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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O 정신

등록일 2019년05월08일 16시23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강훈중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장(대변인)

 

국제노동기구(ILO)는 1919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설립되어 올해로 100년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국제연합(UN)이 창립되어 1946년에는 노동문제를 다루는 특별기구로 국제연합에 가입했다. ILO는 UN산하기구로는 유일하게 정부와 민간(노사)이 함께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ILO는 노동권 보호와 양질의 일자리 촉진, 사회적 보호 강화 및 노동문제 관련 대화 활성화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노동권 보호와 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6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ILO는 시기적으로 1917년 러시아혁명 직후 설립되었는데 대화를 통해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함으로써 노동자의 빈곤과 불만을 해소시키고 사회주의혁명으로부터 자본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위기감이 설립배경으로 작용했다. 


노동자의 궁핍과 배제는 평화와 자본주의를 위협한다는 인식에 따라 ILO는 노사정 3자주의, 참여와 대화, 노동자권리 보호, 양질의 일자리를 강조한다. 국제적으로 노사정 3주체가 모여 회의하는 기구인 ILO가 결사의 자유를 강조하고 이를 핵심협약으로 취급하여 각 회원국이 비준할 것을 권고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대화에 참여할 조직이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결사의 자유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ILO가 1919년 채택한 헌장에서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결사의 자유’를 강조하고, 1944년 채택한 필라델피아선언에서도 ‘표현과 결사의 자유’는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핵심이며 ILO의 기본 근간이자 원칙이라고 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ILO는 1998년 총회에서 “모든 회원국은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더라도 기본적인 권리에 대한 원칙을 ILO 헌장에 따라 성실하게 존중하고 실현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밝혔다. ILO는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 금지, 아동노동 금지, 고용상 평등과 관련되는 8개 협약을 기본협약으로 제시하고 있다. 8개 기본협약 가운데 87호 협약은 “노동자와 사용자는 어떠한 차별도 없이 사전허가 없이 자신이 선택하는 단체를 설립하고 가입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하였고, 98호는 “노동자는 고용과 관련하여 반 노동자적 차별대우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며 노동조합 탈퇴를 고용조건으로 하거나, 노동조합 가입을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 또는 불이익을 주는 ‘부당노동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노태우 정권시절인 1991년 12월 ILO 핵심협약 비준을 약속하고 제152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김영삼 정권시절인 1996년 OECD에 가입할 때와 이명박 정권시절인 2010년 한-EU FTA 체결 시에도 ILO 핵심협약 비준을 약속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7년 5월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을 약속했으니 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는 현 정부는 물론 여야 어느 정당도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ILO 회원국으로 가입한 지 어언 30년이 되었지만 결사의 자유와 강제노동 금지에 대한 기본협약(제87호, 제98호, 제29호, 제105호)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고 관련법을 개정하지 않으니 결사의 자유, 즉 노조할 권리는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으며 노동조합 조직률도 10%대로 매우 낮은 실정이다. 낮은 노동조합 조직률은 ILO가 금지옥엽처럼 여기는 노사정 3자주의와 노동조합의 대화참여를 왜곡시키고 있다. 


10% 정도의 노동자들이 사용자와 단체교섭을 통해 단체협약을 체결할 뿐이며, 사회적 대화는 정상궤도에 올라있지 않다. ILO 핵심협약 비준을 정부에 요구하면서도 정작 ILO가 추구하는 사회적 대화에는 불참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 조직이 있고, ILO 핵심협약 관련 논의가 경사노위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에서 진행되었지만 부당노동행위 처벌조항 삭제 등 ILO 정신을 훼손하면서 현행 제도개악을 주장하는 사용자측에 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ILO 핵심협약 비준과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 보장이 사용자단체가 합의해야 주어지는 게 아니라 국제노동기준과 헌법에 의해 당연히 보장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과거 정부처럼 사회적 합의와 국회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ILO 창립 100년, 한국의 ILO 가입 30년을 앞두고 정부는 마땅히 국제사회에 약속한 비준절차를 진행해야 하며 사용자단체도 결사의 자유 보장을 위한 ILO 핵심협약 비준에 협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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