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기업의 딜레마’의 교훈
하버드 경제대학원 석좌교수인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은 저서 ‘혁신기업의 딜레마’에서 세계적으로 성공한 혁신기업들이 왜 실패하는지에 대해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원인을 분석하고 해법을 제시했다. 그는 성공한 기업들은 주요 고객의 요구에 반응하며 기술을 개발하고 제품과 서비스의 질을 높여나가지만 결국은 이러한 사업패턴으로 인해 시장지배력을 상실한다고 했다.
그의 주장을 정리하면 첫째, 성공한 기업들은 꾸준히 기술혁신을 단행하며 이전보다 높은 수익을 올리지만 수익창출과 기업의 성장이 주요 고객에게 달려 있어 기존고객에 대한 의존도는 점점 높아진다. 둘째, 시장에 새로운 파괴적 기술이 등장할 경우, 이 기술은 초기에는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전망도 불투명해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셋째, 중간관리자나 직원들 또한 현재의 기술과 노하우에 익숙해져 있어 파괴적 기술 도입에 소극적이다. 넷째, 이러한 이유로 위험을 감수하며 파괴적 기술 시장에 일찍 뛰어든 소규모 기업들은 기업을 유지하며 지속적인 기술혁신을 단행한다. 다섯째, 마침내 파괴적 기술기업들은 기존 기업의 성능과 맞먹는 기술을 개발하고 그 기술의 가치를 필요로 하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다. 여섯째, 파괴적 기술은 기존 기업의 기술과 성능은 비슷하지만 단순하고 편리하고 가격이 저렴한 특징을 갖고 있다. 일곱째, 뒤늦게 기존기업들도 파괴적 기술시장에 관심을 갖고 진출을 시도하지만 이미 때가 늦었다. 여덟째, 이제 기존의 기업들은 파괴적 기술에 의해 시장지배력을 상실하고 서서히 망해간다.
혁신기업의 딜레마를 노동조합에 대비시켜보자. 주요고객은 조합원이고 기술과 제품은 노동조합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해당될 것이다. 지금 노동조합의 주요고객은 주로 대기업 정규직 조합원들이다. 300인 이상 대기업 노동자 68%가 노조에 가입한 반면 3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0.1% 만이 노조에 가입되어 있다. 정규직 비율은 90%가 넘는다. 노동조합 조합원들은 상대적으로 고용이 안정돼 있어 임금인상 욕구가 강하다. 그러다보니 노동조합의 주된 임무는 임금인상을 중심으로 한 임단투 활동이다. 그래서 조합원들의 임금수준은 높은 편이다.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이 조직 밖의 비정규직을 조직하거나 권익보호를 하는 것이 자신들의 이익과 배치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반대한다. 하지만 혁신기업들이 고객들의 반대로 파괴적 기술을 외면하다가 종말을 맞이하는 것처럼, 노동조합도 조합원의 입장만 추종하면서 조직 밖의 거대한 흐름과 요구를 외면하다가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종말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 노동조합 밖에는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청년노동자, 플랫폼노동자 등 다양한 형태의 취약한 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은 조합원보다 더 고용이 불안해 고용안정과 직업교육, 사회안전망 강화, 고충상담활동 등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파괴적 기술이 처음에는 수익성도 낮고 많은 노력이 필요하듯이 이들 미조직 노동자를 조직하는 일도 정규직 조합원에 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야 하며 그에 비해 성과는 잘 나지 않는다. 만약 혁신기업이 초기에 미래가 불투명한 파괴적 기술에 관심을 갖지 않은 것처럼 노동조합이 힘들고 고생되는 미조직노동자 조직화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이들은 결코 노동조합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며 가입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조직하지 않을 경우 이들에 대한 지원과 조직화는 이주노동자지원센터나 청년유니온, 알바노조, 시민단체 등이 수행할 것이다. 이미 이들 단체의 정치적 영향력이나 상담 및 문제해결 능력은 노동계에 버금간다.
한국노총이 미조직비정규직사업단을 꾸리고 200만 조직화를 위한 상황실을 설치한 것은 미조직노동자 조직화 전담반을 두어 조직확대사업에 집중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하지만 한국노총만의 노력으로는 안 된다. 100만 조직이 하나로 나서야 200만 조합원 시대를 다시 열수 있다. 200만 조합원은 30년 전인 1989년 한국노총 조합원 규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