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노조 재정 문제를 얘기했으면 한다. 공감대 형성이 어려울 수는 있겠으나 중요한 이슈여서이다. 흔히 ‘돈’보다 ‘정신’을 우선시하여 ‘돈’ 문제를 별문제 아니게 여기는 경향도 있지만, 조직이 있는 곳에서는 그것이 고매한 종교 조직일지라도 ‘돈’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1960년대의 산별 체제가 꽃피지 못했던 한 요인도 결국은 돈 문제가 걸려서였다. 초기에는 산별노조에 걸맞을 듯한 재정 배분이 이루어졌지만 10여 년 만에 기업별 체제의 재정 배분 구조로 후퇴했다. 이전의 기업별 체제 관성 때문이었다. 따라서 산별노조 다수는 산별 체제로 역할 수행, 즉 산별 교섭을 직접 수행할 수 있는 인적·물적 자원을 갖출 수 없었고 그래서 교섭권 위임이라는 형태를 띠기는 했지만 단사 노조가 주도권을 쥐고 교섭하는 형태가 되었다. 노조의 힘은 교섭권 보유 여부에 있다.
노조 운동과 재정 배분율
19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노동진영이 분열되게 된 요인의 하나도 재정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신생조직들을 껴안기 위해서는 그들을 지원할 인적 역량이 있어야 했는데 전혀 그러지 못했다. 이에 비해 제2 노총 추진 측은 밤낮 가리지 않고 헌신적으로 밀착 지원할 ‘학출’ 운동가들이 즐비해 있었다.
노조 운동에 있어서 재정 이슈는 우선 수입과 지출의 문제다. 수입은 조합비 수입과 비조합비 수입으로 구성되고 특정 조직의 조합비 수입은 주지하다시피 ‘조합원 수 x 1인당 조합비 x 배분율’로 나타낼 수 있다. 이 중 1인당 조합비는 단사 노조가 결정하지만, 상향조정이 쉽지 않은 부분이다. 그러므로 조직화나 배분율 문제가 주요 이슈로 떠오르게 된다. 조직화 문제는 지난달에 얘기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배분 문제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우선 한국노총의 경우를 보기로 한다.
〔그림 Ⅰ〕은 한국노총의 재정 배분율 추정치를 연도별로 본 것이다. 노총 배분 비율 1은 단사 노조가 각 조합원으로부터 받는 조합비가 정액 임금의 1%라고 가정했을 경우이고, 2는 0.5%라고 가정했을 경우다.
1970년까지는 3%를 상회했을 것이나 산별 체제를 약화한 유신 노동법 개정이 이루어진 1973년 이후로는 2%를 밑돌며, 1979년에는 1.6%로까지 떨어졌다. 1980년대에는 기업별 체제가 강제되었음에도 오히려 2.3%로 높아졌다. 이는 한국노총 의무금의 상승보다는 1인당 조합비 상승률이 70년대의 22.9%에서 80년대의 12.7%로 낮아진 데서 기인한 부분이다.
한편 노동자 대투쟁 이후의 16년간에는 배분율이 1.5%로 크게 낮아진다. 노동자 대투쟁의 ‘민주화’ 기치가 노조 운동의 분권화를 가져온 측면이 있어서다. 이후 2006년부터 2021년까지는 2.0%로 다시 회복된다. 2007년부터 2014년까지 평균 2.2%를 기록한 영향이 있었다. 이 기간도 한국노총의 의무금이 크게 올랐다기보다는 1인당 조합비 상승률이 이전 16년간의 10.4%에서 4.2%로 크게 하락해서다.
한국노총 배분율이 어떻게 변화했든 전체적으로 보면 2% 내외이다. 민주노총의 경우 2013년에 5.3%였으나 이 중 지역본부 교부율이 반 정도 되기 때문에 민주노총 몫은 2.6%정도다. 한국노총보다 높기는 하지만 차이가 큰 것은 아니다.
