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필민 칼럼리스트
달랑 여섯 명이 일하는 주물공장 노동자 김동식. 그는 요즘 소설가라 불린다. 아니 소설가다.
김동식은 무심코 스마트폰을 통해 공포 이야기를 올리는 웹사이트를 만났다. 그곳에 올라오는 글을 읽으며 쳇바퀴 도는 노동의 지겨움을 달랬다. 공장 화장실에서 혹은 자취방 구린내 나는 이불 속에서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읽으며 노동의 피로 를 풀었다. 그러다 문득 나도 한번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공포 이야기는 나도 쓸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을 것이다. 그래서 쓴 글에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글을 읽은 이가 만 명이 넘어섰다. 누군가가 자신의 글에 관심을 갖는다는 걸 알게 되자 신이 났을 테다.
김동식은 주물공장 일이 힘들지 않다고 덤덤히 말한다. 중학교 2학년을 다니다 그만 둔 김동식은 그때부터 서른이 될 때까지 온갖 일을 하며 지냈다. 그러니 웬만한 노동은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꼈을 테고, 웬만한 사람은 하루도 견디기 힘들 주물공장 일을 힘들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 테다.
눈 뜨면 공장에 가고 해 지면 자취방에 왔다. 하루 종일 대화 한번 하지 않고 보낸 날도 있었다. 그에게 인터넷 공간은 누군가가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곳이고, 자신이 타인에게 말을 거는 장이었다. 공장과 자취방밖에 모르던 김동식에게 세상과 소통하는 공간이 열렸다.
김동식은 사흘에 한 편씩은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다. 열여덟달 동안 삼백 편이 넘는 글을 썼다. 그가 올린 글들의 조회 수는 일만오천을 넘겼다. 책을 펴내 초판 천 권을 팔지 못한 작가가 수두룩한 실정이니, 어쨌든 놀라운 수의 독자를 확보한 셈이다. 등단을 위해 대학은 물론 대학원까지 가는 요즘, 변변한 글쓰기 모임 한번 기웃거리지 않은 김동식이 올린 놀라운 일이다.
출판 일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는 이가 김동식의 능력을 가만 두지 않았다. 그의 글들을 책으로 펴내자고 했고, 2017년 12월 김동식의 작품집 세 권이 세상에 선을 보였다. 언론과 출판계에서는 그의 독특한 문장력과 플롯에 찬사를 보냈다. 물론 김동식의 남다른 이력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요즘
김동식은 독자들의 초청 모임을 찾아다니느라 바쁘다.
김동식은 특별한 작가가 아니다. 누구나 김동식처럼 될 수 있다. 남의 글을 열심히 읽으면 언젠가는 나도 비슷한 이야기 하나쯤은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때 비슷한 이야기를 실제로 쓰면 작가의 길이 열린다.
이제 길이 열렸다. 길이 열렸다고 작가가 되지는 않는다. 김동식은 사흘에 한 편씩은 쓰기로 자신과 다짐했다. 다짐에서 멈추면 열린 길은 사라진다. 하지만 꾸준히 쓰면 어느 순간 작가라고 남들이 부른다. 책을 내자고 출판사에서 연락이 온다. 작가와 만남 혹은 독자와 대화라는 자리에 주인공으로 부른다.물론 김동식의 앞에 작가로서 꽃길만이 펼쳐지지는 않을 것이다. 주물공장 일을 마치고 짬을 내서 글을 쓸 때보다 힘든 창작의 아픔을 겪을 수 있다. 자판을 두들기는 손가락이 더욱 무거워질 수도 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에게는 십대부터 몸에 익힌 노동자의 뚝심이 있을 테니.
오늘 주물공장 노동자 출신 김동식 소설가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은 까닭은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글쓰기 교육이 별 거 아니다. 많이 읽어라, 많이 써라, 많이 생각하라. 의무교육도 채 마치지 못한 김동식이 작가가 된 길이 증명하지 않았는가. 여기에 내가 특히 강조하며 덧붙이는 게 있다. ‘노동하라’다. 그냥 골방에 처박혀 작가가 되기 위해 글을 지어내려면 머리카락만 빠질 뿐이다. 김동식의 작품집을 읽으면 그의 플롯에 남다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김동식의 작품은 골방에서 얻은 것이 아니다. 그의 일터에서, 그의 노동을 통해 길어 올린 값진 성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