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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른스트 프랭켈, 노동3권의 배후

등록일 2019년05월08일 16시15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윤효원 인더스트리올 글로벌노조 컨설턴트

 

대한민국 헌법에는 자유민주주의의 색깔만이 아니라 사회민주주의의 색깔도 짙게 배어 있다. 입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 행동으론 자유민주주의를 유린했던 이승만(1948~1960)-박정희(1961~1979)-전두환(1980~1987) 독재체제를 거치며 살아남은 헌법의 사회민주적 연원은 1948년 봄과 여름을 거치며 만들어진 제헌헌법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다. 제헌헌법 초안이 만들어지던 때의 국가 권력은 미군정이 장악하고 있었다. 제헌헌법의 ‘초안자’ 유진오(1905~1987)는 미군정과 새롭게 만들어질 헌법을 논의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미군정을 대표하여 헌법 논의에 관여한 이들 중에서 노동3권을 비롯한 사회민주적 원리를 가장 강조한 사람은 독일인 에른스트 프랭켈(1998~1975)이었다.


독일 쾰른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프랭켈은 노동법 변호사였다. 1918년 노동자 혁명으로 독일 황제가 도망가고, 1차 대전이 끝나면서 바이마르 공화국이 들어섰다. 사회주의자인 샤이데만(1865~1939)과 에베르트(1871~1925)가 주도한 바이마르 정권은 자유주의 세력과 손잡고 공산당을 탄압했다. 경제적 평등과 민주주의라는 대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중간계급과의 연합이 필요하다는 신념 속에 부르주아지와의 협력을 열렬히 지지했던 프랭켈은 1926년 독일 최대 노동조합인 금속노조의 법률 자문이 되었고, 이 경력을 배경으로 사회민주당의 법률 자문으로 활동하면서 법무부 장관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민주주의에 기반한 법치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노동계급과 중간계급 사이의 협력은 반드시 이뤄져야 했다. 이를 위해 프랭켈은 사회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한데 묶었고, 이 체제에서는 언론, 결사, 종교의 자유와 같은 개인의 권리와 더불어 노동자들의 집단적 권리가 동시에 보장되어야 했다.


개인적 권리에 대한 인정은 공산주의의 부정을 뜻했고, 집단적 권리에 대한 보장은 자유주의의 극복을 뜻했기에 프랭켈은 1920년대부터 맹위를 떨치기 시작한 히틀러의 나치즘에 대해서도 맹렬한 공격을 가했다. 극단적 민족주의와 공산주의는 둘 다 공화국의 적이었다. 하지만 바이마르 공화국을 파괴한 것은 공산당이 아니라 나치즘이었다. 1933년 나치가 정권을 장악했고, 1938년 프랭켈은 영국을 거쳐 1939년 미국으로 망명해야 했다.


나치즘과 공산주의를 동시에 부정하는 프랭켈의 사상은 미국 지배층의 눈길을 끌었고, 뉴딜 정책으로 사회민주적 색채를 띠던 당시의 미국은 프랭켈의 관심을 끌었다. 그에게 루즈벨트 대통령이 추진하던 국가의 경제질서 개입, 사회보장제도 신설, 노동자 단결권의 보장은 사회민주주의로 여겨졌다. 미국 정부와 가까워진 프랭켈은 전쟁 수행을 위한 정보기관인 OSS의 해외경제관리과에 채용되었고, 1946년 초 미군정의 법률관으로 남한에 들어오게 된다.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던 프랭켈은 미소공동위원회의 실패를 위해 활동했고, 1948년을 거치면서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수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자신의 사회민주주의 이론을 실험하는 절호의 기회로 남한 정권의 수립과 분단을 활용했으며, 대한민국 제헌헌법 제정 과정에 관여했다. 반공 사회민주주의 이데올로기 실험에 집착하던 독일계 미국인 프랭켈에게 민족 분단으로 희생되는 조선 민중의 고통과 전쟁 발발의 위험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이러한 역사의 역설을 통해 민주주의는 노동자들에게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는 사회민주주의의 정신이 대한민국 헌법에 뚜렷한 흔적을 남기게 되었다. 미국이 자국에서는 지지하지 않았던 가치들을 프랭켈을 통해 남한에 이식하려 노력했다는 사실은 흥미롭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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