그러면 노총, 산별, 지역 등 상급단체 전체의 배분 몫은 어떻게 될까. 필자가 2010년에 사례 분석한 바에 따르면 노총, 산별, 지역조직 등 상급조직의 배분 몫은 평균 13% 정도가 되었다. 기업별 체제인 일본의 경우 20%(2003년) 정도가 되었다. 일본은 상급단체 간부 대부분이 단사 노조에서 파견되는데 파견직의 임금이 많은 부분 파견 단사 노조가 부담하므로 상급단체의 실제 배분율은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일본은 재정체제든 교섭체제든 한국보다는 덜 기업별 체제의 모습을 띤다.
노조 재정 배분 몫의 재조정 필요성
그러나 재정 배분의 적절성 여부는 그 자체보다는 역할과 비교하여 평가하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한국노총의 재정 배분율 평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면 한국노총체제에서 한국노총의 역할 비중은 어떠했을까. 우선 재정 배분 구조가 상당히 변화했던 노동자 대투쟁 이후의 시기를 보기로 하자. 이 기간은 조합원 행동주의가 폭발한 시기로 단사 차원의 활동량이 대폭 증가한 시기다. 그러나 단사 차원의 활동량만 증가하지는 않았다. 국가나 총자본 측이 노동자 대투쟁의 열기를 체제 내에 가두고 체제 순응적으로 만들기 위해 전면적인 공세에 나섰기 때문에 노총 차원의 역할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재정 배분 몫은 단사의 사정을 더욱 반영하여 변화했다. 재정의 1차 처분권이 단사 노조에 있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였다. 이러한 메카니즘은 상급단체의 역할이 더 커진 2000년대 중반 이후에도 그대로 작용해온 것 같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단사 차원의 임단투는 상대적으로 소강상태에 들어간 반면에 상급단체 차원의 조직화나 대정부 정책교섭의 비중은 눈에 보이게 커졌다 할 수 있다. 때문에, 효과 있는 노조 운동이 되려면 재정 배분 몫의 재조정이 있어야 했을 것이다
재정집행의 합리성 : 효과성과 효율성 제고
다음은 노동조합 재정 이슈의 두 번째 측면인 지출 부문을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지출 측면은 재정집행의 효과성 및 효율성과 투명성의 문제로 대변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지적이 아무래도 ‘공자 같은 얘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 상황을 고려할 때 ‘공자 같은 얘기’라도 성찰의 한 재료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필자는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에 있으면서 2010년에 한국과 일본의 노조 재정을 비교 연구했다. 일본의 경우 재정집행이 상당히 체계적이고 통제적인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보면 인간미 없는, 매우 사무적인 성격의 집행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한국의 조직운영 문화에서는 더욱 그렇게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라도 외부에 손 벌리지 않고 독자적으로 나갈 수 있다면 값진 일이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조직운영에 있어서 문화의 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갈수록 나빠지는 재정 상황을 고려할 때 마냥 문화대로 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히 정부의 재정지원이 중단된 한국노총의 경우 이 기회에 지난 관성을 끊고 아예 재정자립의 길로 나서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때로 구차해지는 상황도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길로 가기 위해서는 노총의 역할분담을 재정의하고, 인적자원의 배치를 최적화하며, 재정집행의 합리성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재정집행의 투명성 : 대외 이미지 제고
끝으로 얘기하고 싶은 부분은 재정집행의 투명성 문제이다. 이는 노조 운동 스스로가 자율적으로 다듬어가야 할 문제지만 외부의 시선도 그것이 옳든 그르든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노조가 상당 정도 민주적인 재정 감찰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다른 주요 사회 조직에 비해 훨씬 더 투명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정부는 노조 재정 문제가 노조개혁의 출발점인 것처럼 부각했고 일부 언론이 그것을 거들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대중 여론도 그런 방향으로 덧칠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다 보면 결국은 노조 부정론이 확산되지 않을까. 5년이란 세월이 결코 짧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재정 투명성 측면에서도 대외적 이미지를 바로잡기 위한 무언가의 대책들이 강구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