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Me Too)운동에 대한 몇 가지 짧은 생각
성폭력 및 성희롱 사건 피해자들의 폭로 운동인 ‘미투’(Me Too movement)가 한국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미투’(#MeToo)라는 이름의 성폭력 고발 해시태그 운동이 세상에 처음 나타난 것은 2017년 10월 미국에서다.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문을 할리우드 여배우들이 잇따라 폭로하면서 시작된 이 운동은 불과 반년의 시간 만에 세상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꿔놓고 있다.
태평양 건너 한국에 상륙한 것은 2018년 1월말. 현직 여검사가 검찰 내 성폭력을 고발하면서 시작된 ‘미투’는 그야말로 폭풍처럼 한국사회를 휩쓸고 있다. 매년 노벨상 후보로 거론됐던 민족시인에 이어 ‘문화게릴라’의 원조였던 연극 연출가, 레전드급 극작가, 존경받던 만화가, 유명배우, 대학교수들에 이어 차기 대통령이 유력했던 대선후보까지… 줄줄이 그 추악한 민낯을 햇빛 아래 드러냈다. ‘미투’에 대한 대통령의 지지선언이 있었고, 격랑의 소용돌이 속에 유명배우와 대학교수가 자살했고, 새 정부 첫 특별사면 수혜자 중 단 한 명의 정치인이었던 어떤 인사는 복권 3개월 만에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뻔뻔스런 진실공방의 끝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언론보도로 접하면서 나는 몇 가지 짧은 생각들이 계속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느꼈을 평범하고 상식적인 소회들이다.
첫째는 그 광범위함에 대한 놀라움이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상상도 못했던 인물들이 날마다 등장했고 알려진 것과는 전혀 다른 그들의 맨얼굴을 보아야 했다. 수십 년 간 은폐돼온 성범죄의 넓고 깊고 촘촘한 뿌리들. 참으로 많은 한국남성이 그 실뿌리와 어떤 식으로든 맞닿은 상태로 범죄행위에 가담했거나 용인했거나 침묵해왔다.
둘째는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행동에 대한 감사함이다. 수많은 피해자들이 “나도 고발한다(Me Too)”를 외치지 않았더라면 결코 찾아오지 않았을, 건강하고 위대한 변화의 시작을 우리는 지금 보고 있다.
그리고 87년 6월 항쟁이 80년대 초중반 노동자와 학생들의 처절하고 끈질긴 투쟁에서 준비되었던 것처럼 ‘미투’ 또한 타라나 버크와 알리사 밀라노, ‘미투’에 앞서 직장 성폭력을 고발한 한국의 청소노동자들과 같은 수많은 선각자와 피해자들의 행동이 만든 결과다.
얼마나 다행인가! 대선 유력후보라는 자의 실상을 이제라도 알게 된 것이. 그런 자가 대통령이라도 되었다면 어찌 했을 것인가?
셋째 지금까지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방송가와 연예계는 물론 대학(원)사회, 민간기업 등에서 자행되고 은폐된 범죄행위는 지금까지 드러난 사례들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파렴치할 것이다. ‘미투’ 운동이 중단 없이 이어져야 할 이유다.
나아가 성범죄 뿐 아니라 약자에 대한 모든 폭력과 억압이 완전히 사라지는 세상을 위한 더 다양한 행동들이 봄날의 백가지 꽃처럼 피어나길 기대한다.
김보헌 前 노동자신문, 노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