착한 새로운 공간을 보여줄 때 완성된다. 끝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격을 증명하지 않아도 서로를 고려해 자신의 자리를 만들거나 주먹밥을 받으려고 줄 서 기다리는 모습을 즉, 어떤 다른 시스템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 같은 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 사진 출처: K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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