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제도개악 저지를 위한 한국노총의 대응
정부는 지난 6월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을 발표했다. 여기에서 노동시간 제도개선을 위해 ① 연장노동 관리단위를 ‘1주’ 이상으로 확대 검토, ② 노동시간저축계좌제 도입방안 마련, ③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 확대 등 유연근로제 활성화, ④ 스타트업·전문직의 노동시간 운영 애로사항 해소 지원 이상 4가지 과제를 우선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이상 정부정책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7·8월 기관지 커버스토리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평가 : 노동시간」 참조).
이후 친자본 성향의 학자들로 구성된 ‘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발족시켜 정부의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을 뒷받침할 이론적·학술적 근거를 마련하는 한편, MZ세대 노조 등 현장간담회를 여는 등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에 대한 긍정적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주력해 왔다.
한국노총은 이러한 정부의 노동시간 제도개악 시도에 총력 대응한다는 방침하에 9월초 민주노총과 함께 학계전문가로 구성된 공동연구사업팀을 꾸렸다. 연구사업팀에서는 크게 ① 해외 주요국의 사례를 분석하여 정부의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② 각종 통계자료에 입각하여 유연근무제의 무분별한 확대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③ 미조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노동시간 갑질사례를 분석했다. 마지막으로 ④ 양대노총 조합원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하여 정부의 노동시간 제도개편의 실체와 문제점을 파악하는 활동을 전개해 왔다. 이상과 같은 연구사업팀 활동 결과는 정부의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연구결과 발표에 대응하여 12월 8일 열리는 국회토론회에서 구체적으로 밝혀질 예정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노동자들이 정부의 말처럼 노동시간 제도 개편을 희망하고 있을까? 노동시간 제도가 어떠한 모습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추진되기를 원하고 있을까? 이번에 양대노총이 공동으로 실시한 실태조사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장시간 노동관행 개선 요인, 노동조합 개입 압도적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공동으로 9월 26일부터 10월 14일까지 조합원을 대상으로 ‘노동시간 제도 및 윤석열 정부 정책에 대한 노동자 인식 설문조사’와 ‘특수고용노동자 노동시간 실태 및 인식 설문조사’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병행하여 실시했다.
첫 번째 조사는 ▲ 현장 노동자들이 노동시간 제도 및 쟁점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간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으며, ▲ 대안적 노동시간 제도 및 정책에 대한 의견을 무엇인지 파악하고자 했다.
두 번째 조사의 경우, ▲ 대표적인 노동시간 규제 사각지대 노동자인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시간 관련 실태를 살펴보고, ▲ 필요한 대책이 무엇인지에 대해 당사자 의견을 파악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첫 번째 설문조사는 양대노총 조합원 총 2,600명이 참여했고, 두 번째 설문조사는 양대노총 특수고용노동자 조합원 총 672명이 참여했다.
‘노동시간 제도에 대한 인식’에 대한 주요 응답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노동시간 체제에 대해 응답자 절반 이상(51.3%)이 ‘주40시간제’가 아닌 ‘주52시간제’로 응답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기본 노동시간 체제는 1주간 노동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는(근기법 제50조 제1항) ‘주40시간제’이다. 이러한 기본 원칙 하에 당사자 간 합의가 있을 경우 1주간 12시간을 한도로 이를 연장할 수 있는 것이므로 ‘주52시간제’라는 용어는 물론 올바른 표현이 아니다.
현재 현장에서는 1주 40시간이 아니라 52시간이 기본이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상황인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선택적 근로시간제’도 마찬가지로 응답자 절반 이상(56.4%)이 특정일(1일)·특정주(1주) 실노동시간 상한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 부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제도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장시간 노동의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2018년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현장실태와 노동자 인식’에 대한 주요 응답결과를 살펴보자. 2018년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현장에서 장시간노동 관행 개선되었다고 응답한 비중은 절반이 약간 넘는 56%에 불과했으며, 44%는 개선되지 않았다고 응답하였다. 특히, 장시간노동 관행이 개선된 경우 그 변화를 추동한 요인으로써 10명 중 약 8명이 ‘단체협약 등을 통한 노동조합의 개입’(제1순위 48.3%, 제2순위 32.6%)을 꼽았다.
