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는 노동시간 관련 ① 월단위 노동시간 관리, ②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정산기간 및 업종 확대, ③ 근로시간저축계좌제 도입, ④ 스타트업·전문직 노동시간 예외적용 등 4가지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기업에게 바치는 장시간 노동착취 수라상
실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정부의 노력은 2018년 7월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된 ‘1주 52시간 상한제’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후 정부 여당은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6개월까지 확대했고, 선택적 근로시간제 역시 정산기간을 3개월로 확대하고, 재량근로시간제 대상업무범위도 확대해 사실상 근로기준법상 모든 유형의 유연근무제를 확대해 놓은 상태이다. 화룡점정은 ‘특별연장근로 인가사유’를 확대한 것이다.
이렇듯 이미 사용자 입장에서 ‘1주 52시간 상한제’를 회피해 장시간노동을 할 수 있는 다양한 기제들이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새정부의 노동시간 정책은 사용자가 장시간 노동을 시키는데 보다 더 골라 쓰기 편하도록 풍부한 옵션을 제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 ‘월(月)’ 단위 노동시간 관리
새정부가 근로기준법 제50조제2항에 규정된 ‘1일 8시간’이라는 법정노동시간을 흔들고 있다. 월 단위로 노동시간을 관리한다는 것은 사용자 입장에서 ‘1일 8시간’이라는 법정노동시간을 실질적으로 사문화, 형해화시키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미 많은 언론매체에서 보도한 바와 같이 1주에 최대 92시간까지 근무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즉, 일주일에 1일의 유급휴가를 제외한 6일동안 매일 15시간, 쉽게 설명하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7시에 출근해서 저녁 12시에 퇴근해도 위법이 아니다.1) 새정부의 노동정책은 결국 1일·1주 단위 살인적 ‘압축노동’을 월 단위로 환산해 가능하게 한다는 것으로 이는 노동자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실노동시간을 단축하고 노동자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서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1일’ 최장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것이다.
한편, 현재 일부 특례업종과 3~6개월 단위 탄력적 근로시간제 시행시 ‘11시간 연속휴식’을 부여하도록 하고 있으나, ‘11시간 연속휴식’은 하루 24시간 중 11시간이 아니라 ‘근로일 종료후 다음 근로일 개시 전까지 연속한 11시간 이상의 휴식시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나머지 ‘13시간’이라는 1일 노동시간 상한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2) 예를 들어 6개월 단위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실시하면서 1일 18시간 근무 후 11시간 휴식, 다음날 19시간 근무 후 11시간 휴식을 부여하는 식으로 운용될 수도 있다.
2. 선택적근로시간제 정산기간·업종 확대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일정기간 단위로 정해진 총 노동시간 범위 내에서 업무의 시작 및 종료시각, 1일 노동시간을 노동자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제도(1주 40시간, 1일 8시간 법정노동시간 제한 없이 노동자의 선택에 따라 근무)를 말한다.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가장 중요한 핵심사항은 업무의 시작 및 종료의 시각을 노동자가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즉 노동자에게 ‘노동시간 주권의 보장’이다.
반면, 정부가 현재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확대하고자 하는 목적은 사용자의 경영상 필요 내지 이익이나 ‘1주 52시간 상한제’ 시행에 따른 어려움 극복이다. 이러한 경우 노동자의 시간주권 보장이라는 핵심적 취지가 몰각될 수밖에 없다. 특히,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탄력적 근로시간제와 달리 1일 내지 1주 최장 노동시간에 대한 규정이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주 120시간 노동이 가능해야 한다”는 발언이 단순한 허언이 아님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같이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노동시간에 대한 노동자의 자율적 선택 존중’이라는 본연의 의도와는 달리 이른바 ‘무제한 노동’을 초래할 개연성이 매우 높다.
특히, 포괄임금약정 도입 사업장의 경우, 선택적 근로시간제로 전환되어 연장·휴일·야간임금 미지급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을 현행 1~3개월에서 ‘1년’으로 확대해 자율적으로 설정하게 할 경우, 노동자 건강권 침해, 연장·휴일·야간노동에 대한 가산임금 미지급 등에 따른 노사분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3. 근로시간저축계좌제 도입
‘근로시간(저축)계좌제’ 또는 ‘근로시간저축휴가제’란 원칙적으로 노동자의 실노동시간과 소정노동시간의 차이 또는 연차휴가를 근로시간저축휴가계좌 또는 근로시간계좌에 적립해 계좌에 적립된 노동시간에 대해 노동자의 노동을 면제하고 이를 휴일 또는 휴가로 사용하도록 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원칙적으로 근로시간저축계좌제는 연장·야간·휴일노동 등에 대해 수당지급에 갈음해 휴일 또는 휴가 등으로 보상한다는 것이다. 이는 실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장시간 노동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있다.
