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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 모두 다 함께!

100년 전 3.1운동이 남긴 지금의 과제(1)

등록일 2019년01월10일 09시22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김보헌 前 노동자신문·노동일보 기자

 

2019년, 3.1운동 100주년 새해가 밝았다. 100주년의 3.1운동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그리고 3.1운동 100주년이 우리에게 부여하는 과제는 무엇인가? 이런 문제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100년 전의 3.1운동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펼쳐졌는가를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모습과 과제를 다루고자 한다. 

 

100년전 3.1운동이 보여줬던 모습은 첫번째, ‘모두 함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 태화관에서 시작된 3.1운동의 첫 파고는 바로 옆 탑골공원과 종각으로 전해졌다가 거의 동시에 전국 7개 도시에서 불타올랐다(1919년 3월 항쟁 첫날 만세시위가 벌어진 전국 7개 도시 중 6개 도시가 지금의 북한지역에 있다. 3.1운동을 주도했던 천도교와 기독교(개신교)의 당시 세력분포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3월 초순 거대한 불꽃과 같은 만세항쟁에 직면한 일제는 서울시내 각 학교에 휴교령을 내렸고 이는 곧 전국적인 항쟁 확산의 기폭제가 된다. 고향에 돌아간 학생들을 통해 소식을 접한 전국 각 지역의 학교와 교회를 중심으로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태극기를 제작하여 만세항쟁에 나섰기 때문이다. 

 

한일병탄 10년의 세월 이전부터 갑오년 민중 대학살과 청일전쟁, 민비시해, 을사늑약, 정미조약(군대해산), 의병 학살 등 최소 30여 년의 외세 침탈 과정을 거치면서 눈알과 혀가 뽑히고 손발이 잘린 처지였던 조선민중들의 항쟁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졌다(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한다며 거창한 위원회를 만들고 생색을 내는 정부가 당시 3.1운동의 기본적인 팩트마저 재조사를 않는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지만 당시 비폭력 평화시위였음에도 최소 7,00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처럼 종교 지도자들과 학생들로부터 시작된 만세항쟁이 순식간에 한반도 전역을 뒤덮은 것과 함께 우리는 민족대표 33인의 구성에서부터 ‘모두 다함께’의 정신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민족대표 33인은 천도교 15인, 개신교 16인, 불교 2인으로 구성되었고 종교계 지도자들이 민족대표가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과 그 의의에 대해서는 지난 호 칼럼에서 간단히 확인한 바 있다. 지금 상황으로 보면 절대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은 다른 종단의 지도자들이 단지 3.1운동이라는 하나의 목표 아래 서로간의 모든 차이를 내려놓고 함께 손을 잡고 생사를 같이 하기로 결단했었다. 

 

단적으로 말해 지금 우리 사회의 리더십 그룹이 3.1운동 100주년을 함께 기념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만으로 당시 선조들의 ‘모두 다 함께’라는 결단이 얼마나 위대한 것이었는가를 짐작하기에 충분하다고 하겠다. 지금의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일러주는 현실이다. 

 

※ 다음 호에서는 3.1운동이 남긴 두 번째 과제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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