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영 매일노동뉴스 기자
얼마 전 초등학교 5학년인 큰조카가 “리코더 연습하게 유튜브를 잠깐 봐도 되냐”고 언니에게 물었단다. 요즘 유치원생만 해도 유튜브 사용이 능수능란하다는데 초등학교 5학년이 엄마에게 물어보고, 정말 리코더 연습 동영상만 본 뒤 끄는 게 어쩌면 진귀한 풍경일 수 있다. 근 30년 전 나의 초등, 그러니깐 국민학교 시절을 떠올려 보면 유튜브로 리코더를 배우고 연습한다는 것은 굉장히 낯설고 의아한 일이다. 내게 유튜브란 멀리 이동할 때 아이의 떼를 잠재우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 정도에 불과하다. 한 번 유튜브에 들어가면 동영상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되는 데다 다른 영상으로 타고 타고 넘어가게 돼, 그만큼 중독성도 강하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요즘 아이들은 모든 걸 유튜브로 배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다. 너무 고리타분한 얘기일 수 있지만 30대의 마지막 삶을 살고 있는 나조차 온라인 포털사이트를 통해 각종 정보를 취한 건 대학에 가서다.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 보면 어느 집에나 나이팅게일을 필두로 한 위인전과 베고 잤다간 목 디스크가 올게 뻔한 두툼한 백과사전이 있었다.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만 해도 백과사전을 종종 펼쳤던 것 같다. 젊은 꼰대처럼 보일까봐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지만, 정말 세상 많이 변했다. 그리고 변하고 있다.
얼마 전 회사 후배가 나를 시험에 들게 한 적이 있다. 시원한 맥주에 매운 떡볶이로 세상 시름을 풀어내던 후배는 갑자기 신조어 테스트란 걸 꺼내 들었다. ‘롬곡옾눞’ ‘마상’ ‘애빼시’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말들이었다. 열댓 개나 되는 외계어 중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건 단 하나도 없었다. “요즘 애들은 뭘 죄다 줄여” “세종대왕님 무덤에서 일어날 일”이라며 한바탕 웃었지만, 내가 이정도로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단 사실이 적지 않게 충격이었다.
내가 매일 만나는 사람들의 평균 나이는 아무리 낮춰봤자 40대. TV도 보지 않고 뉴스도 정치·사회만 보니 요즘 대세가 뭔지, 어떤 말이 유행인지 알 길이 있나. 생각해 보니 최근 몇 년 간 20대랑 30분 넘게 이야기해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참고로 이 글을 읽고 있는, 나와 같은 충격에 휩싸인 분들을 위해 신조어 테스트의 정답을 알려드리자면 ‘롬곡옾눞'은 ‘폭풍눈물’이란 뜻이란다. 왜냐고? 책자건 모니터건 거꾸로 돌려 매직아이를 해 보시라, 그럼 ‘폭풍눈물’이 보일 것이다. ‘마상’은 마음의 상처, ‘애빼시’는 애교 빼면 시체다.
굳이 줄이지 않아도 될 말을 줄이고, 책이나 사람을 통해 배워도 될 걸 유튜브로 해결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흐르는 세월을 잡을 수 없듯 급변하는 문화를 되돌릴 수 없지 않은가.
최근 몇 년간 노동계는 그 어느 때보다 조직화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지난 2년은 문재인 정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에 맞춰 조직화 대상이 주로 공공부문 비정규 노동자에게 맞춰졌었다. 양대 노총 모두 일정정도 성과도 거뒀다. 그러나 청년노동자 조직화는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 따라 노동은 파편화 되고 노동 3권을 온전히 누릴 수 없는 노동자들이 급속도로 늘어가게 될 것이다. 이미 플랫폼 노동을 통해 그 조짐은 시작됐다. 이들을 어떻게 끌어안을 것인지에 대한 보다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긍정적인 신호도 포착되고 있다. 노동계에 변화의 움직임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유튜브 채널을 통해 무겁고 딱딱한, 다소 무서울 것 같은 노동의 이야기를 말랑말랑하고 신선하게 전달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마상’을 알지 못했듯 노동계 역시 젊은 청년노동자들의 생각을, 그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잘 모를 수 있다. 지금 시도되고 있는 노동계의 도전이 무조건 옳다고, 당장의 성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단언할 순 없다. 그러나 인식의 전환은 원래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 않나.
최근 어느 노조가 쟁의행위를 영화 단체관람으로 했다고 한다. 그게 무슨 투쟁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투쟁의 방법이 꼭 하나여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 노동계가 변화된 환경 속에서 좀 더 많은 도전을 하길 응원한다.