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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속한 ILO 기본협약 비준의 필요성과 정부의 책무

노동기본권 실현하는 원칙의 문제 … 노사간 협상과 거래의 대상 아니다

등록일 2019년05월09일 10시45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본부 실장

 

1. ILO 기본협약과 비준의 필요성

 

2019년 4월 9일 개최된 제8차 한-EU 자유무역협정(FTA) 무역위원회가 개최되었다. 동 회의에서 세실리아 말스트롬 EU 집행위원회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한-EU FTA협정에 의거 우리정부의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핵심협약) 비준을 촉구하며 "(비준이 미뤄져) 분쟁으로 이어지면 국가 위상에 심각한 손상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노사정은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관계법 개정방향을 놓고 대립하고 있다. 노사정 사회적 대화가 지지부진해지는 동안 EU는 한국의 비준노력이 부족하다며 FTA협정에 따른 분쟁절차 돌입을 예고한 것이다. ILO 기본협약 비준 문제가 통상문제로 확산되고 있는 셈이다.  
 

EU가 한국정부의 ILO 핵심협약 불이행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은 노동문제에 있어 반인권적 국가라고 문제를 삼은 것이나 다름 아니다. 왜냐하면 ILO 제87호, 제98호(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협약), 제29호, 제105호(강제노동협약)은 국제법상 기본적 인권에 관한 협약이기 때문이다. ILO는 1998년 총회에서 「노동의 권리 및 기본원칙에 관한 선언」을 채택, 결사의 자유에 관한 협약을 비롯하여 8개의 협약을 모든 회원국이 존중하고 촉진 및 실현해야 하는 핵심협약으로 선언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ILO의 152번째 회원국으로 가입(1991년)했으나 ILO 기본협약 8개 중 차별금지(제100호, 제111호) 및 아동노동 금지협약(제138호, 182호)은 비준했으나, 결사의 자유에 관한 협약(제87호, 제98호), 강제노동금지 협약(제29호, 제105호)을 비준하지 않은 상황이다. OECD 회원국 중 제87호(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협약), 제98호(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협약)를 모두 비준하지 않은 국가는 한국과 미국, 두 나라 뿐이다. 
 

우리 정부는 1991년 ILO 가입 당시에도, 1996년 OECD 회원국이 되면서도, 2006∼2008년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에 출마할 때에도 조속한 시일 내에 ILO 결사의 자유 협약(제87호·제98호 협약) 등 기본협약을 비준하겠다고 국제사회에 수차례 약속하였다. 문재인 정부도 대선공약 및 2017년 7월 발표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도 2019년까지 ILO 기본협약의 비준을 공언하였다. 특히 ILO와 EU측에 대하여 사회적 대화를 거쳐 노조법 개정(선입법)과 협약 비준(후비준)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ILO 기본협약 비준은 국제사회에 대한 우리 정부의 약속과 미비준에 따른 무역 분쟁 가능성을 넘어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첫째, 한국정부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ILO 핵심협약 비준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것은 대한민국의 국격, 신뢰와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둘째, 특히 결사의 자유 관련 협약인 제87호 협약과 제98호 협약은 노동현장에서의 시민권적 자유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단결권과 결사의 자유보장은 협약 비준문제와 관계없이 노동현장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가진 노동자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이다. 


셋째, ILO 기본협약의 비준은 노사관계에 있어서 존중되어야 할 기본원칙인 단결권 보장을 통한 노사 힘의 균형과 정부 간섭을 배제한 노사자치주의를 제도적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노사단체의 설립과 운영 및 활동에 대해 정부의 어떠한 형태나 내용의 개입과 간섭이 배제되어야 한다는 보편적 국제기준을 국내외적으로 공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2. ILO 기본협약 관련 현행 노동법 문제 및 사회적 논의의 문제

 

1) ILO 결사의 협약 관련 우리 노동법의 문제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는 1995년 12월 14일, 우리 노동법 관련 첫 진정사건에 관한 권고 이후 20년 넘도록 한국의 노동관계법 제반 문제의 개선을 거듭 촉구하고 있다. 지금까지 ILO 기본협약과 결사의 자유위원회에 권고에 비추어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노동법의 개선 과제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군인과 경찰을 제외한 소방관, 교도관, 근로감독관, 5급 이상 공무원 등 공무원과 대학교수 등의 단결권 부정,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입법적 개입) 및 형사처벌 문제, 해고노동자와 실업자의 단결권 제한, 복수노조 설립의 제한, 단체교섭의 대상 및 쟁의행위 목적의 정당성에 관한 협소한 해석(경제ㆍ사회정책적 관심사와 관련된 파업에 참여할 권리 제한), 필수공익사업의 범위와 파업권 제한, 노조활동ㆍ쟁의행위에 대한 형법상 업무방해죄의 적용 및 조합원에 대한 구금과 구속ㆍ형사처벌 그리고 손해배상청구를 통한 결사의 자유 침해, 공무원과 교원의 파업권 침해(필수서비스 업무에 대한 예외 인정),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실효성 있고 예방적인 조치의 부재, 하청/파견노동자와 특수고용노동자(건설일용노동자, 트럭기사 등 자영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의 단결권 보장 및 단체교섭권의 보장 문제가 그것이다. 


