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헌(前 노동자신문·노동일보 기자)
조국이 법무장관이 되면 사법개혁이 된다? 나는 큰 기대는 않는 편이다. 사법개혁이 법무장관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특히 국회가 저 모양인데 뭐가 되겠나 싶다. 자유한국당은 말할 필요도 없고, 내가 보기에는 민주당부터 의지가 없다.
사법개혁뿐 아니라 ‘개혁’이란 이름이 들어간 것 대개가 그렇다. 집권 3년이 됐는데, 하고 싶다면 시늉이라도 했겠지. 내 생각에 이 정권이 그래도 잘하는 건 ‘안보’이고, 제일 못하는 건 ‘개혁’이다. (태극기 들고 문재인 정부 반대투쟁 한다는 게 세상에 다시 없을 코미디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이른바 ‘조국 논란’에 큰 관심이 없었다. ‘조국 법무장관 임명’이 그리 큰 과제라고 생각한 적도 없거니와, 입시제도에 워낙 무식해서다. 하지만 편싸움이 갈수록 거세지다 보니 이래저래 마음도 불편하고, 내 스스로 한 번은 정리는 해야 할 것 같다.
정의당 성명대로 법제도 이전에 정서의 문제인 건 맞다. 하지만 대다수 언론이 조국 교수나 그 딸이 마치 법을 위반한 것처럼, 심지어 그 이상의 문제인 것처럼 몰고 가는 게 내 눈에도 훤하게 보인다. 그래서 수백만의 사람들이 서로 싸우고 있지만 정작 그 대상은 상대방이나 문제 자체가 아니라 자신들이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허상과 싸우고 있다.
마치 조국 딸이 공부를 못했던 것처럼, 그래서 고대 갈 실력이 안됐던 것처럼, 쳐야 할 시험을 5개나 모두 안 쳤던 것처럼, 유급하고 받은 장학금이 마치 학교에서 준 장학금인 것처럼, 학위논문에 고등학생이 제1저자로 등록했던 것처럼, 심지어 교신저자였던 것처럼, 무엇보다 그 아버지가 민정수석 때 일어난 일인 것처럼….
마치 이런 것들이 사실로서 전제된 것처럼 모든 언론이 제목을 뽑았고,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금도 이렇게 알고 있다. 이는 이른바 전문가나 명망가들도 마찬가지다.
위에서 예로 든 저런 전제들이 모두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도 일반시민이나 학생들 사이에 ‘조국은 절대 안 된다’는 여론이 이렇게 드셀까? 아니라면, 모든 쟁점의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는 것에서 이번 사태의 해법이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여야 정치권이 지금 당장 정쟁을 중단하고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청문회를 열어야 할 이유다. 조국이 어떤 사람인지, 법무장관에 적합한지는 그 다음에 판단할 수 있는 문제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든 몇 가지 생각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학벌이 곧 신분이 되고, 사실상 인생 전부를 결정짓는 한국의 입시, 교육제도를 개혁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최근 내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한국사회의 가장 큰 두 가지 문제, 자살이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이번 조국 논란, 이 두 가지 병증의 한 가지 원인이 바로 이 문제다.
학력격차가 곧 신분격차가 되는데, 학력격차는 부모의 신분이 결정한다. 조국 편에 선 사람이든 반대편에 선 사람이든 사실은 각자 이 문제 위에 발 딛고 서서 서로를 공격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해관계가 같은 것이다. 정치권에 속지만 않는다면.
둘째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 ‘좌-우파 구분’이 이제 국민적 상식(?)이 됐다는 것, 셋째 세대갈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 등이다. 이런 문제들은 나중에 따로 얘기할 문제인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을 확인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이제는 청문회가 열려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