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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3·1운동은 가능할까?

등록일 2019년06월11일 16시49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김보헌 3·1운동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사무처장

 



한국사회는 독립운동의 역사마저 이념의 잣대로 재단하고 왜곡해 왔음을 지적한 바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가까운 예로는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반민특위를 시비 걸다가 욕을 먹자 다시 김원봉을 걸고넘어진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이 지배적인 세상에서는 무엇을 판단할 때 객관성이나 과학성 따위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박근혜 정권 당시 정부가 역사학계의 입장을 깡그리 무시하고 국정교과서 재도입과 위안부 합의를 시도했던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른바 건국절 논란이 기승을 부렸던 것도 그 즈음이었을 것이다. 

 

사실 이념갈등이란 게 자신이 어떤 사회계급에 속해있느냐에 따른 것이라면 그나마 이해가 되지만 모두 알다시피 우리사회에서는 계급계층이 아니라 지역과 세대의 차이가 이념의 차이로 이어지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래서 더더욱 사실과 논리가 아닌 감정과 주장이 앞서는 모양이다. 

 

이러한 왜곡이 빼앗아가는 것은 과학이나 진실 뿐 아니다. 바로 소통과 공감이다.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공격과 조롱이 대표적인 예다. 헝가리 다뉴브 강 참사에서도 네이버 같은 데서는 희생자에 대한 애도와 신속한 구조작업이 아니라 세월호 참사를 빗댄 댓글이 넘쳐났다. 5·18 광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내 편이 아니면 죽어도 마땅하고, 내 편이면 모든 것이 합리화된다.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함께 나누는 최소한의 인간적 소양과 도리마저 사라졌다. 지금 한국사회의 가장 큰 병은 이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100년 전 3·1운동을 다시 생각한다. 당시 조선의 명망 있는 지도자들은 모두 죽거나 해외로 망명한 상태였고, 국내에 있던 인물들은 변절자가 많았다(한때 독립운동을 했다는 윤치호 같은 인물은 3·1운동 참여를 거부했다). 민족대표 33인이 전원 종교 지도자로 구성된 이유다.

 

지금으로 봐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데 기독교(개신교), 불교, 천도교의 지도자들이 목숨을 건 거사에 함께 나섰다. 당시 압도적인 조직과 자금을 갖고 있던 천도교 측이 혼자가 아닌 함께 하는 투쟁을 택하고 손을 내밀었다. 이승훈, 길선주, 이필주 선생 등 기독교 지도자들은 ‘이단’ 어쩌고 하는 교계 내부의 반발을 무릅쓰고 그 손을 맞잡았다. 용성스님과 만해스님도 마찬가지다. 

 

3·1운동이 단순히 지나간 100년이 아닌 한국사회의 ‘미래 100년’을 밝혀줄 등불이 될 수 있다는 이유가 여기 있다. 3·1운동 당시 선열들이 보여준 종교간 연대 “다 함께”의 3·1정신은 바로 지금, 소통과 공감이라는 한국사회의 과제와 연결돼 있다. 

 

얼마 전 천도교, 기독교, 불교 등 종교인들이 힘을 모아 ‘3·1운동 100주년 기념비’를 함께 건립하기로 했다는 소식은 그래서 반갑다. 기념비를 세울 곳이 100년 전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을 낭독했던 옛 태화관 자리인 것도 뜻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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