특정 제도가 현장에서 정착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활동과 개입이 매우 중요한 요인임을 시사한다. 장시간노동 관행이 개선되지 않은 이유로는 10명 중 8명이 ‘업무량이 줄어들지 않아서’라고 응답하였으며(제1순위 57.0%, 제2순위 25.5%), 10명 중 거의 9명이 ‘특별연장근로가 사측에 의해 편법·탈법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87.9%)고 답변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가 장시간 노동 관행 개선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윤석열 정부 노동정책, 열에 아홉이 반대
무엇보다 정부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에 대해 10명 중 무려 9명(88.1%)이 집중·압축노동으로 건강권을 위협할 것이라고 답변하여 정부의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방향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정부의 우선추진과제에 대한 응답결과를 보면, ‘월단위 연장노동시간 관리’ 10명 중 8~9명은 ‘집중노동 등이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에 건강권을 심각하게 위협할 것’(89.5%), ‘업무량이 많은 주에 집중노동을 했더라도, 다른 주에 그만큼 노동시간이 줄어들지 않을 것’(86.4%), ‘노동시간에 대한 사용자의 재량권 더 커질 것’(80.8%) 등 압도적으로 제도 변화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선택적 근로시간제 확대’에 대해서는 10명 중 7~8명(76.4%)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답변하였고, ‘근로시간저축계좌제’의 경우는 10명 중 9명 이상(92.4%)이 ‘바쁠 때 일 많이 했지만, 정작 쉬어야 할 때 또 다른 업무로 저축한 연장근무 시간을 휴가로 사용하기 힘들 것’으로 인식하는 등 부정적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이 나왔다.
정부가 노동시간 유연화를 위해 강조하고 있는 ‘노사합의에 기반한 선택권 확대’과 관련하여서도, ‘부분 근로자대표 도입’의 경우 10명 중 약 9명은 ‘사업장 내 노동조건 격차가 더 커질 우려’(91.6%), ‘사용자가 의사결정과정에 개입하는 등 부작용이 심할 것’(91.3%), ‘노동시간, 임금 등 노동조건이 불이익하게 변경될 것’(90.5%), ‘노동조합 활동이 위축되거나 무력화 될 것’(89.2%) 등 부정적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특수고용노동자, 장시간노동에 유급휴가도 보장받지 못해
‘특수고용노동자 노동시간 실태 및 인식조사’에서는 특수고용노동자 약 3명 중 1명이 1주 53~64시간, 절반 이상(55.4%)이 1주 52시간을 초과해 일하는 것으로 나타나 장시간 노동이 심각한 상황임을 알 수 있다.
3명 중 1명(32.5%)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연장·야간·휴일근무를 하고 있고, 10명 중 9명 이상(94.3%)은 유급 주휴일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업무시간 중 별도의 식사·휴게시간을 보장받지 못하거나(87.7%), 연차유급휴가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으며(98.3%). 10명 중 거의 7명(67.1%)은 자신이 원할 때 휴가를 사용할 수 없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렇게 휴식권 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장시간노동에 시달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10명 중 9명(90.2%)은 연장근무 시 연장근무 수당을 지급 받지 못하고, 거의 모든 특수고용 노동자(96.3%)는 휴일근무 시 휴일근무 수당을 지급받지 못하거나, 업무를 위한 대기·준비·이동시간이 1주 평균 20시간 이상이지만 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96.4%).
이상과 같은 응답결과는 특수고용노동자 2명 중 1명(54.8%)이 사업장 상황이나 사업주 요구에 따라 근무기간이 달라지는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사실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시사점 및 개선과제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번 실태조사 결과를 통해 우리나라 노동 현장에서는 장시간노동 관행이 여전히 강하게 유지되고 있으며, 특히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은 특수고용노동자는 매우 심각한 상황인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노동시간 정책의 우선순위는 무엇보다 장시간 노동체제 개선을 위한 전방위적 규제 대책이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와 함께 현재 사업장에 퍼져있는 현행 노동시간 규율체제에 대한 부정확하고 잘못된 인식을 개선하지 않으면 법 위반 상태를 방치하고 장시간 노동 관행을 지속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장의 규범 인식을 높이기 위한 정부 당국의 적극적 홍보와 사업장 지도 및 감독 강화 등 선제적 개선 조치가 필요하다.
2018년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그나마 장시간노동 관행이 개선된 주요 이유가 노동조합의 개입이라는 점에서, 노조할권리 보장은 노동시간 정책에 있어서도 필수적임을 시사한다. 동시에 부분근로자대표제 인정은 사업장 내 노동조건 격차를 확대시키는 등 현장실태를 악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려는 유연근무제 확대 등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은 노동자의 자율적 선택권보다는 노동시간에 대한 사용자 재량권을 확대시켜 ‘유연 장시간노동체제’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저임금 구조는 여전히 장시간노동을 유발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라는 점에서 적정 임금을 보장하는 대책이 노동시간 규제 정책에 필수적이고, 특수고용노동자에게는 안전운임제와 같은 적정소득보장 대책이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