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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은 진짜 여론일까?

등록일 2018년04월23일 10시20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여론은 진짜 여론일까?

 

택시를 탔다. 뉴스에서 전국공무원노조 합법화를 보도한다. 갑자기 가슴이 콩닥거린다. 택시기사 아저씨가 말을 걸 것 같아서다. 60대 후반쯤으로 보인다. 십중팔구 이정도 연배의 아저씨들은 공무원에게 무슨 노조가 필요하냐며, 안 그래도 철밥통인데 이제 만날 파업까지 할 것이라고 비난하며, 자신의 말에 동의해 줄 것을 기대한다. 예전에는 이런 비슷한 상황에서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끝까지 입씨름을 한 적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됐다. 그래봐야 내 입만 아플 뿐이라는 걸. 
 

다행히 아저씨는 말이 없다. 뉴스를 안 듣는 척하며 핸드폰을 쳐다본다. 그 곳 세상도 다르지 않다. 방금 들은 뉴스가 포털 메인에 올라와 있다. 클릭해서 들어간 기사 밑에는 공무원노조가 합법화 돼서 세상이 망할 것처럼 호들갑 떠는 댓글들이 한 가득이다. 답답해진다. 도대체 노조를 향한 이 미움 또는 증오의 시작은 어디일까? 


설마 했었다. 그런데 설마는 사실이었다. 
 

한국노총이 박근혜 정부 노동개악에 맞서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던 2015년부터 2016년 경, 청와대가 ‘노동시장개혁 상황실’이라는 비선 기구를 만들어 각종 위법행위를 저지른 사실이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의 조사결과 밝혀졌다. 상황실은 김현숙 당시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의 지휘 아래 예산전용과 보수청년단체 동원, 언론 기획기사 및 전문가 기고 조직화, TV토론 기획 등을 지시했고, 고용노동부는 그 업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더 기가 막힌 건 언론이다. 언론은 돈을 받고 요구하는 대로 정부입맛에 맞는 기사를 써주었다. 정부가 전문가(대부분 용역교수)에게 돈을 주고 청탁한 기고문에 고스란히 지면을 내주었다. 정부-전문가-언론의 삼박자가 제대로 발휘됐다. 그렇게 쓰여진 기사들은 “갑중의 갑 기득권노조”, “10% 위한 대기업 노동조합과 노동단체” 등의 내용으로 국민들에게 전파됐다. TV 토론도 마찬가지였다. 청와대가 기획하고 언론사는 청와대의 요구대로 토론주제를 잡고, 패널을 섭외하고, 움직였다. MBC 100분토론 등이 활용됐다. 저성과자 해고 기준 등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졌다. 방송이 나가고 한 달 뒤 해당 토론 진행자는 청와대 대변인에 임명됐다. 그렇게 여론은 기획되고 조작됐다. 그리고 노동계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이러한 여론조작에 쓰인 돈이 자그마치 102억 원이 넘었다. 다 알다시피 그 돈은 세금이다. 
 

얼마 전 한국노총이 노동조합에 대한 국민인식조사를 했다. 응답자의 절반 정도는 평소 노동문제에 관심을 갖는다고 답했다. 그러나 노동조합에 대한 호감비율은 26%에 불과했다. 노동조합 이미지는 투쟁적이고 남성적이며, 반기업적, 반정부적, 이기적인 이미지가 높게 나타났다. 독재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무책임하고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비율도 적지 않았다. 이런 국민들의 전반적 인식은 어떻게 형성됐을까? 설문조사 응답자들은 노동계 뉴스를 알게 된 경로로 방송과 뉴스(63.9%), 신문 및 인터넷 기사(19.8%)라고 답했다. 정부가 거금을 들여 여론조작을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다른 근거가 있다. 노조가입자들의 인식은 달랐다. 노조가입자들은 노조에 대해 이타적이고, 도움이 되며, 책임지는, 신뢰할만한 이미지를 미가입자에 비해 높게 가지고 있었다. 상반된 결과다. 이들은 주로 노조 소식을 노동조합을 통해 직접 접하는 그룹이다. 
 

노동조합에게 방법은 두 가지다. 언론을 제대로 세우든가 아니면 조직률을 높여 직접소통을 늘리는 방법이다. 그러나 어느 한 가지도 쉬운 게 없다. 또다시 한숨이 난다. 

이지현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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