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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운동, 이제 숲, 그리고 자신을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노진귀 전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원장

등록일 2023년03월14일 13시04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먼저 이처럼 귀중한 지면을 선배들에게 할애해준 한국노총에 감사를 표하고 싶다. 그렇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꼰대’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다. 혹 잘못이 있더라도 널리 이해바란다.

 

필자는 앞으로 수차에 걸쳐, 아마 거의 1년 동안 독자 여러분께 노조운동에 대한 생각을 가능한 무겁지 않게, 가능한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볼까 한다. 물론 무슨 정답 같은 것을 제시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다. 솔직히 그럴 능력도 없다. 또한 노조운동에 대해 얘기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한국노총 운동에 중심을 둘 것이다. 민주노총에 대해서는 잘 모를 뿐만 아니라 이러쿵저러쿵 얘기하기도 그래서이다.

 


 

오늘은 노조운동이 자신과 자신의 숲을 되돌아봐야 할 때가 아닌가를 얘기해 보고자 한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2011년에 ‘미래전략’이라는 한국노총의 운동론이 나왔었는데 그 이후 노조운동의 환경, 특히 경제적 환경이 크게 변화했다는 생각에서이고, 다른 하나는 환경이 변하면 노조운동 스스로도 그에 맞게 변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노조운동의 환경으로 중요한 것은 역시 정치적 환경과 경제적 환경이 있다. 이 중 더 기본적인 것은 경제적 환경일 것 같다. 정치적 환경은 좋지 않더라도 깡다구로 돌파할 수 있는 그런 측면이 있다. 즉 불법이든 말든 목숨을 걸고 덤비면 해결책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적 환경이 나쁠 때는 비록 파업권이 있더라도 노조 스스로 그것을 써먹을 수 없다.

 

투쟁을 기본적 무기로 하는 노조운동으로서는 기가 막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가장 대표적인 ‘나쁜 경제 환경’은 일자리 부족이다. 일자리가 충분할 때는 노조운동이 임투를 매개로 성장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을 때는 노조가 힘이 있어도 제대로 쓸 수가 없다. 임금은 머리 박고 밀어붙이는 단순 전략으로도 성과를 낼 수 있으나 고용은 그렇지가 못하다. 다방면의 전략을 구사해야 하고 그렇다고 만족스런 해답이 잘 나오는 것도 아니다. 항우장사라도 그의 머리를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불행히도 한국 노조운동은 이미 고용이 문제가 되는 그런 환경에 들어선 것 같다. 고용 중에서도 양이 문제가 되는 그런 시기이다. 지금까지는 대개 고용의 질적 측면이 문제시 되었지만 이제는 고용의 양적 측면이 문제화 되어 가는 것 같다. 고용의 양적 문제는 질적 문제보다 더욱 일반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일자리 부족이 노동자의 노예화를 더욱 강화시키기 때문이다.

 

통계로 보게 되면 한국 경제는 1997년 말 경제위기시부터 고용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고, 2010년대 부터는 완전히 저성장·저고용의 국면에 들어서게 된다. 취업자 증가율을 보면 1964년부터 노동자 대투쟁 첫해인 1987년까지 연평균 3.28% 증가했던(연평균 실질 GDP 9.7% 성장) 취업자 수는 1988년부터 세계적 경제공황 도래 연도인 1997년까지 연평균 2.39%(연평균 실질 GDP 8.4% 성장) 증가했지만, 1998년부터는 거의 1%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2001년-2022년 경제활동인구, 즉 일자리 수요자의 증가율이 연평균 1.22%이므로 일자리 부족이 점점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고용 증가율 저하는 일차적으로 노동자 대투쟁 이후부터 시작된 자본과 정부측의 반노동 대응에 그 뿌리가 있다. 노동자 대투쟁 이후 자본측은 인건비 상승이나 노조 투쟁에 대응해 자동화나 해외 공장 이전 등 대응을 계속했다. 그리고 정규직 일자리를 비정규직이나 도급제 일자리로 매워갔으며, 신규채용을 중단하고 자동화를 진행했다. 이에 대한 노동측의 대응은 충분치 못했다. 신규채용을 규제할 단체협약 조문도 없었고, 또 미래의 고용 문제보다는 당장의 임금과 복지를 개선하는데 주력했다. 커다란 틈바구니를 내주었던 것이다. 거기다 노동집약적 저임금 기업들은 중국의 인해전술 공격으로 인해 폐업하거나 저임금 국가로 공장을 옮겨갔다.

