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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의 외주화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등록일 2019년01월10일 09시37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이은영 매일노동뉴스 기자 

 


 

노동계에 출입하며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죽음을 마주할 때이다. 어떤 해에는 수많은 죽음이 도미노처럼 덮쳐와 매일을 술로 보내기도 했다. 노트북 앞에서 팩트 나열을 하는 기자가 그러한데 동료들의 죽음을 지켜보고 수습해야 하는 현장의 노동자들과 노조 간부들의 심정은 오죽할까. 


또 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12월 11일 새벽.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작업하던 24살의 청년 김용균 씨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쓸쓸히 죽음을 맞았다. 아무도 없는 그 칠흑 같은 어둠과 시간이 얼마나 무서웠을지 가히 상상도 할 수 없다. 


용균 씨는 화력발전소 석탄운송설비 운전을 담당하는 하청업체 한국전기기술 소속 비정규 노동자였다. 그는 1년 계약직 현장운전원으로 한국전기기술에 채용된 지 석 달 만에 목숨을 잃었다. 세상에 안타깝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겠냐만 용균 씨의 죽음이 많은 사람의 마음에 꽂히고 움직이게 하는 것은 그 죽음은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죽음의 외주화. 우리사회 뿌리 깊은 불법하도급과 원·하청 불공정 거래, 노동시장 양극화 문제를 이보다 더 간단명료하면서 정확하게 짚을 말이 또 어딨을까. 나만 아니면 된다는 극단 이기주의와 안전에도 계급이 나뉜다는 참으로 서글픈 의미가 담겨있기도 하다.


고용노동부의 ‘최근 5년간(2014년~2018년 7월) 하청근로자 산재사망사고 발생현황’에 따르면 매달 평균 26명의 하청노동자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름 모를 하청노동자가 기계에 끼이고 떨어지고 화상을 입고 감전되고 베이고 맞고 질식해 사망하고 있다. 그 때마다 정부는 대책 마련을 내놓지만 사고는 줄지 않고 있다. 특별근로감독 실시와 철저한 사고조사를 통한 진상규명, 재발방지를 말해 왔지만 마치 짜고 치듯 모든 정부가 노동계가 그토록 부르짖었던 죽음의 외주화를 막을 근본적인 대책만을 비켜간 채 말뿐인 대책만을 반복했다. 


무거운 처벌이 뒤따르지 않는 곳에 무거운 책임이란 있을 수 없다. 애석하게도 노동자들의 희생을 강요하며 성장해 온 한국의 기업들 가운데 가벼운 처벌 앞에 무거운 책임을 다할 곳은 얼마나 될까. 2016년 노동자 산재사망사고와 관련해 법원이 사업주에게 내린 평균 벌금액은 고작 432만 원이다. 


일하다 쓰러지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 말뿐인 산업재해 절반 줄이기와 상시지속·생명안전 분야 정규직화는 제2, 제3의 김용균을 만들 뿐이다. 지극히 상식인 생명안전 분야 정규직화는 그 정부가, 그 시대가 얼마나 국민과 타인의 생명을 귀히 여기는지를 판단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스로의 책임을 방기하고 있진 않을까. 대기업은 죽음을 외주화하고 중소영세기업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관리책임자 선임의무가 없다는 이유로 지금도 스러져가는 노동자들을 외면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한국노총이 산업재해 취약사업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안전보건활동 기반구축 활동과 그 성과를 기사로 작성한 적이 있다. 눈에 띄는 것은 사업에 참여한 50인 미만 사업장 38곳 모두 비노조 사업장이었다는 것이다. 그나마 노조가 힘이 있는 곳은 사업장 안전보건활동과 안정규정에 대한 관리감독이 가능하지만 노조가 힘이 없거나 노조 자체가 없는 곳은 이마저도 쉽지 않다. 노동계가 폭주하는 죽음의 외주화를 멈추기 위해서는 법을 개정하고 제도를 마련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미처 손이 닿지 않는 현장을 찾아 안전보건활동 기반을 구축하고 자율적 안전보건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아닐까. 이 같은 활동이 좀 더 확대되길 바란다. 우리 모두의 무책임과 안일함, 이기심이 제2, 제3의 김용균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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