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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정치세력화, 먼저 생각해보고 싶은 부분은?

노진귀 전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원장

등록일 2023년11월08일 10시21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정치에 대한 생각은 개인적 이념이나 지역 연고, 팬심, 개인적 이해관계 등에 따라 갈라지는 것이겠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주제임은 분명하다. 노조운동의 성과를 결정짓는 중요 요소이기 때문이다. 노동권을 정하는 것도, 최저 노동기준이나 사회복지를 정하는 것도 정치이다. 독재정권 시기에도 통념과는 달리 자주적인 정치 활동을 향한 몸짓들이 상당 기간 이루어졌다.

 

한국노총 정치참여(개입)의 역사

이승만 권위주의 체제였던 1950년대 중반에는 대한노총 소속 산별노련이 탈 자유당을 향한 조직적 행보를 했다. 정치참여도 여당 일색만은 아녔다. 대한노총 출신 국회의원 당선자들을 보면 53%인 9명이 야권 소속이었다. 이러한 성향은 1960년대에도 꺾이지 않았다. 5.16 군부 쿠데타군의 칼날이 바짝 서 있던 1963년에도 정치 활동 금지 조치가 해제되자마자 한국노총 산하 산별노조 위원장 다수가 ‘민주노동당’ 발기선언에 나섰다. 물론 한국노총 지도부의 반대로 무산되긴 했다. 그러나 1967년이 되면 정치참여를 선언하며 강령상의 정치적 중립 규정을 도려낸다. 이어 1970년에는 정치위원회를 두어 구체적 실행에 나선다. 그러자 정권은 한국노총 간부를 여당으로 끌어들이는 포섭전략에 나섰다. 이로 인해 한국노총의 정치적 야성은 일정 기간 굴종의 길을 가게 된다.

 

노동자 대투쟁을 거치면서 다시 자주화의 길을 연다. 한국노총은 1988년 말의 임시대회에서 ‘여당 편향적 정치 활동’의 탈피를 선언했고 정치국을 신설했다. 그리고 총선 시부터 친노동자 후보 지지운동에 나섰다. 대선의 경우는 1997년에 처음으로 시도되었다. 한국노총은 1차로 대선 지지 후보와 ‘정책연합’을 한다는 특별 프로젝트를 추진하였다. 날치기 노동법 통과, 사상 초유의 수평적 정권교체 가능성. 민주노총의 정치 활동 등이 자극요인이었다. 민주노총은 1997년에 정치방침을 정한 후 노동당 창당 등 정치 활동을 전개한 바 있었다. 이런 배경에서 추진된 한국노총의 정책연합은 조직적 찬반에 직면해야 했고, 조직적 총의를 얻지 못한 채 위원장이 지지 선언을 하는 결단 형식으로 처리되었다. 정치 활동의 새로운 페이지를 연 것은 분명했다. 한국노총은 2000년대 들어서 2002년의 독자정당 창당, 2007년 ‘영구적 정책연대’ 추진 및 조합원 총투표에 의한 결정, 2011년 야권통합정당 창당 참여 및 지분 확보, 2016년 20대 총선 반노동자 정당 심판 방침, 2017년 및 2022년 대선 정책연대와 2020년 총선 연대 등 다양한 정치참여 실험을 하였다.

 

노조 정치참여 평가

그러면 그러한 시도의 성과는 무엇이었던가? ‘정무적 판단’도 필요한 것이지만 객관적인 타산을 해보는 것이 유의미할 것이다. 물론 몇 차례인가 실무적 평가를 한 적은 있었다. 조직적 평가가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실무적 평가의 경우는 부정적인 편이었다. 실제로 정책연대는 두 번이나 파기되었다. 난맥상이 보인다.

