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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인가, 3·1혁명인가?

등록일 2019년03월06일 14시56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김보헌(3·1운동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사무처장)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지난해부터 ‘3·1운동’을 ‘3·1혁명’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꽤 많이 나왔다. 그리고 상당한 반향을 얻고 있다. 


얼핏 생각해도 ‘캠페인과 같은 지속적인 활동’을 떠올리게 하는 ‘운동’이란 말은 3·1혁명의 거대한 의의와 폭발적인 전개양상과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처음부터 독립운동 진영에서는 ‘3·1혁명’이란 말이 폭넓게 쓰였다. 특히 중일전쟁이 발발한 1937년 이후로는 더욱 그랬다. 어떤 면에서든 프랑스대혁명이나 미국 독립전쟁에 비해 결코 손색없는 혁명적 사건이라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다. 
 

1938년 임시정부 주관 3·1절 기념식, 같은 해 4월 ‘조선민족전선’ 창간호 기사, 1943년 6월 ‘獨立新聞’ 창간호, 1944년 대한민국 임시헌장 서문 등에서 모두 ‘3·1 대혁명’이란 표현을 썼다. 1941년 2월 광복군 기관지 창간호는 ‘1919년의 전민(全民) 대혁명’으로 규정했다(2019년 2월 24일 ‘3·1운동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주관 3·1운동 100주년 천도교 학술대회, 윤경로 교수 기조강연).
 

1948년 제헌헌법 초안도 ‘3·1혁명의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라고 돼 있었다. 그런데 국회 본회의에서 조국현, 이승만 두 인물의 주도로 뒤집히고 만다. 결국 ‘3·1혁명’ 대신 ‘3·1운동’이 들어갔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아무래도 3·1혁명이 옳다. 지배계급과 사회체제의 변동을 전제한다는 ‘혁명’의 사전적 정의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실제 혁명이란 용어는 이보다 훨씬 폭넓게 쓰인다). 3·1혁명의 ‘혼’이 담긴 독립선언서의 핵심정신이 ‘인류공영’과 함께 ‘주권재민’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사에서 왕정이 아닌 민주공화정의 첫 시작을 3·1혁명에 두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독립선언서의 첫 문장은 조선인이 자주민(自主民)임을 당당히 선언하고 있다. 왕과 주인에 종속된 존재가 아닌 스스로 주인인 사람, 즉 근대적 시민이 첫 등장한 것이다. 독립선언서 곳곳이 자유, 평등, 평화의 메시지로 가득 찬 것도 같은 맥락이다. 3·1혁명은 프랑스대혁명과 같은 부르주아 혁명, 근대 시민혁명인 것이다. 중국이 신해혁명을 혁명이라 불러왔음을 생각하면 3·1혁명은 당연히 혁명으로 불려야 한다. 혁명이냐 아니냐의 구분은 그것이 지향한 가치와 비전에 있을 뿐 성공여부나 부수적인 조건들에 있는 것은 아니다.


3·1운동의 새로운 100년은 ‘3·1혁명’을 되찾는 데서 시작된다면 지나친 얘기일까? 

 

김보헌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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