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효원 인더스트리올 컨설턴트
팔월 뜨거운 열기를 뚫고 아시안게임 불꽃이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빛났다. 글로라 붕 카르노(Gelora Bung Karno) 주경기장에서 8월 18일 켜진 성화는 9월 1일 꺼졌다. 인도네시아 말로 ‘글로라’는 열정이나 높은 정신을 말한다. ‘붕’은 동무, ‘카르노’는 인도네시아공화국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Sukarno, 1901~1970)를 뜻한다. 주경기장 이름을 우리말로 고치면, ‘수카르노 동무의 열정’이 된다.
수카르노는 인도네시아 최대 민족인 자바족 출신으로 전통에 따라 성이 없이 이름으로만 불렸다. 귀족 출신인 초등학교 교사 아버지와 힌두교도 어머니를 둔 그는, 자카르타 다음으로 큰 도시인 수라바야에서 태어났고, 1926년 반둥기술대학을 졸업하여 건축사가 되었다.
인도네시아의 인구는 2억6천만 명이 넘어 중국, 인도, 미국 다음 가는 인구대국이다. 자바족이 40%가 넘고, 순다족이 15%가 넘는다. 통용되는 언어가 700개가 넘는 다민족국가로 1만7천 개가 넘는 섬이 동서 5천 킬로미터에 걸쳐 펼쳐져 있다. 수카르노는 모어인 자바어, 순다어, 발리어는 물론 인도네시아어도 잘했고, 식민통치국인 네덜란드어도 잘했다. 독어, 영어, 불어, 아랍어, 일본어도 알아들었다. 말레이어에서 유래한 인도네시아어는 인구의 5%만이 모어로 사용한 소수의 언어였으나, 1945년 독립 선언과 더불어 인도네시아의 공식 국어로 선포되었다.
건축학과 함께 정치학에도 관심이 많았던 수카르노는 자바족의 봉건주의를 경멸하는 동시에 네덜란드와 서구 제국주의의 식민 지배와 착취도 혐오했다. “다른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 체제를 철폐하려는 그가 민족해방투쟁에 뛰어든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사회주의 자립(socialist self-sufficiency) 사회 건설을 꿈꾸면서 1927년 인도네시아국민당(PNI)을 창당해 지도부가 되었다. 당은 인도네시아의 독립과 세속주의를 지지했고, 인도네시아 민중의 삶을 악화시키는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에 반대했다. 또한 당은 네덜란드 식민 지배를 받는 모든 민족들의 단결을 원했다. 1929년 12월 체포되었던 수카르노와 당 지도부가 1931년 12월 31일 석방되었고, 이를 계기로 그는 인도네시아 전역에 걸쳐 명성을 떨치며 민중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수카르노는 일본의 침략전쟁이 인도네시아에게 독립의 기회를 줄 것이라 예견했다. 일본군이 인도네시아 열도를 점령하자 자카르타에서 일본군과 회합을 갖고 지지를 약속했다 1943년 10월에는 도쿄를 방문하여 수상 도조 히데키를 만나 전후 독립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다.
1945년 4월 29일 미국이 필리핀을 석권하자 일본군은 독립준비조사위원회를 구성하였고, 여기서 수카르노는 판차실라(pancasila)로 알려진 5대 원칙을 선언했다. 모든 민족들은 인도네시아 국민으로서 하나다(국민주의). 인권을 존중하고 평화를 증진한다(국제주의). 인도네시아 국민의 피 속에 흐르는 합의 추구를 실천한다(민주주의). 자유방임 자본주의에 반대하고 국민경제는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사회주의). 종교의 자유와 평등을 인정하되, 종교의 관용을 보장한다(신앙).
일본 패망 직후인 1945년 8월 17일 오전 10시 수카르노는 인도네시아공화국 독립을 선포했다. 하지만 네덜란드군은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영국군과 연합하여 인도네시아를 침공했다. 영국-네덜란드 제국주의 연합에 맞선 인도네시아 민중의 항쟁은 4년 동안 이어졌다. 하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릴 순 없었다. 1949년 12월 27일 인도네시아 주권을 네덜란드 여왕에서 인도네시아에 양도한다는 역사적 서명이 이뤄졌다. ‘수카르노 동무의 열정’인 판차실라의 5대 원칙, 국민주의, 국제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신앙은 아시안게임의 성화로 타올라 인도네시아 민중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