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 한국노총 교육선전실장
몇 년 전 많은 산모와 영유아를 죽음으로 밀어 넣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가 문제가 된 시기는 2011년도 경으로, 문제의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임산부와 아이들이 서울의 한 병원에 폐 섬유화 증상으로 입원하여 연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수면위로 떠오르게 된다. 나도 2000년대 중후반에 두 아이를 키우면서 가습기를 사용하고, 또 가습기 살균제도 잠깐 쓴 적이 있어서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 당시 가장 많은 피해를 냈던 제품이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이다. ‘옥시’는 80년대 <빨래 끝~>이라는 광고를 히트시키며 유명해졌다. 이 회사의 정식 명칭은 ‘옥시레킷벤키저(옥시RB)’이다. 옥시RB는 전 국민이 다 아는 ‘옥시’ 브랜드를 내세워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을 생산했고, 히트했다. 그러나 이 제품은 옥시RB 공장에서 직접 생산한 제품은 아니었고, 경기도 음성의 ‘한빛화학’이라는 공장에서 OEM방식으로 생산한 것이었다.
사건발생 후 옥시RB의 대응은 가관도 아니었다. 조사과정에서 드러난 각종 사실을 은폐하는가 하면, 실험을 진행한 일부 교수를 돈으로 매수했다는 정황을 포착됐다는 검찰 수사결과도 발표됐다. 사건이 심각해지자 옥시는 기존 법인을 없애고 새롭게 유한회사를 설립해 법적인 책임을 회피하려는 목적이라는 의심도 받았다. 그렇게 사실을 은폐하고 책임회피에 급급하다가 국정조사가 이뤄지고 나서야 회장이 공식 사과했다. 이후 재판에서 신현우(70) 전 옥시RB 대표는 징역6년을 선고 받았고, 가습기 피해자 및 유족들과 합의를 진행함으로써 사건은 수습되는 듯 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수년간 옥시RB 익산공장 노동자들의 삶은 하루하루 메말라 갔다. 옥시RB 익산공장 노동자들은 비록 그들이 문제의 제품을 직접 만들지 않았지만, 그들이 소속된 회사가 사람을 죽이는 제품을 만들어 팔았다는 죄책감에 숨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옥시’라는 이름만 들어도 욕하고 흥분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저 소리 없이 울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고.
그런데 사측은 어이없게도 가습기 살균제사태로 불거진 피해를 고스란히 익산공장 노동자들에게 전가했다. 불매운동이 일어나자 사측은 수차례 희망퇴직을 실시하여 250명이었던 직원 규모를 41명으로 줄였다. 결국 사측은 익산공장 폐쇄를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남은 노동자들은 정리해고 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고용승계를 배제한 채 LG생활건강 자회사인 해태HTB로 일방적인 위장 자산매각을 진행했다. 익산공장 전체를 매각할 경우 동종업체간 매매계약 체결이 되어 익산공장 노동자의 고용승계 문제가 발생하게 되므로, 이를 회피하고자 익산공장의 토지, 건물과 물먹는 하마 포장 설비만을 부분 매각하는 방식의 위장 자산매각을 진행한 것이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지노위와 중노위에서 부당해고 및 원직복직 판결을 받았지만 그들이 돌아갈 공장은 없는 상태가 돼 버렸다.
이 와중에 옥시RB는 도마뱀 꼬리 자르듯이 익산공장을 팔아치우고, 생활용품 사업을 줄이는 대신 개비스콘, 스트렙실 같은 헬스케어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서울 본사 소속 노동자 전원에게는 해외여행을 보내주고, 임금인상과 성과급을 지급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듣고 익산공장의 노동자들은 얼마나 허탈했을까. 익산공장 노동자들은 도대체 무슨 잘못인가?
2018년 국정감사가 시작됐다. 다행스럽게도 이용득 의원이 이 문제에 대해 집중 질의할 것이라고 한다. 옥시RB가 지금까지 보여 온 모습을 보면, 언론과 국회가 난리를 쳐야 사과하고 수습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정감사 시즌에 언론이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사람을 죽이고도 홈페이지에 ‘제품안전’을 대문짝만하게 홍보하는 기업, 경영진의 잘못을 힘없는 지역공장 노동자들에게 전가한 파렴치한 옥시RB의 본색이 제대로 드러날 수 있도록 도와 달라. 그것이 내가 ‘노동이 본 언론’에 ‘언론’이 아닌 ‘노동’을 다시 이야기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