또한 연차휴가조차 제대로 소진할 수 없고, 코로나19로 인한 자가격리기간조차 연차사용을 강요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노동시간을 적립해 두었다가 필요시 휴가로 사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탄력적·선택적 근로시간제를 실시하면서 ‘근로시간저축계좌제’가 도입될 경우 야간·휴일노동에 대한 가산임금 지급부담도 회피할 수 있다. 결국 근로시간저축계좌제는 경영상 여건에 따라 사용자의 요구에 의해 비자발적 휴가를 사용하게 되는 식으로, 즉 노동자에게 ‘휴직강요’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나아가 유사한 제도로 이미 근로기준법 제57조에서 ‘보상휴가제’를 규정하고 있으나, 보상휴가제 역시 휴가 부여방식, 부여기준, 임금청구권 문제, 휴가 사용기한 등의 문제로 현장에서 많은 혼란을 촉발하고 있으며, 사용자의 초과노동수당 대체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상황임을 직시해야 한다.
4. 스타트업·전문직 노동시간 예외 적용
정부가 우선 추진과제로 밝힌 ‘스타트업·전문직의 근로시간 운영 애로사항 해소 지원’은 일정 직군의 부문 고액연봉자에게 근로기준법상 노동시간 제한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 이른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White Collar Exemption)’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일정 기준 연간 임금소득 이상인 사무직·전문직에게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금융권 노동자와 대기업 사무직, 일부 전문직을 비롯해 최근 각광받는 IT 개발자 등이 포함될 수 있다. 때문에 최근 IT업계에서는 ‘크런치 모드’가 부활하는 것이 아니냐는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이 제도를 최초로 도입한 미국은 현재 초과근무수당 지급 제외 대상의 축소 등 제도보완에 나서고 있는 중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2016년 노동부 규칙을 바꿔 사무직 초과근무수당 지급 제외 기준을 주당 455달러에서 주당 913달러로 대폭 인상을 시도했다. 기준소득 역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 뒤 2020.1.1.부로 주당 684달러로 상향됐고, 바이든 행정부도 수정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제도를 참고하여 2019년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를 도입한 일본 역시 현재 제도에 대한 국민 인식은 부정적 측면이 강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제도’과 유사한 제도로 이미 근로기준법상 ‘재량근로제’가 규정되어 있다. 재량근로제와 마찬가지로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제도’ 역시 노동자가 노동시간을 관리하게 되지만, 업무량을 자신이 결정할 권한이 없다는 면에서 과잉노동이 발생할 수 있다. 무엇보다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제도는 헌법상 보장된 행복추구권의 하나인 국민의 휴식권·건강권 보장과 명백히 상반되는 제도이다.
■ ‘노사 선택권 존중’이라는 감언이설
‘노동시간’은 노동자의 건강과 생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중요한 쟁점이다. 노동시간 정책은 단순히 1일, 1주의 최대 노동시간을 규제하는 것 이상으로 산업 전반과 노동자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노동자에게 가장 중요한 노동조건이다. 노동운동사적으로도 노동시간 단축 문제는 커다란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얼핏, 정부가 발표한 바와 같이 노동시간에 대한 ‘노사 선택권 존중’이라는 말은 달콤하게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현 정부 여당은 노조가 아닌 노동자를 위한 의사소통 플랫폼을 구축한다면서 이른바 ‘노조배제전략’, ‘노조 없는 노동’을 모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는 ‘노동자’ 주체적 관점에서 정부정책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대응해야 한다. 지금 우리 노동자에게는 시간주권의 확보, 나아가 삶을 관통하는 생활주권 확보가 필요하다.
<미주>
1) 1달은 ‘4.345주’이므로 4.345×12=52.14시간을 1주에 몰아서 사용할 수 있게 되므로, 법정노동시간인 40시간에서 52.14시간을 더하면 92.14시간이 나오게 된다.
2) 이는 고용노동부 행정해석에서도(연장근로가 역일을 달리해 익일에 미치는 경우 취업규칙 등에 1일 노동시간에 대한 시업 및 종업시간 규정이 있더라도 계속되는 연장노동은 1근무로 취급해 시업시간이 속하는 날의 노동의 연속으로 봐야 한다)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