 

필자는 퇴직자연합이 2021년도에 발간한 책자에서 정책연대의 손익계산과 관련된 글을 기고한 바 있었다. 정책연대를 하지 않았을 때와 비교했다. 당시에는 썩 긍정적인 평가는 아녔다. 정책연대라는 것이 표를 주겠다는 쪽이나 정책·제도개선의 반대급부를 주겠다는 쪽이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협약 당사자의 어느 편도 협약을 만족스럽게 이행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협약 불이행 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그런 것도 아니다. 기껏해야 선언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한계는 첫째로 정당이라는 것이 선거 때는 급해서 어음을 남발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부도도 불사하기 때문이다. 정치인이든 정당이든 이해당사자에 의해 포위되어 있어 일방만을 위한 이해 대변을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계급독재의 정치체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로 노동자들의 표가 잘 조직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서구와는 역사적 배경 자체가 다르다. 서구의 경우는 노조와 정당이 사회변혁 운동의 동지로 있다가 상호 분화된 것이기 때문에 협력관계가 자연스럽게 유지될 수 있었다. 겉으로는 정치적 중립이라고 하지만, 조합원들 다수는 자매 정당에 표를 주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유사한 경험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승만 진영과 대한노총,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도 유사했다. 그러나 정당 측이 오래가지 못해 관계가 중단됐다. 노동자들은, 그리고 노동조합원들조차도 계급이 아니라 지연, 학연, 동성동본 등 인적 속성에 의해 투표를 한다.

 

노조 정치세력화의 방향

물론 이러한 한계들도 얼마간은 개선될 여지가 있다.

첫째로 조합원 교육을 통해서다. 한국노총의 선배들은 1970년에 ’정치교육주의‘ 원칙, 즉 교육을 통해 표를 조직하겠다는 방안을 세워 매우 체계적인 활동을 전개한 바 있었다. 올바른 방향이었다 할 수 있다.

 

둘째로 정보제공을 통해서다. 정당이나 정치인의 노동의제에 대한 입장을 알림으로써 노동자의 선택을 지원하는 것이다. 미국 자동차노조 UAW가 ’Washington Report’라는 간행물을 통해 조합원들에게 의회 정보를 제공한 것도 그런 목적에서였다 할 수 있다. UAW는 워싱턴에 정치 전문 사무소를 두고서 로비활동을 전개하였고, 그들의 요구에 대해 각 정당이나 의원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조합원들에게 알렸다. 매우 구체적인 정보를 일상적으로 제공하는 운동형태인 것이다.

 

셋째로 활동의 가시성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정책협약 이행도를 높이기 위한 실용적 접근도 중요하다. 가령 정책요구를 필수이행사항과 일반사항으로 나누어 필수이행사항에 실질적 방점이 가도록 해보는 접근이 있을 수 있다. 필수이행사항은 노조운동의 필요성뿐만 아니라 국민적 지지와 실현가능성도 담보할 수 있는 그런 것이면 좋다. 논쟁적인 현안보다는 장기 전략적으로 노조운동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런 지혜가 담긴 것이면 좋을 것이다.

 

끝으로 필자는 노조운동이 기존 정당과 유대만 가지려 말고 그들을 견인하기 위한 직접민주제 요소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간접민주제는 불가피한 것이기는 하지만 결함이 적지 않은 제도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 정치 상황에 만족하는 비율은 5.9%에 불과하고 불만족 비율은 74.0%나 되고 있다. 또한, 한길리서치가 2023년 3월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정치인이 갈등 해소를 위해 노력한다는 비율은 5.5%에 불과하다.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상상 이상이다. 수탁자가 위탁자의 이익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소위 ’주인-대리인 이론‘상의 문제도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노조 같았으면 진즉 불신임 문제가 불거졌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집단들은 보호 방파제를 잘 만들어 놓고서 그 안에서 ’안녕‘중이다. 정치집단은 국가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대응책을 내야 하는데 그런지도 의문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한가해도 되는 상황은 아니다. 저성장과 인구 감소, 기후 온난화와 ’신냉전‘과 같은 중대한 도전이 목까지 차오르고 있다. 이들 문제에 대해 정치권이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노조운동이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도 생각된다. 노조운동은 우리 사회 최대 조직역량이기 때문이다. 노조운동이 나서면 70여% 모두는 아니더라도 상당수 국민이 귀를 기울이지 않을까 한다. 국민의 지지가 중요하다는 것은 이미 노동자 대투쟁 당시 경험한 바 있다. 지금의 대변혁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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