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노조운동이 과연 전략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독자 중에는 당연한 걸 가지고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느냐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볼 지점은 있다고 생각한다.
노조운동이라는 것이 미리 각본 짜놓고 하는 그런 것은 아니다. 조합원의 불만이 있으면 그것을 조직해서 밀고 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승리의 기록이 남겨지면 다른 노동자들이 그 소식을 듣고 모이게 되어 있다. “노동운동, 주먹으로 하면 되지 무슨 머리냐. 문제 있으면 배 잡아매면 된다”는 부두노조 간부의 얘기가 지금도 생생하다. 1970년대 말에 들은 얘기다. 조합원의 요구가 있으면 그것을 내걸고 파업을 하면 된다는 매우 단순한 운동공식이다. 굳이 목적의식을 가지고 전략 같은 것을 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틀린 얘기라 할 수는 없다.
필자는 지금도 노조운동의 힘이 노동자들의 기름때 묻은 팔뚝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고 있다. ‘머리’보다는 ‘가슴’, 그리고 ‘본능적 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이 그런 것을 말해준다. 당시 무슨 전략이나 계획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현대엔진 노동자들이 ‘현대왕국’에 노조 깃발을 꼽자 현대의 모든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섰고, 이후 노동자가 있는 곳에서는 대부분 투쟁이 발생했다.
물론 자연발생적 투쟁은 그것대로의 한계가 있다. 목적의식, 즉 지도력에 의해 힘이 조절되거나 유도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의도하는 투쟁과 성과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 또 노동자의 보편적 이익보다는 조합원 이익이 우선시 될 수 있다. 때문에 전략적 지도의 필요성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지만 전략과 계획이라는 것도 장단점 모두를 가지고 있다. 전략과 계획이라는 것이 인위적인 것이기 때문에 자연발생적 흐름에 거스를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집중성 강한 전략은 지나치게 경직적일 수가 있다.
운동이 자연발생적 흐름을 타든 아니면 전략과 계획을 가지고 가든 모두 장단점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때문에 양자를 긴장감 있게 배합해가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본다. 양자를 어느 비중으로 배합하느냐는 어느 부문의 노조 활동이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상설적 노조운동은 크게 두 가지 부문으로 되어 있다. 첫째로 힘을 만드는 부문이 있고, 둘째로 그 힘을 활용해 노동자의 권익을 지키고 증진시키는 교섭·투쟁 부문이 있다. 이들 두 가지 부문 중 힘을 만드는 부문에서는 전략의 역할 비중이 매우 커진다고 본다. 여기서 힘을 만드는 기능이란 운동자원을 확보하는 문제와 관련 있다. 운동자원이란 인적, 물적 자원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정당성 등 ‘도덕적 자원’, 전략과 전술 노하우 등 ‘문화적 자원’, 운동 인프라, 네트워크, 조직 구조 등 ‘사회 조직적 자원’과 같은 것들도 있다.1) 때문에 이들 각 부문에 대한 전략을 수립해 일상활동을 전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반해 힘을 사용하는 교섭·투쟁 부문에서는 조합원의 요구나 정서와 같은 것이 중요해질 것으로 본다. 따라서 교섭·투쟁을 전개할 때 조합원의 요구나 정서와 같은 것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전략이나 계획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조합원의 분노가 있더라도 그 흐름을 방치하지 않고 목적의식적으로 잘 이끌어야 투쟁이 돌연 사그라드는 것을 막을 수 있고, 보다 유익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노조는 상설적 일상활동 조직이기 때문에 기회나 여건이 충분치 않더라도 운동을 만들어가야 하는 측면이 있다. 이를 위해서는 기회를 찾아내고 여건을 조성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그것들을 효과적으로 해낼 수 있는 방안 마련, 즉 전략의 수립이 중요해진다.
특히 교섭·투쟁 의제를 정할 때는 전략적 접근이 더 필요하다. 실현 가능한 의제, 이슈화를 목표로 하는 의제, 조합원 의제, 전노동자 의제 등 목표에 따른 의제의 배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흔히 투쟁과 같은 부문은 중요하기 때문에 전략이 필요하고, 힘을 만드는 일상활동 부문은 소소하기 때문에 굳이 전략 같은 것이 필요치 않다는 생각이 있을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번 글을 쓰는 이유도 그런 점 때문이다.
독자들도 익히 아는 바이겠지만 대부분의 선진국 노조들은 대회에서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대회가 3년이나 4년 주기로 개최되기 때문에 3∼4년의 기간을 대상으로 하여 전략을 수립하며, 중간중간 개최되는 집행위원회에서 전략 실현방안을 구체화해 나간다. 대회에서는 운동의 큰 방향, 즉 전략을 수립하고, 집행위원회에서는 사업계획을 수립하는 이원체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기업별 체제인 일본의 경우도 매년 개최되는 대회에서 그 해의 운동론을 수립하고 또 노조에 따라서는 5년마다 정기적으로 운동론을 수립한다. 산별도 마찬가지다.
한국노총도 대회에서 그 해의 운동방향을 제시한다. 큰 운동 방향과 정책·조직·사회연대의 과제가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산별은 각각일 것으로 본다. 운동이 대회 결의뿐만 아니라 일상활동 차원의 전략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제도적·관리적 뒷받침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전략을 결정하고 구체화하는 틀, 그리고 그것을 실행·평가·개선하는 일상적 틀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필자는 수년 전 노총 지도부에 운동의 전략화를 위한 한 방안을 제안한 적이 있었다. 각 본부에 정책과 전략을 담당하는 요원을 두고 이들과 각 본부장, 사무차장 등으로 전략위원회를 구성하여 운영해보자는 안이었다. 필자는 아직도 그런 위원회를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운동의 전략화를 위한 첫 걸음을 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전략위원회와 같은 것이 자동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전략위원회를 운영하는 별도의 전략이 있어야 할 것이다. 우선 접촉면의 다양화가 중요할 것같다. 고정관념이란 것이 바뀌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시야의 폭을 굉장히 제한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전략을 수립하려면 우선 새로운 기회 영역, 즉 새로운 의제를 찾아내야 하는데 시야의 폭이 좁으면 그것을 잘 해낼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필자는 매년 전략을 수립할 때 복수의 외부 전문가나 현장 활동가들로부터 의견을 듣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또한 중간중간 다양한 부문의 실천 사례들을 듣는 것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그리고 연도 말에는 평가도 해보아야 한다. 평가는 전략과 현실간의 괴리를 보여줄 수 있는 장치이다. 물론 일상활동 속에 있다 보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전략을 전담하는 본부별 요원이 있다면 딱히 어려운 일은 아닐 것으로 본다.
전략이란 불확실성의 세계를 지혜롭게 헤쳐가는 나침반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너무 크게 생각하여 외경시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작은 개선이라도 해보겠다는 그런 실사구시적 마음가짐만 있으면 된다고 본다. 허장성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실이다.
<미주>
1) Bob Edwards & John D. Mccarthy, 2004, 『Resources and Social Movement Mobiliz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