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상화폐를 둘러싼 한국사회의 혼란은 4차 산업혁명이 불러올 가까운 미래의 우리 모습과 같다.
‘신기술’ 블록체인이 환기하는 가상의 미래는 대단히 아름답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일확천금을 노린 투전판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술적인 한계는 시간이 가면 해결되겠지만 사람들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인생 한방’을 노리는 사람들로 투전판은 언제나 만원이다. 어제는 부동산과 주식이었다면 오늘은 가상화폐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사람들의 생활은 분명 나아졌지만 사람들이 더 행복해진 것 같지는 않다. 이제는 평균적인 월급쟁이 벌이로는 서울에 집을 살 수도, 아이들을 좋은(?) 대학에 보낼 수도 없다. 그나마 ‘평균적인 월급쟁이’마저도 이번 생에는 불가능한 꿈으로 여기는 젊은이들이 너무나 많다.
이런 상황에 개의치 않고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은 바로 우리 문 앞에까지 밀어닥쳐 있다. 어느 날 아침 문을 열자마자 순식간에 집 안으로 밀려들 것이다. 인공지능과 자율주행차, 무인마트 등은 이미 빠르게 현실이 되고 있다. 나노센서와 사물인터넷, 블록체인, 디지털화폐, 5G혁명, 유전자가위, 3D장기프린팅, ESS 등등 셀 수도 없는 신기술이 세계 곳곳에서 연구 개발 상용화되고 있으며 이러한 기술변화로 예측되는 사회 제도의 변화 또한 가늠키 어렵다.
변화될 미래에 대해서는 낙관과 비관이 함께 존재한다. 분명한 것은 실업률은 계속 높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운전업종 종사자나 텔레마케터, 캐셔 등과 같은 저임금 일자리 뿐 아니라 의사와 변호사, 공인중개사 등도 대부분의 업무가 컴퓨터나 로봇, 인터넷으로 대체될 것이다. 특정업종을 거론할 것 없이 지금 사람이 하고 있는 거의 모든 일이 해당된다.
반면 기술발달로 사람들에게 필요한 서비스 즉 의료, 주거, 교육, 교통, 에너지 등 모든 분야의 가격이 제로에 가깝게 수렴될 수 있다. 에어비앤비나 우버택시와 같이 새로운 사업 기회 또한 무한대로 확대된다. 긍정적 전망들이 모두 실현된다면 신기술이 가져올 신세계는 모두에게 더 큰 이익이 된다. 이론상으로 더 적게 일하고, 더 많이 하고 싶은 것을 즐기면서 살아가는 삶이 보편화될 수 있다. 아직은 논란이 있지만 기본소득제도를 채택하는 나라들이 늘 것이다. 오래전부터 꿈꾸었던 이상향에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근접해 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천당 가까이에 지옥도 있다는 점이다. 기술발달이 전지구적인 노동시간 단축과 진정한 경제민주화, 보편적인 삶의 질 향상으로 나타나느냐, 새로운 독점으로 귀결되느냐의 갈림길이다. 무엇을 위한 혁신인가, 누구를 위한 기술진보인가, 라는 문제의식이 기준점이다.
저절로 천국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자본이 아닌 ‘사람들’의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투전판의 노예가 아닌 새로운 시민혁명을 주도할 평범한 사람들의 네트워크. 지금까지 큰 역할을 했던 정당이나 노동조합, 시민단체들은 이제는 신뢰의 위기에 처해있다(특히 한국의 노동조합은 대기업 노조로 과잉대표되는 틀을 깨지 않으면 계속 약화될 수밖에 없다). 4차 산업혁명의 기회와 위기에 대응할 새로운 네트워크,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보헌(前 노동자신문·노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