 

정부 또한 고용문제에 개입했다. 저임금 3D업종이 노동력 부족을 겪게 되자 외국인 노동자 수입 정책을 강화했다. 그 결과, 10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이주 노동자에게 넘어갔다. 외국인 노동자의 수입이 없었다면, 3D업종의 노동조건이 개선될 수 있었을 것이고 기업이 고생산성 고임금 체제를 향해 가도록 촉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한국노총은 외국인 노동자 수입이 저임금 체제를 고착화하고 내국인 고용을 잠식할 것이라는 우려를 가지고 접근하기는 했으나 막지는 못했다.

 

경제의 세계화 또한 고용안정성을 흔들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자본측은 이제 언제든지 국경 너머로 날아갈 수 있다. 199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한국 경제의 세계화는 놀라운 것이었다. 이에 따라 국경이라는 링 안에서 파업으로 승부를 내던 그런 전략 구사가 용이하지 않게 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기업을 껌 팔 듯이 쉽게 팔아넘기거나 아무런 긴장감 없이 문 닫는 주주자본주의적 기업이 대폭 늘어나고 있다. 고용이 있더라도 그 안정성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한편, 소위 ‘4차산업혁명’으로 불리우는 디지털화 확산 또한 고용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위험성을 내재하고 있다. 디지털화는 2차산업혁명에 의한 육체노동 대체를 넘어서 정신노동의 대체를 가능케 한다. 디지털화 자체는 인류문명의 진보를 의미하는 것이지만, 일단 자본의 손으로 들어가게 되면 노동을 지배하는 착취도구로 전환하게 된다.

 

이상과 같은 환경 변화에 잘 대응하기 위해서는 노조의 조직체제 및 역량이 그에 맞게 변화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기존 관성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노하우와 문제해결 인프라도 있어야 한다. 이제 ‘임금’에 비중을 두고 전개된 해묵은 노조운동의 패러다임이 ‘고용·국가복지’에 중심을 두는 것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는가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가장 먼저 상급단체의 역할이 확대·강화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필자는 2000년대 들어서부터 기업별 노조화가 완전 고착화된 것이 아닌가 느끼고 있다. 기업간 연대도 매우 약화되고, 외부에 폐쇄적인 기업별 노조들이 상당히 있는 것으로 듣고 있다. 노조 전임자 임금 제도가 노동시간 면제제로 바뀌면서 지역조직들의 인력 확충이 어렵게 되고, 그래서 단사에 일상적으로 운동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는 기반이 크게 약화되었다 할 수 있다. 거기다 4년여간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19로 운동성이 약화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코로나 19 기간에도 잠자지 않고 SNS나 유튜브를 통해 자기식의 동원을 해간 정치권에 비하면 노조운동 진영은 그에 미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떻든 지금은 주체적 역량을 잘 진단해 새로운 환경에 적합하도록 물적 정신적 태세를 잘 갖추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대응이 잘 안 되면 노조운동이 더욱더 낙오될 가능성도 있다. 대응이 쉽지는 않겠지만, 때로 위기는 자각을 가져와서 급속한 대응을 가능케 한다. 환경 변화의 심각성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면 주체적 태세를 변화시킬 수 있는 동력이 나올 수도 있다고 본다. 공자 같은 얘기겠지만 진실은 진실이다. 약점은 언제든지 강점으로 바뀔 수 있고, 기회는 찾는 사람의 눈에만 보이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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