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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운동, 노동자를 어느 정도 보호할까?

노진귀 전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원장

등록일 2023년05월09일 16시34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노조 운동, 노동자를 어느 정도 보호할까?” 이 질문은 우문이다. 노동자 보호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번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노동자 보호력이란 개념적으로는 일차적으로 노조가 따낸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그것만으로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사용자나 정부로부터 만만찮은 반작용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임금인상이 가격상승이나 고용 감소로 이어져 실제의 임금인상 효과가 차감되듯.

 

다양한 노동자 보호 조치를 단일 지수로 계산해내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는 아니겠지만 그런 지수를 산출하려는 시도는 없었던 것 같다. 대신에 주관적 지표인 노조 평가치나 만족도 수치가 산출되는 경우들이 있었으나 많지 않았고 정기적이지도 않았다. 결국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노조의 임금효과’ 정도이다. 이 수치는 노조가 비노조에 비해 어느 정도 더 임금을 올렸는지 보여주는 그런 것이다. 근로조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임금과 근로시간이기 때문에 이 양자를 포괄하는 시간당 임금의 개선치를 비교해보는 것은 금전적 측면의 보호력을 평가하는 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임금효과조차도 별로 산출되지 않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이병희 박사 분석에 따르면 2008년 이후로는 임금인상의 노조 효과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업체 간 임금 격차 축소에 노조가 미친 영향도 1990년대 중반 이후로 약화되었고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오히려 확대 요인이 되기도 했다.

보수 정권 기간이라는 부분적 제한이 있기는 하지만 노동조합이 임금수준 및 격차 개선에 있어 견인차 역할을 잘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근로조건 결정에 있어서 시장의 영향력이 매우 커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노조 운동의 노동자 보호력 약화는 우선 ‘보호의 폭’ 측면에서 나타나고 있다. 현재 많은 노동자들은 노조 보호망 밖에서 일하고 있다. 단체협약이 비노조원에게 확대될 수 있는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그 제도의 적용이 매우 제한적인 것 같다. 앞의 이병희 박사 분석에 따르면 노조의 비조합원 보호 정도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단체협약 적용률이 노조 조직률 14.2%보다 높기는 하겠지만 크게 높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것은 노동자들이 노조 가입 기간만 노조의 보호를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규직 중심의 현 노조 체제에서는 정규직만이 노조의 보호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고용 유연화로 정규직의 비중은 줄어들었다. 정규직이라 할지라도 정년까지 가지 못한 채 비정규직이나 영세 자영업자, 실업자로 추락하는 경우가 많다. 고용정보원 조사에 따르면 정년이 되어 퇴직하는 사람의 비율은 2018년 현재 11.3%에 불과하다. 이들 정년퇴직자의 경우라도 70세까지 일하는 사람이 꽤 있다. 그들 대부분은 최저임금 수준의 비정규직이다. 노조가 정규직 중심으로 남아 있는 한 노동자들이 노조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기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물론 한 개의 연구 결과만 가지고 결론을 내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고, 또 어디까지나 평균치의 결과이기 때문에 노조마다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전적으로 무시할 일은 아니다. 그러면 왜 이런 결과에 이른 것일까? 신자유주의와 정규직 중심의 기업별 노조 체제가 요인일 것이다. 이제 노조 운동은 기업 차원의 교섭만 아니라 보다 원인적인 부분에도 눈길을 주어야 할 것이다. 물론 ‘임금’ 등 근로조건은 결코 경시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임금 결정에 대부분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시장 메카니즘, 즉 노동력 수급 문제이다. 이 원인적 문제를 방치한 채 결과적 측면만 가지고 교섭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의 노사관계 역사를 보면 사용자 측이 주력했던 부문은 주로 원인적 측면이었다. 사용자들의 그러한 전략은 1996년 말의 노동법 개정으로 귀결되었다. 그들은 이처럼 새롭게 획득한 병기를 가지고 1997년 말부터의 경제위기 국면을 이용, 노동자 대투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다시 뒤집어 놓았다.

 

물론 원인적 측면의 교섭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고용이 유연화되고 기업이나 노동력이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신자유주의 개방 체제 하에서는 더욱 그렇다. 생산 입지적 경쟁력이 기업, 즉 고용을 잡아두는 주요 요소가 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노동력의 품질 경쟁력을 높이는 과제가 노조 운동의 한 대안이 되기도 한다. 미국노총 AFL-CIO가 ‘고임금 고생산성’의 하이로드 전략을 취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한국 노조 운동도 그런 전략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자본 측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다 잡아놓은 고기라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권은 약간 다를 수 있다. 한국경제의 선진화나 4차산업혁명, 2021년부터의 인구감소 등 환경 변화 때문이다. 어떻든 고정관념이나 관성에 볼모로 잡혀 새로운 기회를 놓치는 일은 피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 보호력 개선의 또 하나의 과제는 ‘보호 폭‘ 확대이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는 부분이다. 노조 운동이 정규직 중심성으로부터 탈피하는 것이 한 측면이며, 조합원을 평생 보호할 수 있는 ‘평생보호’ 패러다임으로 가는 것이 다른 한 측면이다.

노조 운동은 조합원 보호의 노사교섭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복지제도 개선에 더 합당한 비중을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비정규직뿐만 아니라 실업자, 정년퇴직자도 조직해 들여야 한다. 그래야 이들을 공식 대변할 수 있는 권리가 획득되고, 그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도 생기기 때문이다. 퇴직자 부문은 노조 운동에 있어 새로운 블루오션이 될 것이다. 유럽 선진노조들의 경우 조합원 20여%가 은퇴자로 되어 있다. 한국노총을 기준으로 하면 30만 명 정도다. 이들을 조합원으로 끌어들이면 이들에 대한 대표권이 생기게 되고, 대정부·정치권 교섭력도 배가되게 될 것이다. 노후 세대의 경우 현재 유권자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2040년대에 가면 반 정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대정부 복지교섭은 상대가 자본이 아니라 국가라는 점에서 ‘공공성’ 명분만 있으면 관철이 가능한 이점도 있다.

 

필자는 지금까지 노동자 보호력을 근로조건 개선에 한정하여 얘기했지만, 노조의 존재 이유는 물론 그것만이 아니다. 노조란 노동자들에게 존재 자체만으로도 매우 위안이 될 수 있는 그런 제도이다. 필자는 은퇴 생활을 하면서 소시민의 ‘무권리감’을 절감하였다. 우리나라 헌법이든 법이든 인권 보호를 규정하고 있지만 무언가 나를 도와줄 ‘빽’이 없다는 느낌 때문에 나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노동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노조는 노동자가 직장에서 어깨 펴고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이다. 노조 운동이 소외계층의 이익을 증진하고 정치·사회·산업의 민주화를 이끈다는 또 다른 긍정성 부분은 굳이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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