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실장
귀를 의심했다. 어렵사리 개원한 임시국회 홍영표 여당 원내대표의 연설을 듣고 있었다. 사회불평등과 양극화를 해소하고, 제조업 르네상스 전략을 더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이어졌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 흘러나왔다. 노동시장 양극화문제였다.
홍 원내대표는 대기업 정규직 평균임금은 400만 원,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151만 원. 대기업‧공공부문 정규직 중심의 1차 노동시장 500만 명, 중소기업‧비정규직 중심의 2차 노동시장 1,500만 명이라고 했다.
연설만 들으면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좀 세분화 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통계청의 종사자규모 및 고용형태별 임금현황에 따르면 대기업 정규직 평균임금은 398만 원, 중소기업 정규직은 264만 원, 대기업 비정규직은 258만 원,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152만 원이다. 중소기업 정규직과 대기업 비정규직 임금은 비슷한 수준이고, 151만 원을 받는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전체 노동시장의 약 30%를 차지한다. 이 30%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심각한 중소기업 비정규직 임금을 올리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홍 원내대표는 “먼저 대기업‧공공부문 노조가 3년 내지 5년간 임금인상을 자제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부터 의문이다. 대기업 노동자들의 월평균 임금 398만 원이 그렇게 많은가? 이 정부가 적극 추진한 광주형 일자리 월평균임금이 290만 원에 주거복지 지원을 해주는 조건이다. 복지혜택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월평균임금은 대략 350만 원 전후가 될 것이다. 별 차이도 없다.
중소기업 비정규직 소득을 올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노동계가 입이 닳도록 얘기한 ‘최저임금 인상’이다. 중소기업이 최저임금 인상을 감당하지 못한다고? 중소기업이 감당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기업이 독점적 시장지위를 이용한 불공정 거래로 중소기업의 낮은 이익률 때문이라고 ‘한국은행 보고서’(전병유 외)에 나와 있다. 한국은행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정책대응’이라는 보고서에서 해법도 내놓았는데, 바로 열악한 위치에 있는 중소기업의 교섭력을 높여주는 것이 일차적 과제라고 했다.
그러면 혹자는 얘기 할 것이다. 현대차와 같은 대기업의 강성노조 때문에 못하는 거라고. 우리나라에 현대차만 있나? 가장 큰 무노조 삼성과 비교적 온건노조로 분류되는 LG, SK, 한진 등과 거래하는 하청업체들의 처지는 뭐가 그리 다른가? 이래도 강성노조 때문인가?
한국은행 보고서는 또 다른 해법으로 ‘기업 상위의 산별교섭과 단체협약 적용 확대를 고려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바로 그것이다. 대기업의 임금인상을 자제하도록 호소 할 것이 아니라 산별교섭을 확대하고, 단협 적용률을 높이는 노동정책을 펼쳐야 한다. 그런데, 여전히 산별노조 법제화나 단협 적용 확대에 대해선 침묵하고, 보수정권과 똑같이 대기업 노조 탓이나 하고 있으니, 국민들이 촛불혁명으로 바뀐 게 무엇이냐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더 식상한 건 ‘유연안전성’이다. 유연안전성은 노무현 정부 때부터 시작해,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쳐 어찌 이 정부에서까지 살아남는지 모르겠다. 덴마크 예를 들며 사회안전망 확대를 전제하긴 했지만, 홍 원내대표는 노동유연성 확대에 어떤 신념을 가진 듯 했다. 그러나 이미 한국의 노동유연성은 OECD국가 중 낮은 편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노동시장 유연성 지표로 많이 활용되는 OECD 고용보호지수는 한국이 덴마크보다 낮다. 한국 노동시장이 덴마크 보다 더 유연하다는 얘기다.
다시 노동시장 양극화 문제로 돌아가서, 이 문제는 세계화와 글로벌 경쟁 심화에 따른 것으로 전 세계적인 것이다. 그 해결책으로 OECD가 노동유연성 확대를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노동유연성 중심의 기존 노동정책이 전 세계적 차원과 개별 국가 차원의 불평등 문제를 초래했다며, 2018년 8월 발표한 ‘새로운 고용전략’에서는 일자리의 질과 포용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유연성확대로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는 홍영표 대표의 전략은 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