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실장
사립유치원 비리문제로 시끌시끌하다. 언론들도 앞 다투어 돌봄 시설 비리를 캐어내고, 보도하기 바쁘다. 그 중 단연 으뜸은 경기도 동탄의 ‘환희 유치원’ 사건이다. 이 유치원 원장은 총 6억8천여만 원의 교비를 부정 사용했다. 원장은 교비로 루이비통 가방을 사고, 노래방, 미용실 등은 물론 아파트 관리비 등에 사용했고, 아들은 유치원 체크카드로 성인용품점에서 물품을 구입하기도 했다. 또한 이 원장은 2년간 4억여 원을 월급과 수당으로 받았다. 세상 참 불공평하다. 돌봄 노동자가 유치원에서 뼈 빠지게 일해서 버는 돈은 월 180만 원 정도다. 그런데 그 시설장은 1년에 2억 원을 받아간다.
10여 년 전 쯤 보육정책을 담당하던 때였다. 민주당의 한 국회의원이 보육시설 종사자의 장시간 노동을 줄이기 위해 표준 보육시간을 줄이겠다는 내용의 입법발의를 했다. 그럴싸해보였다. 관련 토론회 참석요청을 받았다. 여성노동자의 노동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한 부서에서 일했던 내가 이 법안에 찬성했을까? 아니다. 반대했다. 보육교사들의 장시간 노동을 줄이기 위해서 표준 보육시간을 줄이자는 것은 꼼수일 뿐, 속내는 표준 보육시간을 줄여 추가시간에 돈을 더 받으려는 것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토론회에서 “지금도 각종 특기활동을 명분 삼아 표준 보육시간 내에 이루어지는 보육활동에도 특기활동비를 받고 있습니다. 솔직히 보육교사 처우 개선하자는 건 핑계고, 결국 보육비 인상하자는 것 아닙니까. 보육교사의 처우를 진심으로 걱정하신다면, 초과근무수당이라도 제대로 지급하시는 것이 더 진정성 있어 보입니다. 보육교사의 처우가 향상되기를 원하신다면, 친인척 채용해서 출근도 안 하면서 인건비 빼내가는 행동 하지 마십시오. 보육교사들이 노동조합 결성한다고 탄압하지 마시고, 노조활동 할 수 있도록 보장하십시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난리가 났다. 그도 그럴 것이 토론회의 청중 대부분은 사립보육시설 원장들이었다. 여기저기서 야유가 쏟아졌다. 무서울 정도였다. 사회자가 자꾸 토론을 마칠 것을 종용했다. 결국 나는 토론을 제대로 끝내지 못했다.
한국노총은 이후에도 시민단체들과 연대해 해당 법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공동발의 의원들에게 꾸준히 전달했고, 발의 철회를 요구했다. 그런 움직임이 지속되자, 그 토론회를 공동주관했던 단체의 대표가 한국노총을 찾아왔다. 그 대표의 말이 가관이었다. 자신은 원래 억대연봉을 받는 은행 임원이었고, 아내는 교사를 하다가 어린이집을 운영하기 위해 명예퇴직을 했다고 했다. 그래서 연봉 2억 정도는 벌어야 한다고 했다. 기가 찼다. 당시 국공립 보육교사들의 월급이 잘해야 150만 원 정도였고, 사립 어린이집은 100만 원을 겨우 넘길 때였다.
유치원비리 문제가 다시 부각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저출산 문제 해결한다고 수십조의 돈을 쏟아 부었지만, 그 돈은 고스란히 사립 시설장의 주머니만 채우고 있다. 보육교사의 처우는 십여 년 전과 비교해서 별반 나아진 것이 없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보육과 유아교육을 사립에 전가해 놓고, 공공성 책임을 방기한 정부의 무책임에 있다. 몇 십 년째 국공립보육시설 비율이 5%대에 머물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사립시설 원장들이 아이들의 교육과 보육을 무기삼아 실력행사를 하고, 배짱을 부릴 수 있는 이유다. 이대로라면 또 몇 십 년이 지나도 제자리 일 것이다. 민간보육시설 노동자의 처우개선을 위해 지급한 돈이 종사자에게 돌아가지 않고 원장주머니로 페이백 되는 현실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보육과 교육문제는 노동자의 문제다. 제대로 된 보육 교육정책이 시행돼야 안심하고 직장에서 일할 수 있다. 여성노동자들이 경력단절을 겪지 않고, 직업을 유지할 수 있는 기본 중에 기본이다. 지겹도록 말했지만 다시 또 외친다. 국공립보육시설 확대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