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실장
“우리 회사는 초봉이 4천이 넘어요”
한 5년 전 쯤 대구에 있는 한 금속사업장에 갔을 때 노조위원장님이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일반 사업장이랑 비교하기는 좀 그렇지만 내가 노총에서 일한지 십년이 넘을 때였는데 그때 내 연봉이 4천에 한참 못 미치던 수준이라 초봉이 그렇게 많다는 것은 내게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 연봉의 속사정을 아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업장 실태조사를 하는데 주당 노동시간이 60시간 정도 되었다. 주중 52시간을 풀로 채우고 토요일에도 8시간 일했다. 그나마 주에 하루 쉬기는 했다. 그렇게 받는 돈이 월 350만원 정도였던 것이다.
그때 나는 초등학생 아이 두 명을 키울 때였다. 일·가정양립에 누구보다 관심이 많았다. 그 사업장에서 일하는 30대 초반정도 남성의 가정을 생각해봤다. 공장이 시내에서 한 시간정도는 떨어진 위치라 적어도 7시에는 출근해야 할 것이고, 하루에 적어도 10시간 일하려면 점심시간과 휴식시간을 빼면 빨라도 오후 8시나 돼야 퇴근할 것이고, 집에 가면 9시가 넘겠구나. 혹시 아이라도 있으면 남편이 아이를 챙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할 것이고, 그 아내는 혼자 독박육아를 하고 있겠구나.
얼마 전, 전경련 주최로 폴 크루그먼 교수 특별 대담이 열렸다. 크루그먼 교수는 미국 경제학자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바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사회자유주의 또는 진보주의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처음 전경련이 크루그먼 교수와 특별대담을 진행한다고 들었을 때, 정권이 교체되니 전경련 초청인사도 달라지는구나 생각이 들었었다. 그러나 사람도 그렇지만 조직도 그 생리를 한 번에 바꾸기는 힘든 법. 전경련은 그 대단한 폴 크루그먼 교수를 불러다 놓고 국제 망신을 시켰다.
문제의 사건은 전경련 권태신 상근부회장 사회로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과 크루그먼 교수의 대담에서 발생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양극화, 빈곤의 덫 해법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크루그먼 교수의 주제 강연이 끝나고 이어진 대담에서 권태신 부회장이 특별대담 주제인 양극화나 빈곤해소에 관한 질문보다는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등 한국정부의 노동정책을 꼬집는 질문을 이어갔다고 한다. 그러던 중에 권 부회장이 “정부가 일률적으로 주당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했다”며 크루그먼 교수의 의견을 물었는데 크루그먼 교수는 깜짝 놀라며 “52시간이라고요? 한국도 선진국인데, 그렇게 많이 일한다니요.”라고 말하고 “노동시간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서 좀 더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어떻게 그렇게 오래 일하는지 알 수 없다. 52시간으로 줄여도 여전히 높은 것 같다.” “한국의 노동조건에 대해 정말 깜짝 놀랄만한 정보를 얻게 됐다.”는 말도 덧붙였다고 한다. 아. 부끄러움은 왜 우리의 몫일까...
특별대담에서 이런 일이 있었지만 보수신문과 경제지들은 하나같이 ‘최저임금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말만 그것도 전체 맥락은 뺀 채 보도했다. 그리고 7월 1일 노동시간 단축이 시행되자 탄력근로제 확대를 주장하는 재계의 주장을 충실하게 보도하고 있다. 그 보도를 접한 정부관계자와 정치인들은 그 부분을 해결해야 한다며 입법을 준비할 모양새다. 이 지긋지긋한 언론과 자본의 유착을 언제쯤 끊을 수 있을까? 아니 끊을 수 있긴 한 걸까?
미우나 고우나 진보언론이 필요한 이유다. 한겨레가 이번에 한 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