특히 결사의 자유위원회는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와 그 위반에 대한 처벌규정 관련해서 정부에 의한 유급전임자 수 제한(타임오프) 등에 대한 입법적 개입 철폐를 지속적으로 지적해왔으며, 2010년 노조법 개정과 한국의 노사관계 제도의 특성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 및 처벌 제도의 폐지’에 대하여 가까운 장래에 조치를 취할 것을 강도 높게 권고하고 있다. 
 

이에 ILO 제87호 및 제98호 협약 비준과 함께 ▲노조할 권리보장을 위한 노동자 및 사용자 정의개정, ▲실업자, 해고자 등 노조가입 제한 및 노조임원 자격제한 조항 개정, ▲노동조합 설립신고서 반려 조항과 노동조합 명칭 사용 제한 조항의 삭제,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 개선, ▲공무원·교원의 단결권 보장 확대, ▲쟁의행위관련 노조법상 형사처벌 제도 및 업무방해죄 적용문제 개선,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 침해 해소 등에 대해서 입법 및 제도개선이 추진되어야 한다. 한편, 시행령 개정 등 법 개정 이전이라도 가능한 정부차원의 개선조치(법외노조 통보처분, 단체협약 시정명령, 노조규약-결의나 처분에 대한 행정관청 시정명령 조치중단 등)는 우선적으로 실시되어야 한다. 

 

2) ILO 기본협약 비준관련 논의경과 및 공익위원 의견의 문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는 2018년 7월 20일부터 ‘ILO 기본협약 비준에 필요한 입법과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해왔다. 위원회는 우선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장에 관한 협약(ILO 제87호, 제98호) 비준하기 위한 제도개선 과제를 논의해왔다. 동 위원회는 이와 같은 논의는 노사정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으나 지난 2018. 11. 20. 1차 단결권 보장관련 공익위원 의견이 발표되었다. 
 

이후 위원회는 단체교섭 및 쟁의행위 관련 논의를 거쳐 단결권 보장관련 사항 등을 포함한 일괄적인 합의를 모색하였고, 노사정 고위급 협상까지 진행하였으나 결국 의견접근에 실패하였다. 합의실패의 원인은 재계가 ▲쟁의행위시 대체근로 전면허용 ▲부당노동행위 관련 벌칙제도 폐지 등 등 노조의 파업권 및 단체교섭권을 무력화 시키려는 요구사항을 비준의 조건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지난 4월 15일,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의 공익위원들은 ILO 기본협약 비준의 시급성을 감안하여 주요 제도개선 쟁점에 관한 최종적인 공익의견을 아래와 같이 제시하였다. 

 


 

공익안의 내용은 노사의 입장을 균형 있게 반영한 합리적인 내용이라고 자평하고 있지만, 국제노동기준 비준과 관련이 없는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파업시 직장점거 금지’ 등 사용자단체의 요구사항을 일부 수용한 것은 명백히 현 제도를 후퇴시키는 내용이다. 또한 “기업 내 조합활동이 기업의 효율적인 운영을 저해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 등이 모색”한다는 명목 하에 해고자 등 비종업원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조직된 노조의 임원, 대의원으로 선출될 수 없는 등 조합원으로서 실질적 권한도 제한되도록 하였다. 또한 공익안은 노조전임자 임금지급과 관련한 입법적 개입을 배제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근로시간면제 한도를 초과하는 내용의 노사합의는 이를 무효로 하는 한편, 이에 대한 부당노동행위 처벌규정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ILO 기본협약과 결사의 자유위원회에 권고에 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3. 맺으며

 

한국노총은 ILO 핵심협약 비준과 이를 위반한 잘못된 법·제도를 개선하는 것은 우리 헌법에도 보장된 노동기본권을 제대로 실현하는 원칙의 문제이지, 노사간 협상과 거래의 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해왔다.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노조법 개정방향은 ILO결사의 자유협약(제87호, 제98호 협약)과 결사의 자유위원회 권고에 합당한 내용이 되어야 마땅하다.  
 

ILO 기본협약 비준 및 노조법 개정에 관한 사회적 합의는 재계의 억지주장과 반대로 실현되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는 더 이상 노사정 합의가 전제되어야 입법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그 역할을 방기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ILO 협약 비준에 필요한 행정부 내 절차를 진행하고, ILO 기본협약 비준동의안 및 정부의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등 선행조치를 취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선입법을 위하여 노사정 합의가 필요하다는 미명하에 기본협약 비준과 관계없는 사용자단체의 노동법 개악기도에 호응할 경우, ILO 기본협약을 비준하려다가 노동기본권을 오히려 후퇴시켰다는 국제적 망신에 직면할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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