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영 매일노동뉴스 기자
두 살 터울의 사촌오빠는 어릴 적부터 키가 남달리 컸다. 초등학교 2~3학년 때쯤 꺽다리 사촌오빠와 함께 바닷가에 놀러갔는데, 이 장난기 가득한 초딩 남자아이의 눈에 좋은 놀잇감이 하나 포착됐다. “물이 무섭다”며 모래사장에서 소꿉놀이를 하고 있던 나다.
온갖 말로 회유하는 탓에 “절대 손을 놓지 말라”는 신신당부를 하고 오빠 손에 이끌려 바다로 들어갔다. 바닷물이 발목을 적시고 무릎으로, 그 다음 허리로 올라 올 때까지만 해도 나에게 닥쳐올 미래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사촌오빠의 얼굴에서 어두운 장난의 그림자를 포착했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가슴을 지나 목까지 바닷물이 차올랐을 때 거의 울다 시피하며 “나 발이 안 닿아. 나 죽어. 오… 오빠야… 야!!!”라고 소리를 질러댔지만 그 사촌오빠라는 인간은 “절대 손을 놓지 말라”던 나의 신신당부를 굳건히 지키며 더 깊은 바다로 나를 끌고 들어갔다.
결국 나는 내 키보다 높은 바다 속으로 끌려 들어갔고 있는 힘을 다해, 살기 위해 그 죽이고 싶은 사촌오빠에게 매달렸다. “수영 못한다”던 동생의 말을 몸소 확인하고 나서야 오빠는 나를 다시 모래사장으로 데려다 놨다. 그날 나를 천국 문 앞까지 데려갔던 사촌오빠는 지금 두 아이의 아빠가 돼 아이들에게 “물 조심해라” “깊은 곳에는 들어가지 마라”는 잔소리를 하고 있다.
나는 그 사건 이후 절대 바다에 들어가지 않는다. 기껏해야 발 정도 담근다. 수영도 할 줄 모른다. 매년 여름만 되면 아이 등쌀에 한강과 수영장을 찾지만, 나는 6살 아이와 함께 여전히 튜브신세다. ‘내 몸 하나라도 건사하려면 수영을 배워야한다’는 마음이 왜 들지 않겠나. 그런데 그날 그 바다에서 마주한 암흑이 자꾸 나의 발목을 잡는다.
사람들은 이를 트라우마라 한다. 수영 정도 하지 않아도 사는 데 큰 지장은 없다. 수영보다 튜브 타고 하는 물놀이가 더 재밌다. 깊은 물에는 가지 않으면 되고, 필요하다면 구명조끼를 입으면 된다. 이도 저도 자신 없으면 물 근처에 가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모든 트라우마가 이 정도의 것은 아니니 문제다. 얼마 전 2017년 5월 1일 발생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크레인 사고의 목격자이자 피해자를 만났다. 어제 일어난 일인 것 같은데 벌써 2년이 흘렀다.
우리는 사고 이후 산재트라우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환기시키고 중대재해에 대한 정부 차원의 예방과 대책을 촉구했다. 정부는 일정정도 이에 대한 대답을 내놨다. 그럼 지난 2년간 우리사회는 달라졌을까. 사고의 목격자이자 피해자들은 상처를 치유하고 사회에 복귀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눈앞에서 동료가 스러져갔다. 간발의 차이로 크레인 붐대에 깔린 이가 자신이 될 수도 있었던 상황을 목격했다. “이제는 괜찮아질 때도 되지 않았느냐”는 우리의 걱정스런 말이, 그들의 지난 2년의 몸부림을 외면한 또 다른 가해이자 폭력이 되고 있다.
산재트라우마의 치유 목적이나 종결은 이들의 사회 복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현재 노동자 산재트라우마를 관리하는 곳이 전국에 하나뿐인 상황에서 이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가능성은 농후하다. 기자가 만난 피해자들은 일관되게 산재트라우마에 대한 이해가 높은 전문상담가와 상담하길 원했다. 15~20분 상담만으로 “이제는 사회에 복귀해도 되겠다”는 의견서를 쓰는 의사가 아니라, 그날 이후 자신의 삶을 장악한 두려움과 분노를 열린 마음으로 이해해 줄 수 있는, 그 마음을 오롯이 나눌 수 있는 상담 시스템을 원한다. 그리고 그 치유의 과정이 2017년 5월 1일 이전의 일상을 회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길 바란다.
현재 근로복지공단에서 하고 있는 직업재활 프로그램은 장해등급 12등급까지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에 트라우마로 산재(14등급)를 인정받은 사람은 참여할 수 없다. 산재 피해자들이 다시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치료와 재취업 프로그램이 연동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나아가 노동계와 국회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해 힘쓸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